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19 [칼럼니스트] 2004년 1월 1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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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침에 돌아보는 지난날

2004년을 맞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름대로의 기대와 설렘을 제각각 가슴에 품어도 좋은 새해 아침이다. 희망과 기대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 발전에 필요한 동력의 원천이므로 선택 아닌 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날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 기대는 자칫 망상으로 그치거나 부실하고 허망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모습을 면밀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바로 거기에서 희망의 진로와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우리 모습은 지금 보아도 매우 고통스럽다. 당시의 상처가 아직도 곳곳에서 도지고 있다. 국운이 이미 기울어 나라꼴이 민망스럽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1904년은 일본의 야심이 구체화되던 해로 민족의 고통이 특히 컸다. 우리 쌀을 싼값에 일본에 수출하고 반대로 그 나라 면직물은 비싸게 들여오는 무역구조가 심화되면서 농촌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졌다. 그 틈바구니에서 소수 지주층은 살이 찌고 대다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고향을 떠나야 했다.

부자를 털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다는 명목으로 발호하던 ‘활빈당’의 활동이 극에 달한 것도 이때였다. 정부는 이들을 소탕한다면서 일반서민들만 괴롭혀 백성들은 이래저래 죽을 노릇이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 대비해 착수한 경부선과 경의선 철도 건설도 막바지에 달해 철로 부근의 용지를 강제로 빼앗기는 농민이 부지기수였다. 또 남자는 물론 여자 심지어는 어린이들까지 무보수 강제노역에 동원돼 일본인들의 채찍 아래 신음하며 심하면 죽어나가기까지 했다.

1902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이민이 본격화한 것도 이 해였다. 자기 국민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서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눈치나 보는 무능한 정부와 양반층이 싫어 고국을 등진 것이다. 그 와중에서 일본군부의 후원에 힘입은 독립협회 일부세력과 동학교도들이 친일단체 일진회를 결성, 일본의 한국강탈 길을 크게 열어놓았다.

절망밖에 없는 암울한 시기였다. 그러나 정부는 제 백성 건사는커녕 호시탐탐 노리는 열강들 앞에서 앞뒤도 분간 못하고 허둥대는 미숙아에 불과했다. 이 해 일본은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한국강탈의 첫 단계로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이로서 한국은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이 되고, 러.일전쟁을 위한 병참기지로 전락했다.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역시 미.영의 묵시 아래 한국 강탈계획을 착착 실천해 나간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정부의 고위층을 뇌물로 매수하고, 지도층 인사들을 꾸준히 친일파로 만든 결과였다.

일본은 이어 고문(顧問)제도를 강요, 재정 외교는 물론 내무 교육 군부 등 모든 분야에 일본인을 고문으로 앉히고 그 밑의 실무자들까지 자국인들로 채우며 실권을 장악했다. 무늬만 나라였지 주권은 일본에 다 넘겨준 것이었다. 다음 해의 을사조약은 여기서 사실상 완성되었다. 참으로 기막힌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54년 우리는 어땠는가. 독립은 되었지만 1890년대부터 러시아와 일본이 꾸준히 제기한 38도선 분단안이 종전과 동시에 현실화하면서 민족의 고통은 계속됐고, 이어 발발한 6.25전쟁으로 우리는 세계 최빈곤국가 대열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쟁 중에도 이승만독재정권과 정치권은 민생을 외면, 정치싸움을 그치지 않았고 일반 국민은 만성적 기아에 시달렸다. 미국의 구호물자도 서민들에게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중.고교는커녕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청소년이 대다수였고 대학은 극소수만 다니던 시절이었다. 신성하다는 국방의 의무도 없는 사람들한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사회 각 부문에 부정 부패가 만연, ‘빽’과 ‘사바사바’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던 때였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는 조롱을 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우리의 과거는 이처럼 가혹했다. 할 수만 있다면 없었던 일로 영영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다. 그런 세월을 견디면서 우리는 오늘에 이르렀다. 어느 점은 대견스러운 반면 어느 점은 새로운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처절한 노력 끝에 절대 빈곤은 벗어났으며 교육수준은 세계가 인정하는 정도에 다다랐다. 질적 수준에는 아직도 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지만 계속 노력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절대 불가하다던 민주화도 달성했다. 각 분야에 속속들이 깊은 뿌리를 내리기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지만 우리 역량을 안팎으로 과시하며 해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노리는 외세는 한 세기 전과 다르지 않다. 미,일,중.러 등 열강은 여전히 한반도에서 영향력 증대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며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사사건건 한국의 발목을 잡고, 우리 내부는 여러 가지 갈등요소들이 극단적으로 표출돼 민족의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교육문제는 갈수록 꼬이기만 해 조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보다 훨씬 투명해졌다고는 하지만 사회 곳곳의 비리도 만만치 않다. 한 세기 전의 상처와 통증이 완치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근본치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로 물러설 필요는 없다. 그걸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환부와 문제점에 접근하면 우리의 희망과 기대는 충분한 근거를 마련, 현실화할 수 있다.

과거를 망각한 국가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버리고 싶고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일망정 더욱 기억하며 새해의 길을 걸어나가면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새 아침의 행보를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고, 최선을 다하면 고통스러운 과거는 2004년의 영광으로 치유될 것이다.

- ‘지방행정’ 1월호(20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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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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