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47 칼럼니스트 2004년 8월 1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

남의 주민번호 도용하는 위험한 네키즈


이 재 일
http://columnist.org/netporter

경찰관 2명을 살해하고 도주한 이학만이 범행 1주일 만에 한 40대 주부의 기지로 검거되었다. 범인은 검거직전 자해를 했으나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은 건졌다. 자세한 범행동기는 차차 밝혀지겠지만, 검거과정에서 경찰이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였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언론들은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미숙하게 대응한 것에 대해 '주부보다 못한 경찰'이라며 호되게 질책하고 있다. 출동할 때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고, 범인이 있는 집의 정확한 호수를 몰라 남의 집을 기웃거렸다. 그것도 모자라 범인이 있는 집의 초인종을 눌러 거실 모니터에 경찰의 모습을 드러냈으며, 현관문까지 쾅쾅 치는 등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저질렀다.

경찰의 검거작전이 서툴러도 보통 서투른 게 아니었다. 이쯤 되면 범인을 잡으려고 출동했는지, 도망가라고 알려주기 위해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만약 4살짜리 손자와 함께 인질로 잡혀 있던 주부가 침착하게 대응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변을 당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학만의 검거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 못지 않게 수사도중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해프닝이 하나 벌어졌었다. 바로 초등학생이 범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일이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지난 3일 서울 돈암동 삼성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이모군(12)은 동네 형인 하모군(13)이 아파트상가 벽에서 뜯어온 범인의 수배전단지를 건네 받아 이씨의 주민등록번호로 한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실명(?)을 확인 받고 개인정보를 입력한 뒤 회원에 가입했다. 사이트에서 요구하는 정보는 대부분 거짓이었지만 e-메일주소는 사실대로 적었다.

경찰은 이 아파트단지 안의 PC에서 범인의 주민번호로 개설된 ID가 접속되었다는 첩보를 입수, 3일 오후 5시부터 특공대 등 경찰 400여명을 투입한 '이학만 수색작전'에 돌입했다. 경찰은 아파트 2개동 700여 가구에 대해 밤늦게까지 '수색소동'을 벌였지만 이학만을 검거할 수는 없었다. ID접속자는 결국 초등학생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경찰은 4일 낮 이군으로부터 범행일체(?)를 자백 받았으나 형사처벌은 하지 않고 훈계만 하고 끝냈다. 이군이 수배전단에 적힌 주민번호가 살인범의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미성년자가 호기심에서 그랬을 뿐 악의는 없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자 어떤 네티즌은 '저 꼬마놈 처벌 안 합니까? 하룻밤 동안 그 아파트단지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심은 누가 보상하나요?'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보호자라도 처벌하라'거나 '혼내서 유사범죄 없도록 하라'는 주장도 있었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수배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전국에 뿌린 경찰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수배자의 주민번호가 명시된 수배전단이 민간에 배포한 것이 결과적으로 수사상 혼선을 초래했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이 똑 같은 수법으로 일을 저질러도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견해를 달리 했다.

'전단에 주민등록번호를 넣어 문제를 일으키게 했다는 것은 흉기살인의 원인이 부엌칼 만드는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는 격이다. 수사방식을 공개수배로 전환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순기능이 더 많은 만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중요 피의자의 신상정보는 자세히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울경찰청 김병철 수사과장이 한 말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수배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철없는(?) 어린이가 호기심에서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갖고 특정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현실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금 인터넷세상에서는 주민번호를 도용한 뒤 사기행각을 벌이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주민번호를 도용한 미성년자들의 성인사이트 가입,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휴대폰 장만하기 등의 부작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접수된 내용을 보면 주민번호 또는 ID 도용 등 타인정보의 훼손·침해·도용과 관련한 민원건수는 지난해 상반기 3,400여건에서 올해 4,500여건으로 34% 증가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은 이에 대해 '사업자의 고객관리에 있어서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만한 본인확인 수단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국가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인터넷사이트들의 '부모동의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31조(법정대리인의 권리)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만 14세 미만의 아동으로부터 개인정보를 수집할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사이트에서는 아동들이 회원가입을 원할 경우 부모 등 '법정대리인'이 주민번호와 e-메일주소를 먼저 입력토록 하고, 그 다음 동의여부를 묻는 메일을 보내 대리인이 이를 수락할 때 가입을 허락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이트들은 동의메일을 수신했다는 것만으로 대리인의 신원은 확인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입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어린이가 부모의 메일주소만 입력하면 주민번호나 신원확인을 하지 않은 채 가입을 허락하는 사이트들도 적지 않다.

이런 허점 때문에 상당수 어린이들이 다른 사람의 주민번호와 e-메일을 쓰고 있으며, 친구들끼리 서로 '동의메일'을 주고받는 형태로 성인용 및 게임 등 유료사이트에 가입하기도 한다. 이들이 쓰는 동의메일은 대부분 불법적으로 취득한 성인들의 것이다. 이렇다면 '부모동의'는 있으나마나한 무용지물이라고 하겠다.

여름방학 기간인 요즘 많은 어린이들이 인터넷세상에서 우글거리고 있다. 아침에 들어가서 실컷 놀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나오는가 하면, 밤새도록 그곳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인터넷가출'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에 빠져 현실세계로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인터넷가출 청소년은 이른바 '위험한 넷키즈(Netkids)'이다. 이들은 호기심이 많은 만큼 어른들이 생각지도 못한 온갖 희한한 사건들을 저지른다. 자살카페나 엽기카페를 직접 개설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주민번호 도용은 기본이다. 그래야 어른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사이트의 회원이 될 수 있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키즈의 이 같은 행태를 근절할 방법은 없는가. 회원가입 때 과연 '부모동의'가 사실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이트들의 노력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일인가. 여기저기에서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문제의 해답을 청소년들에게 구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부모세대들이 나서서 풀어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식 키우는 부모들은 애들의 장래를 위해 평소의 생활태도를 점검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어느 네티즌의 평범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서울칼럼니스트모임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