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29 [칼럼니스트] 2004년 7월 1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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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두뇌로
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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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인데다 배후에 인구 30만 가까운 도시와 전국 규모의 기업체가 있다고 하지만 같은 업종의 경쟁이 치열해 웬만한 음식이나 맛으로는 손님을 끌어드리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촌닭이니 토종닭이니 하고 간판을 내건 집들도 마찬가지였다. 고객들도 그집이 그집 같아 선뜻 고르지 못하고 택시 운전자 등 그 고장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대답은 비슷했다.

15년 전쯤 한 음식점 주인이 이를 타개할 방법이 없는가 고심했다. 치밀한 연구와 검토 끝에 원재료 차별화와 손님접대 절차 개선만이 살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식당이 양계장 닭을 사용하는데 말만의 촌닭, 토종닭이 아닌 진짜 촌닭을 쓰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로서는 '혁명적' 발상이었으나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었다. 직접 길러볼까 했으나 그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넓은 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닭을 기르는 것 또한 식당 운영 못지 않는 별도의 사업이기 때문이었다. 외주를 주기로 했다.

인근의 몇몇 농민을 선정, 그들에게 병아리를 나누어 주고 기르도록 했다. 야산을 울타리로 둘러치고 그곳에 놓아 먹이게 했다. 자연 상태에서 닭들이 자라도록 한 것이다. 도중에 몇 차례 곡절과 위기가 있었지만 끈질기게 밀고 나갔다.

이것이 적중했다. 서울 등 대도시와 다른 시골이기 때문에 그가 독특한 방법으로 닭을 기르는 것을 소비자들이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짜 촌닭이라는 홍보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되었다.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저절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손님접대 절차도 손을 댔다. 자기 집에 들어와서 처음 느낀 인상과 아쉬운 점 등이 무엇일까를 손님 입장에서 면밀하게 검토해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여러 가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음식이 나오기까지 무료하게 기다리는 긴 시간이었다.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부터 닭을 잡으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미리 잡은 닭을 쓰면 고객들이 싫어하므로 생닭과 짧은 시간 두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했다.

궁리 끝에 백숙, 찜 등으로 단번에 제공되는 절차를 나누어 단계화하기로 했다. 먼저 닭발, 어깨쭉지 등을 떼어내 간략한 구이를 만들어 내놓았다. 그러면 손님들은 그걸로 입맛을 돋우며 가볍게 술잔을 들었다. 그것을 먹는 동안 닭의 특정 부위로 육회를 만들어 다음 차례로 내놓았다. 이어 백숙이나 찜 같은 주요리는 세 번째로 내놓고 마지막으로 닭죽을 제공했다.

긴 시간 기다리지 않고 구이, 육회 등을 즐긴 손님들의 반응은 만점이었다. 이 역시 입소문을 타고 한번 왔던 손님이 다른 손님들을 몰고 왔다. 경쟁 업소들을 압도했다. 서울이나 다른 지방에서 온 이들도 그 집을 못 잊어 다시 찾았다.

이처럼 경쟁업체들 사이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발휘한 또다른 음식점으로 서울 마포의 어느 주물럭집을 들 수 있다. 한다하는 주물럭집들이 즐비한 마포 골목에 이 집은 뒤늦게 나타난 후발주자였다. 위치 역시 장사의 문외한이 봐도 최적은 아니었다. 다른 집들이 큰 길가에 자리잡은데 비해 비좁은 골목 안에 있는데다 살림집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터라 구조나 공간이 영업집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 집을 우리가 찾아간 것은 우연이었다. 마음에 두고 찾아간 집들이 만원이어서 밀려나 대타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니 일행의 기대가 심드렁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도 그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 찬 표정으로 주물럭을 내왔다. 곧 반응이 나타났다. 모두들 고기가 어쩌면 이리 좋고 맛이 있느냐고 칭찬을 했다. 그제서야 주인은 자기가 날마다 어떻게 고기를 구해오고 직접 손을 보는지 설명했다. 이어 고기를 다 먹은 다음 칼국수와 수제비 중에 한 가지를 먹어 보라고 권했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조리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맞았다.

두 말 할 것 없이 우리들은 그집 단골이 되었고 수제비나 칼국수만 먹기 위해서 가는 이들도 많아졌다. 입소문을 탄 것이었다. 연예인 스포츠맨 정치인 언론인 가운데 상당히 알려진 이들도 한번 들렸다가는 그 맛을 극찬했다.

그 집의 특징은 그 뿐이 아니었다. 명절 연휴에도 직장에 나와야 하는 이들이 점심 먹을 곳이 없어 한번은 전화를 했다. 혹시 오늘 영업을 하느냐고 물으니 한다는 대답이었다. 어떻게 연휴에 문을 열 수 있느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을 쓰지 않고 자기 식구들끼리만 일을 하기에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종업원이 있으면 명절 쇠러 시골에 가므로 문을 열 수 없지만 그 집은 달랐다. 처음에는 종업원을 두었다. 그러나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비효율적인 면이 많아 내보내고 부부 외에 1남 2녀가 모두 매달린 것이다. 그 가족적인 분위기가 손님들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살림집 같아 영업에 부적합할 듯한 점을 역이용, 오히려 손님들이 자기 집에 온 듯한 느낌을 주도록 했다.

닭집과 주물럭집의 공통점은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냉정히 파악하고 어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한 것이다. 불리한 여건을 탓하거나 핑계대지 않고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것이다. 만약 왜 이렇게 같은 업소들이 모여 제살뜯기를 하느냐고 불평이나 했다면 그대로 주저 앉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발하고 비상한 방법을 쓴 것도 아니다. 일시적 관심이나 흥미를 끌 이벤트성 홍보에 주력했다면 잠깐 반짝했을지 몰라도 길게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두 집은 원론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정공법으로 타개해 나간 것이다.

음식점이 맛과 청결, 친절과 정성 그리고 두뇌로 승부를 건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이들은 어렵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 것이다.

또 하나 공통점은 이들은 이전에 음식점 운영에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오다 그걸 밑거름 삼아 다시 우뚝 일어선 것이다. 그 동안 거듭된 실패로 날린 '수업료'가 결코 공짜가 아니었음을 통쾌하게 입증한 것이다. 바로 그것이 고객 만족을 가져왔고 인생역전의 기틀을 제공해 주었다.

<용품정보 84호> (20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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