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22 [칼럼니스트] 2004년 1월 1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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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시대, 감성의 리더십

    요즘 젊은 세대들의 키워드는 ‘쿨(Cool)’이다. “어제 본 영화 어땠어”라고 물으면 “쿨했지”한마디로 통한다. 멋진 옷을 입거나 개성 넘치는 악세사리를 한 친구를 보면 “쿨하다”고 치켜세우고, “짱이야” “캡”이라며 부러워한다. 쿨은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큰 찬사가 됐다.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조폭의 칼에 맞아 죽는 것도 쿨하고,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일탈적인 청년세대의 일상을 보여준 양동근도 쿨하다고 여긴다. 절도 있게 걸어가는 사관생도의 위풍당당한 모습도 쿨하고, 남편의 불륜을 보고도 단호하고 침착한 표정을 잃지 않는 힐러리 여사도 쿨하다고 인식한다.

    젊은이들은 ‘구애’를 ‘작업’이라고 한다. 연애나 사랑에 목숨을 걸듯 매달리는 친구들을 구닥다리 취급한다.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고, 안되겠다 싶으면 칙칙하게 매달리기 보다 산뜻하게 헤어지는 것을 ‘쿨’하다고 여긴다. 감정전환이 쿨하게 빠르다.

    지난해 출간 된 ‘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의 정신 COOL’(딕 파운틴/ 데이비드 로빈스 공저/ 사람과 책)은 ‘쿨’이라는 감정 스타일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쿨’을 문화적 범주로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쿨의 기원을 서아프리카 요루바 문명까지 소급하여 흥미를 끈다. 요루바 부족은 전사들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리고 부족 내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이투투’라는 종교의식을 덕목으로 삼았다. 냉철하면서도 친화력이 넘치고, 관대하면서도 우아한 요루바 부족의 품성을 쿨한 감정의 젖줄이라고 풀이한다.

    그 뒤 노예선을 타고 신세계로 옮아와 고된 노동과 가혹한 모욕에 시달리던 흑인노예들의 심리적 방어기제이던 쿨 포즈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는 동안 정체된 백인사회를 휘저으며 청년문화 속으로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쿨은 일탈과 반항의 변천사라고도 할 수 있다. 1930년대 반항적인 흑인문화가 청년문화를 주도했고, 1940년대 이후 할리우드 스타들이 일탈의 문화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50년대 쿨 문화를 주도했던 비트족은 서구중심의 ‘올바른 사회’를 혐오하며 숱한 일탈을 감행했다. 포르셰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추돌 사고로 스물넷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제임스 딘을 숨막히는 억압기제에 맞선 이유 있는 반항아로 기억하며 쿨하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 히피의 반문화적 실천양식 또한 기존의 도덕적 가치관을 뒤집으려는 시도였다. 80년대 이후 소비자본주의가 밀려오면서 개인적 일탈과 반항의 양식이던 ‘쿨’은 소비사회의 풍요로움을 찬양하는 윤리적 태도로 변질되어 산업사회 전반에 확산됐다.

    쿨은 우리의 자생문화는 아니지만 언어, 영화, 춤, 음악, 패션, 컴퓨터 등 대중문화와 예술전반에 파급되어 유행을 낳고, 행동양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질척이지 않고 산뜻하고 세련된 감정 스타일인 쿨은 젊은이들의 사회적 소통에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 매김 됐다.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자기절제가 철저하고, 냉소적이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포용력을 지녔다. 속물 티를 내지 않고 실속 있게 처신한다. 집단문화의 퇴조 속에 쿨 이미지를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 현실과 초연한 듯 자기도취의 감정을 통해 불안과 무력감, 패배의식을 이겨내는 방어기제로 활용한다.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구속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속하지도 않는다. 어디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속성이 조직이나 인간관계 형성에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포괄적이고 다중적인 쿨 문화에 심취해 있는 그들을 유연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감성의 리더십이 더 효과적이다.

    지난 대선 때 ‘기타 치는 노무현 후보’가 감성적 호소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은 대중과 호흡하는 대통령을 그려 인기를 끌었다. 디지털 시대는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감성의 융합시대’다. 감성의 리더가 되지 못하면 쿨한 감정 스타일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을 리드하기 어렵고, 조직을 역동적으로 이끌어갈 수 없을뿐더러 자칫 ‘노땅’ 취급받기 일쑤다.

    리더는 조직원들의 감성에 주파수를 맞춰야한다. 그래야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 혜안이 생긴다. 작은 실수에는 관대하고, 럭비공처럼 튀는 개성을 아울러서 화합을 도모하고, 냉철하고 친화력 넘치는 리더십을 발휘할 때, 조직원들이 지닌 최고의 능력을 이끌어내 조직의 목표도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사장이 직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상큼한 유머 한마디를 던지거나, 뒤풀이 때 최신 곡을 준비해 부르면 “사장님 쿨이야” “사장님 짱”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CEO Report 1월 8일 (2004)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ky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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