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82 칼럼니스트 2004년 10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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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부 아저씨가 보내주는 편지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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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능선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은/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편지를/ 전해주던 배달부가 사립문도 못 가서/ 북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6·25전쟁 중인 1952년 유춘산이라는 가수가 불러서 히트했던 '향기 품은 군사우편'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이 노래는 이후 많은 가수들이 다시 불러 아직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가사내용 때문에 5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게는 야릇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행주치마로 씻은 손', '그대의 향기 품은 군사우편', '편지를 전해주던 우편배달부', '북받치는 기쁨에 울었다'는 내용이 그렇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좀 든 사람들 가운데는 이 노래를 '애창곡'으로 삼은 경우가 많다. 특히 이 노래에서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은 '편지를 전해주던 배달부'이다.

옛날에는 편지를 배달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편)배달부'라고 했으나, 이 호칭은 격(格)이 낮다고 해서 1980년대부터는 '(우편)집배원'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우편배달부'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와 너무 친밀한 탓인지도 모른다.

우편배달부는 노래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쓰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파블로 네루다와 작은 어촌마을의 우편배달부가 이어간 우정을 그린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저자 : 안토니어 스카르메타)는 이를 원작으로 한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로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미국 프로농구선수 칼 말론의 별명이 우편배달부(Mailman)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우편물을 배달해주는 우편배달부처럼, 말론은 전성기 때 게임마다 20점 이상 득점, 10개 이상 리바운드의 성적을 올리면서 이런 별명을 얻었다.

예나 지금이나 집배원아저씨들은 우리들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각종 고지서나 요금청구서를 더 많이 배달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반가운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주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요즘엔 쓸데없는(?) 우편물이 많아지면서 집배원의 업무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우편물이 가득 찬 가방을 메고 이집저집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연애를 할 때 e-메일을 보내고, 그것이 싫증나면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전화가 그리 흔치 않았고 전화료도 '장난'이 아니었던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편지는 연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였다.

열렬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하루에 몇 번씩 문자를 보내는 것과 다를 바 없겠으나, 힘들기로 따진다면, 편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편지는 특히 군대에 갓 입대한 훈련병들에게 고된 훈련을 견뎌내게 하는 힘을 갖게 해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애인이나 친구, 부모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지금은 다른 통신수단이 발달해서 편지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휴대폰이 있
고, e-메일이 있으니 그럴 일은 거의 없어졌다.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사람이라도 언제, 어디서든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시대이다. 더구나 e-메일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서, 편지는 이래저래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음성통화 대신에 문자를 이용하는 것은 왜일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솔직해진다. 이상할 만큼 마음속에 있는 것을 쉽게 털어놓게 된다. 그래서 문자(편지, e-메일, 문자메시지를 포함해서)를 주고받으면 '인간미'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편지를 쓸 줄 모른다"며 혀를 찬다. "그놈의 컴퓨터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탄하는 이도 있다. 심지어 "전화를 해도 간단한 인사만 하고 끊어버린다"며 섭섭해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쓰기'를 좋아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e-메일을 보내고, 틈만 있으면 휴대폰으로 어디론가 문자를 날린다. 손으로 쓰는 게 아닐 뿐이지, 글 쓰는 분량은 부모들의 젊었을 때보다 훨씬 많다.

젊은이들이 e-메일을 많이 이용하고, 문자 주고받는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편지쓰기'가 얼마든지 되살아 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컴퓨터로 쓰는 편지(e-메일)를 종이에다 쓰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어른들에게 보낼 때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점잖게 표현하고, 친구에게는 e-메일로 그렇게 하듯이 자유분방하게 쓰면 될 것이다. 문제는 언제 펜과 종이를 잡는가 하는 데 있다.

볼펜으로 쓰려하니 잘 써지질 않는다고? 그렇다면 워드로 친 다음에 그대로 종이에 옮기면 될 일이다. 프린트해서 '내가 쓴 편지'라며 보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손으로 써야 한다. 그래야 정성이 깃들기 때문이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편지 쓰기도 정말 좋은 때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이나 존경하는 스승님, 그리운 친구에게 자신이 직접 쓴 편지라도 한 통 보내고 싶은 계절이다.
이 가을, 누구에게든 딱 한번만이라도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대신에 편지를 써보자. 사람냄새가 나는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날로 각박해져 가는 우리사회를 따뜻하게, 고달픈 우리들의 삶을 활기 있게 해 줄 것이다.

                -한국남동발전 사보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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