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83 [칼럼니스트] 2004년 10월 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글보기 | 거시기머시기 | 손님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 | columnist.org(홈)

변화하는 사회 진화하는 현대인


이규섭 (칼럼니스트,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유행어는 사회의 변화와 세태를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던 IMF 시절엔 '명퇴'라는 신조어가 직장인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평범한 인사조차 감원 회오리 속에 "당신은 무사하십니까"로 들렸다. '살 빼, 방 빼, 책상 빼' 이른바 '3빼'는 목을 잔뜩 움츠린 채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처지를 잘 드러낸 유행어였다.

올 봄 4·15총선을 치르면서 부정선거를 고발하여 보상금을 노린 '선파라치(선거파파라치)'와 '몰카족(몰래카메라족)'이 설치더니, '디찍병(디카로 찍으려는 유행병)'에 걸린 '디카족'이 늘어났다. 성매매 범죄 신고보상제도가 실시되자 사생활 침해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性)파라치'가 출현하여 약삭빠른 세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노후생활을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려는 '통크족(TONK· Two Only, No Kids)'이 늘어난 것도 가족해체시대의 서글픈 현상이다.

인터넷 문화에서는 '욕(辱)티즌, 악(惡)티즌, 디지털(digital)도둑'이 독버섯처럼 번지며, 사르바이트(cyber+Arbeit)란 신종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미니 홈피'와 '블로그'가 폭증하는 가운데 인터넷에 뜬 글과 그림을 퍼오는 '펌킨족(族)' 크게 늘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 아니라 '인터넷 입 소문'이 천리를 가는 세상이 됐다. '삼팔선'이나 '오륙도'는 이제 한물 간 유행어다. '직장인 이모작(二毛作)시대'가 열린지도 오래다. 실질소득 감소를 만회하거나 창업자금을 모으기 위해 '투잡스족', '스리잡스(three jobs)'족에 '문어발족'까지 등장했다.

그뿐인가. '재(財)테크, 시(時)테크'에 이어 '금(金)테크, 노(老)테크'까지 해야하니 고달플 수밖에 없는 것이 샐러리맨 신세다.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고 불안한 마음과 우울증을 술로 위로 받는다. 직장인 4명 중 1명 꼴로 알코올중독 초기증세를 나타낸다는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차라리 젊었을 때 잘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 빨리 은퇴하겠다며 부업전선에 뛰어든 경우도 많다.

구조조정바람에 직장은 '가시방석'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구조조정바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샐러리맨의 절반 가까이는 자기 직장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봉협상 때 자발적 퇴직과 명예퇴직을 유도하고 기업합병으로 퇴직하거나 부서 통폐합에 따른 인력감축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구조조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에 더욱 충성하여 업무성과를 올리든지,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해 자격증을 따거나 더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쏟을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충전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절박한 심정이 '샐러던트'들을 양산하고 있다. '샐러던트(Saladent)'는 직장인을 뜻하는 '샐러리맨(Salaryman)'과 학생을 뜻하는 '스튜던트(Student)'의 합성어로 회사를 다니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각종 공부를 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샐러던트들이 늘어나면서 실용서와 자기계발서적이 인기를 끌고 학원가는 직장인들로 붐빈다. 서점과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재테크·경제관련 서적과 자격시험, 대인관계, 동기부여 등 자기계발 서적의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직장인들의 학습열풍으로 서울 종로와 강남 일대의 대형 외국어학원과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 학원은 직장인들로 넘친다. MBA 유학반과 컴퓨터 자격증 등 직장인들을 위한 전문학원도 생겼다. 대다수 국내 대기업들이 승진 때마다 일정 수준의 어학 능력을 갖출 것을 의무화 한 것도 샐러던트를 늘리는 요인이다. 기업 입장에선 샐러던트가 늘어나면 조직원 개인의 능력은 향상되겠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직원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실정이다.

