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04 칼럼니스트 2004년 12월 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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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수사와 사생활 보호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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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부정사건이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에 힘입어 그 전모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사생활 침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수사 당국이 적극적으로 벌이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수사가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사건이 불거지자마자 즉각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 상당한 개가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을 포함한 일부 국민은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방법상으로는 명확한 사생활 침해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문자 메시지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 것은 이동통신사들이 일정 기간 저장을 해놓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사측의 얘기를 들어보면 “문자 메시지를 쓰지 않았는데 요금이 부과됐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고객들이 상당히 많아 시비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어쩔 수 없이 일정 기간 문자 메시지를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사 기관이든 이동통신사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휴대전화로 어떤 내용을 주고받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보낸 통장의 계좌번호나 약속 시간, 장소 등 중요한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시지 저장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문자 메시지 수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어느 시험보다 중요한 수능시험에서 부정행위가 벌어진 만큼 사건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메시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커닝이 무슨 장난인가?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은 그들 때문에 피해보는데…. 철저히 수사해서 엄단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사생활 침해를 거론해서는 안 된다. 수능시험 부정사건은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파헤쳐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정한 짓을 한 학생들을 잡아야지 그냥 놓아두면 어떻게 하는가. 모조리 잡아야 한다.” 이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남긴 의견들이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실시하고 있는 ‘뉴스 폴(Poll)’을 보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수사,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61.2%가 ‘심각한 사건이므로 적절한 수사 방법’이라고 했으며, 37.2%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부적절하다’고 했다. ‘잘 모르겠다’는 1.6%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는 10명 가운데 6명이 “사건이 심각한 만큼 경찰에서 휴대전화 메시지에 대해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4명 가까이가 옳지 못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대 의견이 37%선이라면 적지 않은 비율이다.

지난해 6월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의 사회를 만드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사람들”이라고 보도한 기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코노미스트’는 “사람들은 사생활을 편리함과 바꾸기도 한다. 휴대전화는 통화 상대는 물론 자신의 위치까지도 전화 업체의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다. 많은 사람은 일상의 편리함을 위해 이 정도의 사생활 노출은 감수한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시각이 참으로 예리하다.

개인이 주고받은 내용을 다른 사람이 살펴본다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는 프라이버시의 ‘완전한 보호’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번 수능부정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사회를 어지럽히는 범죄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메시지 수사’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디지털기기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언제라도 사생활이나 인권이 침해당할 개연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생활 침해가 겁난다면, 디지털기기 사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타인이 함부로 휴대전화 메시지를 살펴보거나 유출시키는 행위에 대해 감시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 200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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