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05 [칼럼니스트] 2004년 12월 1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글보기 | 거시기머시기 | 손님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 | columnist.org(홈)
■ 이규섭의 해외여행(10)
베트남 하롱베이-땀꼭

이규섭 (칼럼니스트,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바다에 떠있는 기암괴석의 숲

#보석처럼 빛나는 3000개의 섬 하롱베이

베트남전쟁, 사이공, 시클로, 호치민, 대중가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와 고엽제 같은 익숙한 단어 때문인지 베트남은 낯설지 않은 나라다. 영화 ‘인도차이나’의 잔상이 오래 남은 탓으로 하롱배이와 땀꼭도 눈에 익는다. 지난해부터 항공사 CF에 하롱배이 비경이 등장하면서 일탈의 욕구를 자극시켜 한국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졌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여장을 풀고, 여행사에 들러 하롱배이 관광티켓을 예약했다. 경비는 20달러. 교통비, 점심, 유람선비용이 포함된 금액이다. 깃발을 들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단체관광이 아닌 ‘나 홀로 관광’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여행사 앞에 도착하니 15인승 투어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영어와 불어를 하는 일본인 부부, 친구와 배낭여행을 한다는 동경대생 2명, 필자를 포함한 한국인 2명, 나머지는 유럽인에 운전기사, 가이드가 2명이다.

하롱배이(Ha Long Bay)는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170㎞ 가량 떨어진 꽝닌성에 위치해 있다. 중앙분리대조차 제대로 안된 고속도로를 거쳐 물류창고 비슷한 휴게소에 한 번 들린 것을 포함, 항구까지는 약 4시간정도 걸렸다. 11월의 낮 기온이 25도를 웃돌지만 이곳은 초겨울 관광비수인데도 유람선이 선착장에 빼곡히 정박해 있다.

2층 유람선에 14명(운전기사 제외)이 승선했으니 전세 낸 기분이다. 뱃고동을 울리며 출발하자 선상 점심식사가 나온다. 생선 찜, 고기와 버섯, 당면을 넣고 튀긴 넴잔, 미나리와 비슷한 자우 무옹 사오(空芯菜)를 살짝 데친 나물무침 등이 싱겁고, 날아갈 듯한 안남미 쌀밥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맛있게 먹었다. 와인이나 맥주, 음료를 권하지만, 모든 음료수는 개인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선착장 맞은 켠 작은 섬에는 리조트를 조성해 놓아 그림 같은 풍경이다. 거대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위를 느릿느릿 유람선이 떠가고 하롱배이의 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엄하게 솟은 덩치 큰 섬에서부터 개 섬, 코끼리 섬, 투계 섬 등 동물 모양의 섬들이 있는가하면, 너럭바위나 뾰족 바위, 촛대 바위를 닮은 다양한 섬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사진: 3000여개의 섬이 보석처럼 빛나는 하롱베이. 닭싸움을 하는 형상의 투계섬.

바다 위에 펼쳐진 기암괴석의 숲을 헤치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담채색의 수묵화 속으로 빠져든다. 바다와 산의 만남, 자연의 신비한 조화에 찬탄이 절로 나온다. 하롱배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세계의 8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자 동양의 3대 절경이다.

하롱베이 일대의 평균수심은 200m로 물이 들면 2000여개의 섬, 물이 나가면 3,000여개의 섬들이 천태만상을 드러낸다. 섬들이 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지중해의 심술궂은 파도가 접근조차 할 수 없어 물살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하롱베이는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베트남민족의 호국전설이 서려 있다. 외적의 침입으로 고난받고 있을 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하롱(下龍)이라 했다. 하룡의 베트남 발음이 '하롱'이다. 용은 여의주로 적을 물리쳤고, 여의주는 크고 작은 섬이 되어 보석처럼 바다에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일까, 베트남전쟁의 와중에도 이곳에는 전화(戰禍)가 미치지 않았다.

13세기, 몽골군이 베트남을 침략했을 때 베트남 수군은 하롱배이 섬 사이 좁고 얕은 물길 밑에 말뚝을 박아놓았다. 몽골 수군의 배가 말뚝에 걸려 오도가도 못할 때 섬에 매복한 베트남 군사들이 적군을 섬멸 시켰다는 기록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하롱의 바다와 섬이 전쟁의 피난처가 됐듯, '인도차이나'의 주인공 카미유 역시 살인죄를 저지르고 은신과 구원의 섬 하롱배이를 찾는다. '황금빛으로 물들어있는 바다 위에 외로워 보이는 작은 배, 그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 분위기 좋은 카페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었던 '인도차이나'의 포스터다.

