No. 928 [칼럼니스트] 2004년 1월 2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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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일자리 창출

    올해의 화두는 ‘일자리 창출’이다. 지난해 청년층의 일자리가 20만개 가까이 줄면서 전체 실업자의 절반이 청년층으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란 시중의 표현이 빈말이 아니었다.

    설 연휴 귀향 활동을 한 정치인들이 전한 민심은 한파 보다 차가웠다고 한다. 특히 도시에 취직했다가 농촌으로 돌아온 젊은이들이 많았다고 하니 실업자와 그 가족의 좌절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실업자 가족의 아픔을 풍자한 ‘유난히도 추웠던 설’이란 시사만평 또한 콧등이 찡하다. 설을 맞아 고향을 찾은 56도, 45정, 38선, 2태백 4형제가 술을 마시며 제 각기 “그냥 콱 고향에 눌러앉아?”속으로 되뇐다. 주름살 깊은 늙은 아버지는 “얘들아 이젠 가야지…”하며 채근하는 모습은 이 시대의 실상을 꼬집었다.

    다섯 집 가운데 한 집 꼴로 ‘백수가정’이니 딱한 노릇이다. 아버지는 구조조정에서 밀려나 한숨짓고, 취업 못한 자녀는 이력서를 들고 뛰어다닌다. 대학 졸업자가 취업을 위해 입사서류를 제출하는 횟수가 평균 10회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 취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먹고사는 문제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앞길 창창한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화두도 ‘일자리’다. 일자리 만들기를 정책의 최우선에 두겠다고 밝힌 것은 옳은 방향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지도자 회의’도 열고, 모든 역량을 일자리 만들기에 집중할 것임을 예고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따라야하듯이 경제를 살리려면 겸허한 현실인식 위에서 실천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보여준 경제현실 인식은 기업현장의 목소리와 큰 차이를 나타내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기업인들은 경제부진의 원인으로 정치불안을 들지만 노 대통령은 “경제와 정치상황은 관계없다고 본다”며 정치책임론을 부정했다. ‘경제의 절반은 심리’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인 데, 경제주체들의 투자심리가 되살아나지 않으면 ‘일자리 창출’은 자칫 장밋빛 구호에 그칠 수도 있다.

    일자리 창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제조업의 공동화와 ‘고용 없는 성장’이다. 제조업 이탈을 막고 고용구조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일자리 창출 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노사관계 역시 주5일제 실시에 따른 임금보전 문제 등 굵직한 현안들이 걸려 있어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제조업의 목소리는 과장도 엄살도 아니다. 아예 문을 닫고 공장 임대나 창고임대를 하든지, 서비스업으로 업종전환을 해야겠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아직도 제조업을 하십니까”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털어놓는 실정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를 이기지 못하고 해외이전을 계속하는가 하면, 외국인 고용으로 유지하던 3D업종은 인력난으로 삼중고를 겪는다. 은행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매출이 떨어졌으니 실적을 내놓든지, 아니면 그냥 돌아가라고 하니 자금을 융통할 뾰족한 방법도 없다고 한다. 허물어지고 있는 제조업에 대한 특단의 대책과 비전제시가 전제돼야 일자리가 는다.

    지난해는 경제 성장률이 3% 안팎을 기록했는데도 오히려 일자리는 3만개나 줄고, 실업자가 6만9000명 늘어 ‘고용 없는 성장’현상이 본격화됐다. 이런 가운데 올해 5~6% 성장률을 달성해 30만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기대가 맞아떨어질지는 미지수다. 과거 호황 때는 1% 성장 때 최대 10만개 안팎의 일자리를 늘렸지만,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1% 성장이 5만~6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지 불투명하다.

    ‘고용 없는 성장’은 세계적인 추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4년 해외 10대 트렌드’라는 보고서를 통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국가가 세계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세계 경제는 성장세를 보이겠지만 고용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아 일자리 창출은 상당히 풀기 힘든 과제임을 뒷받침한다.

    일자리를 만든 것도 중요하지만 미취업자들의 의식전환도 필요하다. 취업의 눈높이를 회사에 맞추기 보다 자신에게 맞추는 경우가 많다. 취업하고자 하는 회사의 눈높이와 자신의 실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보수와 출퇴근시간, 내근인가 외근인가, 토요근무여부를 따진다고 하니 이력서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에는 능력 있는 직원은 고사하고 손발이 필요한 직원수도 모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 CEO Report 1월 26일(2004년)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ky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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