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03 [칼럼니스트] 2004년 12월 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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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화로처럼 포근했던 겨울풍경
이규섭 (칼럼니스트,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고향은 마르지 않는 그리움의 옹달샘이다. 세월이 흘러도 고향의 풍경은 가슴에 샘물처럼 고인다. '그 곳을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하고 노래했던 정지용 시인의 '향수'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이 어린 시절의 고향정경이다.

몇 해전 충북 옥천 정지용의 생가를 둘러봤다. 안채는 1930년대의 전형적인 초가삼간이다. 복원해 놓은 행랑채와 흙담과 사립문도 옛 농가 그대로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은 시멘트 개천으로 변했고 청석교는 시멘트 다리로 바뀌었다. 마당에는 옛 다리를 재현해놓았다.

한약방을 경영했던 정지용의 아버지는 큰 길 쪽으로 마루를 낸 안채에서 환자들을 받고 치료했다. 취재에 동행했던 칠순의 정지용 아들은 "한 여름에도 방안에는 늘 질화로가 불씨를 품고 있었다"고 전해준다. 질화로는 고약을 녹여 환자에게 붙여주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고 한다.

난방시설이 변변치 못하던 시절, 질화로는 방안을 훈훈하게 덥혀주던 난방기구였다. 흙으로 구운 질화로에 잉걸을 묻어두면 은근하게 오래갔다. 찬바람에 꽁꽁 언 손을 비비며 방안에 들어서면 어머니는 질화로의 잉걸을 부젓가락으로 헤치고 손을 쪼여주었다. 얼얼하게 언 손은 금새 녹았다.

질화로에 삼발이를 놓고 뚝배기 된장을 보글보글 끓이거나, 석쇠를 걸쳐놓고 김이나 간고등어를 굽기도 했다. 긴 겨울밤은 질화로에 묻어 놓은 고구마처럼 익어가고, 질화로 가에서는 두런두런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질화로를 오래 쓰기 위해 삼베에 풀을 발라 바깥쪽에 발라놓았던 것도 알뜰 지혜다.

놀이시설이 제대로 없던 60년대, 썰매타기는 빼놓을 수 없는 겨울놀이다. 소나무 널빤지 바닥에 두 개의 각목을 나란히 붙이고, 각목 한 가운데 굵은 철사를 박아서 만든 앉은뱅이 썰매는 훌륭한 놀이기구다. 끝이 뾰족한 송곳 모양의 쇠꼬챙이를 꽂은 막대를 양손으로 잡고 얼음을 찍어가며 앞으로 달리면 한겨울에도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겨울방학 때 도시로 나갔던 대학생이 돌아와 은빛으로 빛나는 스케이트를 타고 폼 나게 쌩쌩 달리던 모습이 얼마나 멋있고 부러웠던지…. 요즘이야 인라인이나 롤러 스케이트로 도심을 요리조리 누비는 시대가 됐지만. 그 때는 은빛 스케이트와 털장갑과 빨간 머풀러를 얼마나 가지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한 겨울 참새잡기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고무줄 새총으로 참새를 잡는 일은 집중력과 명중률이 높아야 하기에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엄두조차 못 낸다. 밤이면 'ㄱ'자처럼 생긴 군용손전등을 가진 형들을 따라 참새를 잡으러 나섰다.

참새들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초가추녀에 둥지를 틀었다. 날씨가 덜 추우면 입구 쪽에 잠을 자고, 추울 땐 깊이 들어간다. 손전등을 비추면 눈이 부신 참새가 꼼짝못해 그냥 손으로 잡으면 된다. 둥지가 깊은 곳은 어깨까지 쑤셔 넣어야 한다. 질화로에 참새를 구워먹으면 고소한 맛이 혀끝에 감친다. 포장마차의 대명사였던 참새구이도 초가지붕과 함께 사라져 요즘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참새잡이 보다 스케일이 큰 놀이가 토끼몰이다. 산과 들판에 쌓인 눈에 발목이 푹푹 빠질 때가 제철이다. 토끼몰이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힘을 합쳐야 가능했던 겨울철의 가장 신나는 공동체 놀이이자 사냥이다.

산 중턱에 그물을 미리 쳐놓거나 그물이 없으면 몽둥이가 장비다. 두 패로 나누어 산중턱과 아래쪽에서 "와∼" 함성을 지르며 토끼를 몰았다. 굴에 숨어 있던 토끼가 함성에 놀라 튀어나온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 아래쪽으로는 제대로 뛰지 못한다. 우왕좌왕할 때 몽둥이로 잡는다. 토끼탕은 청년들과 마을 어른들의 술안주로 제공되고 아이들은 겨우내 토끼털로 만든 귀마개를 하고 다녔다.

지구온난화로 요즘은 눈도 자주 내리지 않고 쉽게 녹아버리지만, 그 시절 눈은 무릎까지 빠지는 것은 예사다. 장독대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털어 내고 마당에 쌓인 눈을 눈가래로 밀어내는 것도 겨울철의 일이었다. 눈이 내리는 날은 날씨가 포근해 어머니는 빨랫감을 들고 냇가로 나갔다.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 추녀 끝엔 수정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고, 아이스케키를 먹듯 아작아작 깨물어 먹었다. 아침에 마당에서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가락이 쩍쩍 달라붙었다. 겨울 내내 갈라졌던 볼과 손등은 봄이 돼야 아물었다.

저녁 때 아궁이에 장작이나 생솔가지로 군불을 지피면 아랫목은 절절 끓어도 윗목은 냉골이었다. 웃풍까지 드세 방안에서도 하얗게 입김이 서렸다. 웃목의 자리끼도 얼어붙었다. 아랫목에 갈아놓은 솜이불에 발을 넣으면 따뜻한 온기가 온 몸에 나른하게 퍼진다. 가난했어도 그 시절의 겨울은 질화로의 은근한 온기처럼 푸근하고 따스했다.

- '정식품' 사보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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