1992년에 제작된 프랑스 영화 ‘인도차이나’는 식민통치하의 베트남에서 펼쳐진 비극적인 사랑이 주제다. 그러나 '인도차이나'라는 말은 자존심 강한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치욕이다. 인도와 차이나(중국)의 중간, 혹은 혼합이라는 이 단어는 옛 프랑스 식민지(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를 지칭하는 것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대나무로 만든 전통 나룻배 '타잉난'에 열대과일을 가득 싣고 유람선 뱃머리를 선회하는 모습은 치열한 삶의 풍경이다. 바다 위에 얼기설기 얽어 만든 수상가옥도 삶터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호화 유람선 크루즈다. 욕실이 딸린 객실과 레스토랑, TV와 비디오가 설치되어 있는 바다 위의 호텔로 숙박을 하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배가 U턴하는 지점에 석회암 '천궁(天宮)동굴'이 하늘 문처럼 산중턱에 버티고 있다. 계단 양쪽에는 계절을 잊은 꽃들이 만발하여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천연 종유석을 향해 붉고 파란 조명을 비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동굴 한쪽엔 자연 빛이 투사되어 신비를 더한다.

보석처럼 흩어진 섬 사이를 누비는 유람선은 왕복 두세 시간만에 항구로 돌아온다. 물결처럼 잔잔한 고요와 평화가 넘치는 하롱배이-. 그 곳엔 수천 년 동안 외적에 맞서 싸워 스스로를 지킨 베트남민족의 자존과 강인함이 섬마다 스며있다.

#육지의 하롱베이 땀꼭

하롱배이를 다녀온 다음날은 하노이 시내관광을 한 뒤 이튿날 땀꼭이 있는 닝빙시를 향했다. 투어요금은 12달러. 15인승 투어 버스에 유럽인부부, 중국인 여성1명, 필자 등 4명이 탔다. 운전기사에 가이드는 역시 2명이다. 1명은 실습생인 것 같다. 고도(古都) 호아르 입장료, 점심제공에 나룻배 삯까지 포함됐으니 무척 싸다. 적자는 아닌지 걱정되고 미안할 정도다.    
하노이남쪽 114㎞ 거리에 있는 닌빙시는 두 시간 거리로 1번 국도 상에 위치해 있다. 1번 국도는 수도 하노이와 경제중심의 남부도시 호치민시(옛 사이공)를 잇는 베트남의 동맥이다. 곳곳에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곳도 있지만, 도로 주변에 도시가 형성돼있어 사람과 소 떼들이 횡단하여 아슬아슬하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는 것은 예사다.

사진: 땀꼭은 논과 강을 배경으로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매력적인 관광지다. 긴 협곡과 석회석 동굴을 나룻배로 노를 저어 올라갔다가 되돌아온다.

차창을 스치는 농촌의 풍경은 평화롭다. 도로변에 벼를 말리는 모습은 우리의 옛 농촌을 떠올리게 한다. 벼농사는 남부지역이 3모작, 중부와 북부는 2모작이어서 쌀은 풍족한 편이다. 11월 북부지역은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가고, 중부는 벼 수확이 한창이다. 채소가 들판을 파랗게 채색해 놓았다. 논 사이에 있는 묘지들도 인상적이다.

닝빙시에서 북서쪽으로 12㎞ 떨어진 고도(古都) 호아르(Hoa Lu)를 먼저 찾았다. 호아르는 968년에 수도가 세워져 1010년 하노이로 환도할 때까지 딘 왕조와 초기 레 왕조의 수도였다. 한때 200㏊에 달했던 수도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두 개의 사원만 남았다. 11세기에 만들었다는 사원은 사라지고 17세기에 들어 새로 지었다.

딘 띠엔 황(Den Dinh Tien Hoang)사원은 수도를 건설한 딘 왕을 위해 만들어진 사원이다. 여러 개의 문과 건물로 구분되어 있는 정원은 고즈넉하고 딘 왕의 초상이 황금빛 치장을 한 채 모셔져 있다.

또 하나의 사원은 레 다이 한(Den Le Dai Hanh)으로 980년에 레 왕조를 건설한 레 왕을 위해 건설됐고 그와 아들의 동상을 모신 사당이 따로 있다. 관리인이 향을 권하며 참배를 강요하는 것도 거슬리지만 향 값을 받아내려는 속셈이어서 거부감이 든다. 사원 맞은 켠 산에 오르면 성벽의 흔적이 있고, 호아르 전경을 볼 수 있다는 것.

