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89 [칼럼니스트] 2004년 11월 1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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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의 해외여행(8)
영화 '로마의 휴일'을 따라가 본 로마

이규섭 (칼럼니스트,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로마의 명소엔 휴일이 없다?  

유럽 순방 일정에 지친 앤 공주가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로마의 밤거리를 헤맨다. 길에서 잠이든 앤을 신문기자 조가 발견하고 아파트에 데려와 재운다. 다음날 조는 그녀가 공주임을 알고 특종을 따낼 좋은 기회로 여기고 로마관광 안내를 자청한다. 로마의 명소를 함께 다니며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1953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세기의 명배우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iday)'은 지체 높은 공주와 평범한 신문기자의 '하루사랑'을 그렸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영원한 사랑'이 되어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공식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앤 공주는 "유럽순방 중 어느 도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로마입니다. 평생 로마를 기억할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배경을 따라 로마를 둘러보았다.                          
                         
                    바로크양식 궁전은 미 대사관저   

앤 공주가 묵었던 바로크 양식의 궁전은 로마 비토리오 베네토 거리에 있는 미국대사관.  영화 속에서는 겉모습만 보여줬을 뿐 내부는 물론 스튜디오다. 베네토는 1960년대 카페거리로 유명했으며 영화 스타들이 즐겨 찾던 거리다. 수면제에 취한 공주가 길거리에 쓰러져 잠든 곳은 옛 황제들의 공회당 터. 조 기자가 앤 공주를 처음 만난 곳이다.

베니치아광장과 콜로세움(Colosseo)사이에 위치한 공회당 터(Foro Romano)는 로마제국의 번영과 멸망을 보여주는 역사의 무대다. 당시의 원로원, 개선문,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 유적들이 폐허 속에 남아있다.

앤 공주를 하룻밤 재워주었던 조 기자의 아파트는 문패만 바뀌었을 뿐 마르구타거리 51번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아파트에서 나온 공주는 시장에서 싸구려 샌들을 사 신고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옆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른다. 당시 전 세계에 유행시켰던 숏 커트 헤어스타일을 탄생시킨 곳이다.

* 사진 : 영화 '로마의 휴일' 한국포스터

영화 속 미장원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리 만무하지만 트레비 분수는 관광객의 발길로 늘 붐빈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속설로 분수 안엔 동전들이 가득하다. 공주가 이곳에 동전을 던지는 장면은 없다.

삼거리란 뜻을 지닌 트레비 분수는 1732년 착공하여 30년만인 1762년에 완성한 흰 대리석 작품이다. 개선문을 본뜬 벽화를 배경으로 거대한 1쌍의 반인반수(半人半獸) 해신(海神)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넵투누스상(像)이 조각되어 있는 로마의 명소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스페인광장

'로마의 휴일'을 떠올리면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스페인광장. 앤 공주가 짧은 머리를 찰랑거리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계단을 내려오는 영상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137개의 계단자체가 광장이다. 오드리 햅번이 13번째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앉아 있어 13번째 계단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조가 우연을 가장해 다시 만나는 명 장면을 촬영했다.

배낭여행객의 휴식처이기도 하고 여름철이면 야외 패션쇼가 열린다. 계단 앞 조각배 분수 주변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광장에는 꽃 가계들이 즐비하다. 계단 위 트리니타 에이 몬티 교회 앞엔 초상화를 그리는 거리의 화가들이 진을 치고 관광객의 표정을 살핀다.  

스페인광장은 스탕달, 발자크, 바그너, 리스트, 브라우닝 등 이름을 떨친 문호나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곳. 지금도 스페인계단 오른쪽에는 키이츠의 집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예술인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비를 피해 공주와 조가 차를 마셨던 안티코 카페 그레코(Antico Caffe Greco)는 요즘도 성업 중이다. 1760년 생긴 안티코 카페의 내벽에는 '쿼바디스'의 작가 헨릭 솅케비치를 비롯, 이곳을 찾았던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노천 카페에서 식사하고 빗속을 걷고싶다"며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하루를 간절하게 바랐던 공주가 조 기자, 사진기자와 함께 점심을 먹었던 카페는 판테온 신전 바로 옆에 있었다고 하지만 찾을 수 없다. 공주가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 물던 장면이 나온 곳이다.

판테온(Pantheon)신전은 118∼128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세운 로마 최대의 원형건축물이다. 원래는 둥근 천장 가득히 짙은 청색을 입힌 동판을 씌우고 황금별을 빼곡하게 붙여 놓아 별빛 총총한 밤하늘의 장관을 연출했다고 한다. 장식이 다 떨어져나간 천장은 빛이 바래고 낡아 우중충하지만, 고개를 젖히고 올려보면 천장 가운데 뚫린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다.
                        
