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11 [칼럼니스트] 2004년 12월 2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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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한 북한의 유골 조작


홍순훈 (칼럼니스트, 아하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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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NHK의 위성방송인 BS가, 일본 수상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분개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 북한이 1977년에 납치한 사람의 유골이라고 일본에 보낸 것이 '가짜'라는 것이다. 불에 탄 뼛조각들이었지만 DNA감정을 해 보니, 납치됐던 사람의 것이 아님은 물론 2 사람의 뼈를 합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응하여, 일본은 식량 및 의약품의 대북 지원을 보류했고 추가 경제 제재도 검토한다는 것이다. 일본에 관계된 일이라면 즉각 강경 반응을 보였던 북한이, 이번에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무지해서 그랬는지 일본을 깔보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북한의 괴이한 행태를 여기 짚어 써 본다.

이번 사건이 북한 내에서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내가 1994년(당시 30세) 자살해 일단 병원 뒷산에 묻었다가 2년 후 화장했다'는 말뿐이다. 납치된 여성의 북한인 남편이 유골을 전달하며 했다는 이 말이, 현재로선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사실 이 말을 잘 음미하면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는데, 전체적인 의미는 변명이다. 즉 화장을 하면 재와 뼛조각들이 남고, 그것들은 형질이 변해서 과학적인 실험에 쓸모가 없다. 그런 뼛조각들을 일본에 전달할 수밖에 없게 된 까닭은, 자기 즉 '남편 탓'이란 뜻이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땐 유감스럽게도, 일본의 한 대학 법의학연구실이 쓸모 없는 뼛조각을 가지고도, 이 글 첫머리에 썼듯, DNA감정에 성공한 것이다. 이 성공으로 북한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러나 이 입증 이전에, '병원 뒷산에 묻다-> 2년 후 발굴-> 화장했다', 그런 후 일본에 '유골 전달했다'가 서로 이어질 수 없는 거짓말이다.

왜냐 하면, 남편이 아내의 시체를 땅에서 파 내 화장한 해가 1996년이다. 이 화장은 묘지와 시체(살과 뼈)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잘 묻혀 있는 시체를 파 내 구태어 불에 태울 이유가 없다. 사망 후 바로 시체를 화장하는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 그런데 금년이 2004년이니, 화장한 지 8년이 지났다. 8년 전에 화장하여 없애 버린 시체를 남편이나 북한 당국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 일본에 전달했는가?

오직 하나의 가능성은, 1996년에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납골묘에 보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북한 사정에 맞지 않는다. 연료가 다량으로 소요되는 화장을 북한에서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화장에나 필요한 납골묘도 없다. 도시든 시골이든 거주지 근처에 공동묘지를 설치하여 봉분 없이 시체를 다닥다닥 묻기만 한다. 이 북한의 장묘 제도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며, 북한을 자주 왕래했던 고려인들이 10년도 넘는 기간 필자에게 가끔 들려 준 얘기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인 남편이 '화장했다'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화장을 했다 해도 시체를 없애기 위해 특수 조건에서 소각한 것이다. 일본에서 납치해온 요시찰 인물을, 북한 당국의 지시 없이 남편 단독으로 매장->발굴->화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유골에 대해 거짓 설명한 북한인 남편이 과연 '진짜' 남편이었는지 의심이 가는 것이다.

여기서 딜레마에 빠진다. 북한이 납치했던 여성의 유골이라며 일본에 보낸 행위는, 그 여성이 북한 영역 안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또 납치를 사과하는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사항을 사실대로 밝혀도 크게 더 불리해 질 것도 없다. 그런데 왜 유골을 조작까지 하여 일본에 보냈는가다.

조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현재 여성이 생존해 있는 경우와, 사망한 경우 두 가지로 가상하여 추측해 본다. 여성이 생존해 있다면, 당연히 유골이 없다. 이 경우는, 그 여성이 당국의 감시를 벗어나 북한 어딘가에 원래 신분이 아닌 다른 신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러시아의 북극권 오지 마을에 많이 있다. 남쪽에서 살인 등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북쪽으로 도망친다. 그 곳에서는 일손이 모자라 그들을 숨겨 주고 활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북한 당국이 20 몇 년 전에 여성을 납치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1-2년 전에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기 위해 그 여성을 찾아 보니 행방불명이 됐다. 그래서 손쉽게 위기를 모면하겠다고 머리를 쓴 것이 유골 조작이다. 이 추측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27년 동안 그 여성의 북한에서의 행적 특히 어느 도시(지역)에 살았었는지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이 사망한 경우는, 익사 등으로 시체를 찾지 못했을 때 그리고 북한 당국이 사망한 여성의 시체를 철저히 없앴을 때다. 이런 경우에만 유골 조작이 필요하다. 그밖의 사망 때는 당연히 유골이 있으며, 그 유골을 수습해 일본에 보내면 됐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북한 당국이 또 다른 납치 피해자의 유골도 다른 사람의 뼈로 바꿔 일본에 보냈다는 것이다. 납치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10여명 정도다. 이들 중 두 사람이나 행방불명됐거나 진짜 유골을 찾지 못해서 가짜 유골을 일본에 보냈다고 판단하기는 곤란하다. 납치 피해자 몇 사람 적어도 두 사람은 오래 전에 북한 당국에 의해 같은 방법으로 시체가 철저히 소멸되어 유골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경우든 납치 피해자 여성이 살아 있기만을 빌 뿐이다. 수만명인지 얼마인지도 모를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의 지도자들이 생각할 땐 답답할지 모른다. 한 세대 전에 납치했던 단 몇 사람을 가지고 일본이 계속 시비를 걸고 국교 회복이란 큰 일마저 지연시키는 것이다. 유골까지 만들어 보냈으면 적당히 마무리짓지 못하고 말이다. 아직껏 한반도는 인권이고 나발이고 없던 조선 말기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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