닝빙시에서 남서쪽으로 8㎞ 떨어진 땀꼭(Tam Coc)에 도착하니 한낮의 햇볕이 따갑다. ‘모자 팜니다’고 철자법이 틀린 한글 현수막을 보니 어김없이 한국관광객들이 휩쓸고 간 잔해처럼 느껴져 씁쓸하다. 식당에 들러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고 나룻배를 탔다.

땀꼭은 논과 강을 배경으로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매력적인 곳이다. 긴 협곡을 나룻배로 노를 저어 올라갔다가 되돌아오는 2시간 코스다. 필자와 중국인 여성관광객 2명이 탄 나룻배를 모녀 뱃사공이 교대로 노를 젓는다. 베트남어로 땀은 세 개, 꼭은 동굴로 땀꼭은 '세 개의 동굴'이라는 뜻이다. 이곳 역시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바다가 아닌 강과 논들을 배경으로 겹겹이 서있는 산봉우리들이 빚어낸 풍광이 빼어나다.

유속이 거의 없는 강은 잔잔하다. 마을 앞을 지날 땐 작은 다리 밑으로 배가 지나 고개를 잔뜩 구부렸다. 수초 사이로 오리들이 평화롭게 노닌다. 물컹퀴가 피어낸 작은 꽃도 앙증맞다. 협곡 사이로 다락 논도 보이고 바나나 밭과 대나무 숲도 강줄기와 잘 어울린다. 눈을 감으면 바람소리와 삿대에 찰랑이는 물소리만 들릴 뿐 적요하다. 눈을 뜨면 그림이고 음악이다.     

모녀 뱃사공의 어머니는 앉아서 노를 젓고, 딸은 서서 장대로 노를 젓는다. 과일을 잔뜩 실은 나룻배가 과일을 사라고 다가온다. 싫다고 고개를 저으니 저만치 앞서간다. 맨발로 노를 젓는 솜씨가 일품이다. 처음엔 묘기를 부리는 줄 알았더니 팔에 힘이 부치면 발로 노를 저으니 생존의 전략이다.      

40여분 오르니 석회동굴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다. 동굴입구엔 사진사들이 진을 치고 "형님 사진"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배가 돌아오는 사이 인화를 하여 나루터에서 판다. 10장에 20달러를 달라고 하지만 버스가 떠날 무렵이면 12달러만 줘도 판다.

세 개의 동굴 중 처음 통과하는 항까동굴은 규모가 가장 크다. 종류석이 머리에 부딪칠 듯 뻗어있고 조명이 없어 컴컴하고 음산하다. 갈수록 동굴의 규모는 작다. 항주아, 항구오이동굴을 벗어나면 종착지점이다. 과자와 음료수, 과일을 잔뜩 실은 나룻배들이 장터처럼 진을 치고 있다. 집요하게 사라고 강요한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되돌아온다.

세 개의 터널을 다시 빠져 나올 때쯤 딸은 천천히 노를 젓고 어머니는 바짝 다가앉으며 식탁보, T셔츠, 자수 그림 등을 사라고 권한다. 끈질기고 집요하다. 오갈 데 없는 나룻배 안에서 거절하는 것도 곤욕스럽다. 출발지점인 선착장에 도착할 무렵이면 팁을 요구한다. 관광지의 상혼은 여행의 기분을 망치기 일쑤다.

■여행쪽지

△베트남=공식 국호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베트남의 국토 면적은 약 33만㎢. 한반도의 약 1.5배이며 인구는 7천8백만명이다. 긴 나라여서 북부 하노이에서남부 호치민까지 비행기로 2시간 걸린다.
△하노이=베트남의 수도로 1010년에 세워진 고도(古都). 하롱베이와 땀꼭을 가려면 하노이를 거쳐야 한다.
△입국비자=올해 7월부터 한국인들은 비자 없이 베트남에 들어가 15일 동안 머물 수 있다. 단, 3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과 귀국 또는 제3국행 항공권을 소지해야 한다.
△항공편(하노이 직항)=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베트남항공에서 운항하는 직항편이 많다. 항공료는 개인 왕복 60만원안팎. 소요시간은 4시간.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늦다.
△기후=북부는 10월초∼12월초가 여행의 최적기. 12월말∼4월말(겨울)은 이슬비가 잦고 쌀쌀하다. 북부가 아열대, 남부는 열대몬순이며 연평균 기온은 24도로 한국보다 10도 가량 높다.
△통화=화폐단위는 '동'으로 환율이 달러당 1만5000동이다. 미국 달러를 소지하는 것이 좋다.

  - '광업진흥' 사보 2004년 12월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