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72 [칼럼니스트] 2004년 9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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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술 즐긴다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animalpark

우울할 때면 생각하는 술 한잔(기분 좋아도 생각나긴 마찬가지)! 동물들도 술 생각이 날까?

우선,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개박하(catnip)를 먹는 고양이! 고양이를 비롯한 몇몇 고양이과 동물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 박하를 먹고 뿅 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개박하를 먹은 고양이들은 황홀경에 빠진 듯 정신이 몽롱해 보이는데, 있지도 않은 쥐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허공에서 앞발을 허우적대기도 한다.

재규어 역시 속이 좋지 못해 먹은 것을 게워내고 나면 장 청소를 위해 특정 넝쿨 잎들을 골라 먹는데, 묘한 부작용이 뒤따른다. 카리스마 넘치는 재규어가 사지를 벌린 채 벌러덩 드러누워 초점 없는 눈동자로 네다리를 허우적대 모습이란! 이 풀들은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 주는데 지역 원주민들도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사냥을 하거나 탈이 났을 때 이 풀을 먹는다.
 

심각한 멸종 위기종인 마다가스카르의 검정 여우 원숭이들은 독을 뿜는 노래기를 열심히 잡는다. 살짝 살짝 깨물면 방어차원에서 노래기들은 청산가리를 포함한 맹독을 뿜어대는데, 이것을 입으로 빨아 온 몸에 발라댄다. 기생충 방지 및 말라리아 예방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이들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뽕 맞았구나' 라는 생각 밖엔 안 든다. 높다란 나무 위에서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며 곡예를 하는 것은 물론 황홀경에 빠진 듯 눈이 풀리고, 입에선 침까지 질질 흐른다. 그러다가 결국 쓰러져서 잠이 든다.  

또, 철저한 사회 조직을 이루고 사는 벌들은 꿀 이외에 달콤한 보리수 수액도 좋아한다. 이 수액은 금방 발효되어 알코올 농도 6% 술로 변한다. 너무 많이 마신 벌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날다가 기절해서 철퍼덕 땅에 떨어지기도 하며,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올라갔다 내려갔다 갈팡질팡대는 등 꼭 술주정뱅이 사람들 같은 행동을 한다.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집을 찾았다 해도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경비벌에 의해 쫓겨나고 만다.
 
경비벌은 조직의 안녕을 위해 이들을 거칠게 다루는데, 심하면 다리를 물어 뜯어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의 유혹이란 어찌나 강력한지! 정신 못 차리고 되풀이되는 음주 행각 때문에 다리가 몇 개 밖에 안 남은 녀석들도 꽤나 많다. 어쨌든 엄격한 규정 아래 살아가고 있는 벌들의 세계에서 술주정뱅이들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아프리카의 사바나 원숭이는 오래 전 노예들과 함께 카리브해 세인트 마틴으로 유입되었는데, 이들은 오래 전부터 버려진 사탕수수가 알코올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관광지가 된 지금, 이들은 애써 사탕수수를 찾아 다닐 필요 없이 관광객들을 위한 해변가의 술집을 털거나, 선탠 중인 손님들의 술을 훔쳐먹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도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과일음료나 탄산음료만 즐기는 녀석, 늘상 술에 쩔어 있는 녀석(12%), 24시간을 완전히 고주망태로 사는 녀석(5%)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 비율은 인간세계에 나타나는 알코올중독자 및 비음주자의 비율과 비슷하다고 한다. 술이 취한 원숭이들은 물건을 넘어뜨리며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괜히 다른 원숭이들에게 싸움을 걸기도 하는 등 추태를 부리는 모양새도 사람과 너무 똑같다.


-KTF 드라마클럽 200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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