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20 [칼럼니스트] 2004년 1월 1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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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잊고 젊게 살기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어도 나이타령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용되는 것이 공자(孔子)의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씀이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지학?志學), 서른 살에 섰으며(이립?而立),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불혹?不惑),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지천명?知天命),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이순?耳順),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종심?從心)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고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학문의 심화과정을 술회했다.

    시인 두보(杜甫)는 일흔 살을 예부터 드물게 맞는 나이라 하여 고희(古稀), ‘회남자(淮南子)’에서는 49세까지는 옳고 그름을 모르던 것을 50세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하여 쉰 살을 지비(知非)라 했다. 수명이 짧고 노인을 우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도 노인이 존경받던 시절엔 40대가 되면 초로(初老)라 했고, 50대를 중로(中老), 60대를 기로(耆老)라 하여 자식들의 봉양을 받으면서 노후를 즐기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요즘은 천만의 말씀이다. 앞으로 5~6년이면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한다. 갈수록 노인에 대한 푸대접은 심해질 것이다. 젊은이 10명 가운데 1명은 부모 노후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왔듯이 이제는 노인들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하는 시대가 됐다. 평균 수명인 76세까지 산다고 가정해도 환갑이면 중년으로 봐야한다. 그래서 노후설계가 절실할 뿐 아니라, 나이를 잊고 활력 넘치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세상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공자는 마흔에 이르면 남의 간섭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경기침체로 중?장년층 실업이 급증하면서 40대는 세파의 거센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공자는 쉰 살에 이르면 자신의 분야에 대한 보편원칙을 남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지천명’의 경지에 이른다고 했지만, 50대들은 스스로를 추스르기 힘들 정도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45세면 직장에서 밀려나고, 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 소리까지 들어야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20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30대는 일터에서 밀려날까봐 불안하고, 40대는 기로에서 흔들리고, 50대는 희망을 상실 한 채 노심초사하는 처지다. 60대는 어중간한 늙은이가 되어 거리를 떠돌고, 70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다.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사는 맛이 죽을 맛이다.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는 것이 우울하고 두려워진다. “무엇을 할 것인가” 희망을 설계하기 보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강박관념에 짓눌리게 된다.

    아무리 살아가기가 팍팍해졌어도 세대별로 나이를 극복하고 살아 갈 생존전략은 있기 마련이다. 20대는 젊음과 패기가 재산이다. 운명을 개척하듯 자신을 만들어 가는 도전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일류대학 나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도 많이 희석됐다. 개성과 잠재능력을 찾아내 도전하면 길은 열릴 것이다.

    30대는 자기관리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아무리 구조조정의 칼날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지만 회사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능력 있는 사원은 내치지 않는다. 자기계발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재테크의 ‘종자돈’을 모으면서 기업과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차근차근 경력관리를 해두는 것도 미래를 위한 투자다.

    40~50대들은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일했던 조직과 사회가 급속히 와해 돼 설 땅이 좁아졌다. 그러나 세대간의 갈등 속에서도 젊은 세대와는 다른 경륜과 지식과 지혜가 그들에게는 자산이다. 실패한 경험에서도 값진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건강한 생명력이다. 해답은 건강한 생명력 속에 담겨 있다고 본다.

    요즘은 환갑잔치를 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를 잊고 젊게 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예전엔 나이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철이 들지 않았다거나 나잇값을 못한다고 핀잔 받기 일쑤였다. 행동이나 취미, 의식까지 젊은이를 닮아 가는 ‘피터팬 족’이 늘어나는 것은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다.

    나이 차이를 불문하고 자신과 확신이 없으면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쉽게 늙어가기 마련이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가게 앞 흰 수염 달린 노신사는 64세 때 창업하여 성공한 경우다. 우리 주변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다. 불혹의 나이에 보험업계에 뛰어든 70세의 할머니는 왕성한 활동으로 월 평균 6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쟁쟁한 현역이다.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과 자신감이 비결이라고 한다.

    노년기 인생이라도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젊음과 보람을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 일을 찾아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젊음을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이라 생각한다. 자기 적성과 취미에 맞는 일을 택해서 그것이 새로운 배움이든 봉사하는 일이든 찾아서 그 일 자체를 즐길 때, 나이를 초월하여 활력이 솟고 인생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젊으나 늙으나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 사보 ‘비비안’ 2004년 1,2월호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ky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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