                    시험에 들게 하는 '진실의 입'

가이드를 자청한 조가 공주를 데려간 곳은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Colosseum). 거대한 원형경기장의 앙상한 뼈대와 잔해들은 덩치 큰 공룡처럼 섬뜩하다. 포효하는 맹수와 생사를 겨루던 검투사의 일그러진 얼굴도 떠오른다. 네로 통치시대를 그린 영화 '쿼바디스'에서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잔혹한 장면도 스친다.

콜로세움은 플라비우스 황제 때인 AD 72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 80개정도 되는 출구에 5만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으로 설치되어 있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콜로세움 주변을 공주와 조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 경찰서에 끌려간다. 거짓말로 둘러된 뒤 찾아간 곳은 코스메딘 산타마리아교회 입구 벽에 있는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 경찰서에서 나와 산타마리아 교회로 향하는 중에 계속 화면 배경으로 나오는 유적은 보아리움과 포르투누스 신전이다. 몰골이 흉측한 진실의 입은 그리스 시대의 맨홀 뚜껑으로 강(江)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해 놓았다. 앤과 조가 손을 넣으며 천진스럽게 장난치던 장면이 떠오른다.

진실의 입 앞에는 관광객들이 무슨 진실을 확인하려는지 길게 줄지어 섰다. 거짓말쟁이가 손을 넣으면 빠지지 않는 다는 것이 뻔한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으로 손을 넣어본다. 수많은 사람들의 진실을 시험한 너비 30㎝의 입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기가 흐른다.

'소망의 벽'앞에서 "사랑을 하기엔 하루가 너무 짧아요"라며 아쉬워하던 앤. 그러나 소망의 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로마 구 시가지를 둘렀던 아우렐리아 성벽의 일부일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이 유람선 파티를 즐긴 후 경호원들과 난투극을 벌인 곳은 테베레 강변에 있는 산텐젤로 성 부근이다. 로마 황제의 무덤으로 사용했던 산텐젤로 성은 하드리아누스가 135년경에 착공하여 139년 안토니누스피우스가 완성하였다.

정사각형 대좌(臺座) 위에 원탑(圓塔)을 세우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나무를 심었다. 정상에 작은 탑을 세운 분묘에는 카라칼라 황제 등이 매장돼 있다. 조와 함께 강물로 뛰어들었던 테레베 강은 악취가 풍길 정도로 지금은 오염됐다.
                     
                     로마는 도시전체가 거대한 박물관

"평생 로마를 기억하겠다"고 했던 기자회견장소는 콜로나 궁전이었으나 현재는 콜로나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교황 마르틴 5세 콜로나(1417-1431)가 궁전의 건립을 지시했지만 대부분의 구조물은 18세기의 것. 일반에게 공개되는 부분은 1654년부터 1665년 사이에 안토니오 델 그란데가 지은 갤러리다.

앤 공주 역을 맡아 열연하여 '오드리 신드롬'을 일으켰던 헵번은 1993년 저 세상으로 은막의 무대를 옮겼고, 그레고리 펙도 지난해 6월 87세로 타계했으니 명배우도 죽음은 피해 갈 수는 없다.   

로마(Roma)를 거꾸로 하면 아모르(Amor). 라틴어로 '사랑'을 의미한다. 로마는 한 번 방문한 사람을 다시 잡아끄는 묘한 마력이 넘치는 동경과 유혹의 도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명소 외에도 초기 그리스도 지하무덤인 카타콤, 1600명이 동시에 입욕할 수 있다는 공중 목욕탕 카라칼라 욕장, 이집트에서 운반해 온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있는 산피에트로 광장 등 로마는 도시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 여행쪽지

▶로마는 광대한 도시지만 역사적 중심지는 그리 넓지 않다. 주요관광지 대부분이 중앙역인 테르미니역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집중돼 있다. 박물관은 대부분 오후 1시에 문을 닫으므로 오전에 박물관부터 보는 것이 현명하다. 월요일은 휴관. 가장 대표적인 하루 코스는 콜로세움에서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을 지나 스페인광장, 바티칸까지 가는 코스다.
▶로마의 지하철 입구에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의 'M'표시가 있다. A와 B 두 개의 노선이 있으며, Termini역에서 교차한다. A노선은 Ottaviano역에서부터 스페인광장, 테르미니 역을 거쳐 산 조반니 교회를 지나 시내 동남쪽의 Anagnina역까지 연결된다. B노선은 Rebibbia 역에서부터 테르미니역, 콜로세움, E.U.R.을 지나 Laurentina역까지 연결된다. 티켓은 자동판매기나 담배 가게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주요 버스 터미널은 Termini역 앞의 500인 광장, 중앙우체국 앞의 산 실베스트로 광장, 베네치아 광장 등. Fermata라고 표시되어 있는 버스 정류장 어디에서나 탈 수 있다. 버스에는 문이 3개 있는 데 앞문은 정기권 전용, 뒷문은 승차권 전용, 가운데가 내리는 문이다.

-2004.11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