얼마 전 은행에 다니는 30대 조카가 방문했다. 은행원은 60,70년대 하이칼라 샐러리맨의 대명사였다. 흰 와이셔스에 넥타이를 반듯하게 맨 은행원의 모습은 블루칼라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은행은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이라 어느 순간 명예퇴직 대상에 오를지 장담할 수 없어 불안하다"며 퇴근 후 중국어 강좌를 듣는다고 한다. 요즘 영어는 기본이고 중국어를 배워야 통하는 시대라 중국어 붐이 일고 있다.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은 마음 든든하지만, 직장에 다니면서도 불안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직장인도 프로 지향해야 생존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세워야 한다. 뚜렷한 목표 없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샐러던트 분위기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무장하여 자기계발을 꽤하는 게 상책이다.

프로정신이란 자기분야의 전문지식을 쌓고 자기 일에 부가가치를 높여 몸값을 올린다는 점에서는 프로스포츠선수와 다를 바 없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성공한 스포츠선수는 기본기(基本技)를 다지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이고, 자신만의 주특기를 개발하여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야 승리의 영광을 차지한다.

자기분야의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에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프로선수처럼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장점과 장기가 있게 마련이다. 그 장점을 살려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외국어를 공부하고 사이버대학이나 야간대학원을 다니며 자신을 업그레이드시켜 경쟁력을 높이는 진취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진정한 프로는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나야한다. 예상치 못한 위기와 난관에 직면했을 때 환경 탓이나 적성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아마추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직장생활의 밥그릇수가 늘다보면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어떻게 풀리겠지" 낙관론으로 위기를 비껴가려는 심리는 금물이다. 정확한 상황인식과 함께 대안을 찾아야 역경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지금은 연봉시대다. 프로선수가 철저한 몸 관리와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연봉협상에 불리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겸양지덕을 미덕으로 여기던 예전에야 자기자랑을 늘어놓으면 팔불출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자신을 알려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연봉협상 때 유리하다. 헤드헌팅 업체를 활용하여 자신의 몸값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적극파가 있을 정도로 세상은 약아졌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곤 자신을 전문가로 생각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신이 하는 분야의 숙련도는 곧 프로페셔널이다.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지식, 시장분석 능력, 인적 네트워크 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전문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습득한 전문지식을 활용할 능력을 갖추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샐러던트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샐러던트는 단지 20대, 30대 젊은 직장인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오륙도'소리를 듣지 않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만학의지를 불태우는 직장인들도 늘었다. 사이버 대학에 등록하여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 강의를 듣는 이도 있다. 정년을 앞 둔 57세의 6급 주사는 사무관 승진을 통해 정년을 60세로 늘리려 도전장을 냈다. 샐러던트는 이제 나이를 가리지 않는 시대다.

비단 직장인뿐만 아니라 전업주부나 퇴직자들도 평생학습은 생존의 버팀목이다. 소비위축 속에 부자들마저 지갑을 닫으면서 주부들의 부업전선에도 비상이 걸렸다. 파출부 자리마저 크게 줄었다. 어지간한 식당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싼 조선족 여인들의 차지가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취업에 필요한 재교육 강좌를 노크하는 주부들이 부쩍 늘었다. 여성 취업준비교육기관도 다양하다. 여성부와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여성인력개발센터와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여성회관 100여 곳에서 저렴한 수강료로 취업교육을 받을 수 있다. 컴퓨터 그래픽 등 컴퓨터 강좌, 메이크업·피부관리 등 미용강좌, 텔레마케터·상품포장 등 서비스 강좌, 발관리·스포츠 마사지 등 건강강좌, 어린이 독서지도·동화구연 등 어린이 관련 강좌 등 수두룩하다.

환경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고학력 주부들은 숲 해설가 과정, 역사체험 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후 자원봉사로 시작하여 초중고교 체험학습 강사나 특별활동 강사 등 전문강사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쇼핑몰 창업으로 전업주부를 탈출한 맹렬 여성도 부지기수다.

인생은 끝없는 경쟁과 도전의 연속이다. 학원과 입시전쟁에 시달려야 하는 초중고교생부터 취업 전쟁에 피가 마르는 대학생,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직장인, 주부, 일반인까지 단 한 순간도 경쟁하고 도전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를 힘겹게 살고 있다.

치열했던 언론현장에서 퇴직하면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니 했던 생각은 오판이었다. 끊임없이 배우고 스스로를 계발하지 않으면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대처할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의 숙명이다.

-삼성 사외보 <함께사는 사회> 11·12월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