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69 칼럼니스트 2004년 9월 2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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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타임'에서 '코리언타임'으로

이 재 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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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타임' KTX. '세계 수준의 고속열차'를 부르짖어온 KTX가 운행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승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9월20일자 어느 중앙 일간지의 인터넷판에 「고속철마저 '코리안타임'」이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내용이다.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은 필자가 초등학생이던 1950년대에 만들어져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까지 크게 유행했던 말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이 유행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더니, 1980년대 이후에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젊은 세대가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의 뜻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25살짜리 딸아이한테 물어보았다. 대뜸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들은 말인데, 약속시간에 늦는 경우를 말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아예 처음 듣는 젊은이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깜짝 놀랐다. 50대인 필자도 거의 쓰지 않는 말을 20대의 딸이 그 의미까지 알고 있다니….

이 말의 뜻은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코리언타임'은 6·25전쟁이후 널리 쓰인 말로, 우리국민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용어이다. 이다. 당시 우리들은 자조적으로 이 말을 즐겨 썼다. 30∼4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모르긴 해도 미군들이 당시에 만들어낸 '신조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1950년대에 미군부대 등에서 일하던 한국사람들이 워낙 시간을 잘 지키지 않아, 약속시간을 어기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쓰기 시작한 게 아닌가싶다.

"미국문화는 시간을 중심으로 형성되며,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무례하고 사업에 있어서 진지함이 결여된 것으로 간주된다. 한국인들은 실제로는 참을성이 부족하며, 교통혼잡으로 정각에 도착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지만, 시간에 맞춰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인들은 한국인이 늦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표시하기 위해 '코리언타임'이라는 어구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이 어구가 포함하고 있는 비난의 의미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영어로 먹고사는(?) 민병철 박사(민병철어학교육연구소 소장)가 2001년 9월에 쓴 《글로벌 에티켓을 다룬 어글리 코리언 어글리 어메리컨》의 '일반적인 한국인의 행동 (Common Korean Behavior)'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특히 "많은 한국인들은 이 어구가 포함하고 있는 비난의 의미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대목을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어느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국, 한국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코리언타임(Korean Time)이다. 한국인들이 시간을 지키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인가? 시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밤낮으로 뛰는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무역에서 선적 날짜를 맞추기 위해, 헬리콥터까지 이용하였다는 율산그룹도 있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을 건축하면서, 삼성건설은 일본보다 한달 늦게 시공을 하였어도 마감공사를 일본보다 앞서 상층의 탑을 올린 사례도 있지 않는가?"라며 '코리언타임'이라는 용어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감을 나타내고 있다.

또 어느 정보통신회사의 홈페이지에는 3월23일자 게시판에는 어느 방문자가 '멋지게 사는 10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올려놓은 글은 너무 절묘해서 박수까지 치고싶어진다. 이 네티즌은 네 번째 방법에 "시간관념에 철저하자. 요즘의 코리언타임은 5분전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말 옳은 말이다. 필자는 "요즘의 '코리언타임'은 5분이나 앞당겨진 시간을 말한다"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제는 앞당겨진 '코리언타임'을 지키는 사람이 멋지게 살뿐만 아니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사실 50대 60대 나이의 사람들은 어릴 때 이 말을 자주 썼다. 그러나 1970년대 "우리도 잘 살아보세"라며 '조국근대화'에 앞장서면서부터는 자신도 모르게 이 말을 쓰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코리안타임'이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필자도 1969년 군에서 제대하고 1970년에 다니던 대학에 복학한 이후로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을 한번도 쓰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그 말이 우리 스스로를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이었고, 졸업 후 신문사에 입사하면서는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코리안타임'을 지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어느 직장에서든 '옛날식 코리안타임'을 지켰다가는(?) 요즘말로 퇴출되기 십상이었다. 속도전을 벌여야 했던 1980년대 경제성장기에 우리는 '빨리빨리 정신'을 바탕으로 근대화라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해야했다. 그래서 코리안타임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단언하건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옛날식 코리안타임'이 사라졌다. 아니 죽은 거나 다름없다. 이제는 미국사람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매사에 부지런한 코리언들에게 '코리안타임'은 TV사극에 자주 나오는 용어처럼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지금은 '현대식 코리언타임'이 있을 뿐이다. (필자는 지금 '코리안타임'은 부정적으로 '코리언타임'은 긍정적으로 쓰고 있음에 유해주시기리 바란다.)

이 기사를 쓴 기자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태어나기도 전에 생겨나서, 태어나서 말을 배울 때쯤에는 거의 사라져버린(가끔은 듣거나 썼을 수도 있겠지만) '코리안타임'을 별 생각 없이 기사에 쓰는 태도 아무리 생각해도 한심한 일이다. 이 기사를 체크한 상급자(차장 또는 부장)도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저널리스트라면 아직도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을 보면, 지적해주거나 나무라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도 앞장(?) 서서 사어(死語)에 가까운 이런 말을 함부로 쓰다니…. 국민을 계도해야 할 기자들이 글을 쓸 때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가 요구된다.

5∼10분 늦는 것을 뜻했던 옛날의 '코리언타임'은 벌써 사라지고, 5∼10분 빠른 것을 의미하는 현대의 '코리언타임'이 새로 태어났다. 5분 이상 늦은 '코리안타임'은 말할 것도 없고, 5분 이상이나 빨라진 '코리언타임'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다.

일을 할 때나 마칠 때는 물론, 약속시간에 나갈 때도 5분 이상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요즘의 '코리언타임'이다. 어느 네티즌의 말대로 인생을 멋지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 '코리언타임'을 지킵시다.
-200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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