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46 [칼럼니스트] 2004년 8월 1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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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왜곡 규탄, 왜들 이러는가


홍순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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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5일경부터 TV를 비롯한 모든 언론 매체에서 일제히 고구려사 왜곡을 주요 이슈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 발단은, 중국 외교부가 그들 홈페이지에서 해방 이전의 한반도 역사에 대한 설명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외교통상부 고위 관료들이 중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즉시 항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에 이어, 국회의원들이 '고구려사 왜곡 및 역사 편입 시도 중단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에 대책특위를 만들고, 야당 당수가 왜곡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중국 정부에 요구했다는 등의, 고구려에 관계된 뉴스, 사설, 해설, 특집, 논문, 인터뷰, 중국 현지 르포 등이 이 글 쓰기를 마치는 8월 중순까지도 모든 언론 매체에 도배질하듯 널렸다.

위 보도들에 붙인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땟놈 때려잡자', '핵폭탄 개발하자', '전쟁을 불사하자' 따위의 초등생 낙서 비슷한 내용이 주류고, 댓글 숫자도 지난 겨울과 봄의 왜곡 규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다. 지금은 네티즌들조차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사실 최근처럼 사회 변동이 급격하며, 국민연금 반대, 신행정수도 건설, 이라크 추가 파병 등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큼직한 이슈가 한꺼번에 터진 적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발등에 떨어진 불도 아닌 고구려사 왜곡을 언론이 일제히 그리고 집중적으로 보도한다는 것은, 국민의 여론을 오도(誤導)하고 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고구려사 왜곡 규탄을 언뜻 보면, 우리 역사를 지키겠다는 순수한 의도로 느껴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만 느낄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 됐으며, 매년 대중국 투자만도 수십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런 경제적 상황에서, 1천 몇백년 전의 역사를 가지고 그들과 시비를 계속 벌일 때 한국이 얻는 이득이 뭔가? 시비를 벌이더라도 고구려사의 현장이었던 북한이 나서는 것이 마땅하지, 그들은 왜곡에 대해 일체 공식적인 발언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왜 한국이 집요하게 나서는가? 그리고 고구려사를 왜곡했다면 왜곡을 시정하라는 선에서 끝내면 되지, 왜 만주나 북한의 소유권이 어떻고, 간도 협약이 어떻고 하여 영토 문제로 확대시키는가? 이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은 고구려사 왜곡 규탄이, 한국 흔들기의 한 수단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왜곡 규탄의 내용도 논리적인 것이 아니고, 감정에 치우친 것들이다. 즉,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가 어떻고, 광개토대왕비에 보호 건물을 짓고,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하고, 고구려 유적을 어떻게 보수, 관리하고, 유적 안내판에 중국 문화재라 써 놓았고, 중국 어느 신문 또는 잡지에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라 썼다는 등을 근거로, 중국이 고구려사를 '빼앗았다', '뒤통수를 쳤다'는 등 열을 낸다. 그런데 중국도 주권을 가진 나라로, 그들 영토 안에서 위의 행위들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고구려에 관계된 사항은 모두 한국의 허가를 받고 하라는 주장밖에 안 된다.

고구려사 왜곡의 핵심이라 할 사항은 2002년에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이다. 이 작업은, 동북3성(만주)의 현재 주변 정세에 맞춰 그 곳 역사를 다시 해석한 중국 학자들의 논문을 모으는 것이다. [서울칼럼니스트모임 제933-934회 '고구려사 유감' 참조] 동북3성을 통치하던 나라들 중 하나인 고구려에 대한 논문이 제출됐는지 안 됐는지는 아직 그들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 않다. 제출되는 논문들을 보고, 그 내용은 틀렸고 이것이 진실이라고 한국 학자들 역시 논문으로 반박하는 것이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바른 항의며 대처일 것이다. 2천여년 전부터 7백여년 동안 존속했던 고구려에 대해서는, 이 시대사를 전공한 학자가 아닌 언론인, 관료, 정치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제대로 알 수 없다. 알지도 못하면서 고구려사 문제에 관여한다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을 만들 뿐이다.

역사는 진실만이 생명이다. 고구려사가 '우리 것'이란 굳어진 생각은 '국사'(國史) 교육에 의한 것이다. 이 국사는, 몇몇 사람들이 국가의 우월성을 높이고 국민의 동일성을 이루는 데 알맞은 사료(史料)를 골라 편집한 극히 적은 분량의 책이다. 국사의 내용과는 달리, '고구려는 고구려인의 것'이란 학자들의 연구가 오래 전부터 발표됐지만, 이런 내용은 소수 의견으로 국사에 반영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반만년 역사니 민족의 뿌리니 하여, 역사가 긴 것이 좋다는 생각 역시 획일화된 교육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금 2백년이란 짧은 역사의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반면, 몇 천년 역사의 이집트 등은 가난에 허덕이거나 중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메소포타미아라는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 이라크는 초토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오랜 역사 속에 뿌리 박힌 사회 구성원의 고루한 개념이 쉽게 청산되지 못하여, 새 시대 새 물결을 타지 못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은, 헌법에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 하여, 조선과의 절연(絶緣)을 분명히 했다. 1800년대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 1백여년이나 민중의 저항을 받던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고 또 망해야만 될 국가였다. 하물며 조선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이전이며, 1백 몇십번 전쟁을 일삼던 고구려를 '우리 것' 또는 '우리 역사'라 주장하며 중국과 다툰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도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우리'를 만들 뿐이다. 한국이란 새 나라를 세웠으면, 한국인은 그 건국 이념인 민주와 자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사람들이 생활해 가면 된다.
-200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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