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18 [칼럼니스트] 2004년 6월 2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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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에 딴지 거는 중국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어렸을 적 단오는 마을의 축제다. 어른들은 모내기로 바쁜 일손을 잠시 접고 새끼를 꼬아 만든 그네 줄을 공동우물터 옆 덩치 큰 밤나무에 높이 매달았다. 단오 날 아침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네 터로 모인다. 아낙네들은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천궁 잎을 머리에 꽂았다. 아이들은 손바닥에 척척 달라붙는 수리치떡을 먹으며 신바람을 낸다.

그네대회는 단오명절의 가장 큰 행사다. 상품이래야 양은그릇이나 주전자 등이 고작이지만 그 시절엔 가정용품의 필수다. 창공을 힘차게 차고 나가 누가 아득한 나뭇가지 끝에 발끝이 많이 닿느냐로 순위를 가린다. 나뭇가지에 방울을 달아놓고 방울차기를 하거나. 쌍그네로 겨누기도 한다. 치맛자락과 저고리 고름을 바람에 나부끼며 그네를 타는 처녀나, 바라보는 노총각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광한루 그네 터에서 몽룡이 춘향에게 반해 수작을 건네듯 처녀 총각을 싱숭생숭 들뜨게 하는 풍경이다.

어른이 되어 고향을 찾아보니 그네를 맸던 밤나무는 고목이 되어 사라졌고 단오의 풍속도 찾아볼 수 없다. 마을 앞 하천에 지천으로 자라던 창포도 농지개량과 수리사업을 하면서 사라졌다. 요즘은 꽃창포(붓꽃)가 버젓하게 창포 행세를 하는 세상이 됐다.

그나마 강릉단오제가 민속명절의 옛 분위기를 되살리며 지역민속축제로 명맥을 잇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단오 한달 전부터 신주 빚기를 시작으로 20일 전엔 대관령 산신제와 국사성황제를 올린다. 유교의식과 무속이 혼합된 제례의식이 특징이다.

부정굿, 꽃노래굿 등 단오굿판도 볼거리지만 그네뛰기, 창포로 머리감기, 수리치떡 만들기, 단오부적 그리기 등 체험행사의 재미도 쏠쏠하다. 제례와 굿, 관노가면극 3개 부분은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지정되어 독창적인 문화로 자리잡았다.

특히 올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단오제와 함께 국제관광민속제를 곁들여 축제의 폭을 넓혔다.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인도의 쿠티야탐과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캄보디아의 궁중무용 압싸라, 필리핀의 농경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후두후두송, 경극의 원류인 중국의 곤극 등 22개국 68개 팀이 참가하여 세계의 다양한 민속문화를 선보였다.

한국이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문화재 걸작’으로 등록하려 하자, 중국이 ‘문화약탈’이라며 느닷없이 딴지를 걸고 나섰다. 중국문화부 고위관리까지 나서 ‘단오절 보위(保衛)’를 주장해 중국의 편협한 문화 종주국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단오절의 유래엔 여러 학설이 있지만 중국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고사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굴원이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유배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목숨을 끊은 날이 5월 5일이다. 해마다 굴원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릉단오제와는 기원과 풍습이 엄연히 다르다. 중국에서는 용처럼 생긴 목선인 롱저우(龍舟)를 타고 우승을 다투는 경기가 전해오지만, 강릉단오제는 민간신앙이 결합된 향토축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강릉이 동해를 끼고 있어도 물과 관련된 행사는 없다. 창포도 중국인들은 문에 꽂아 액귀를 막았으나 우리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냈다.

그네뛰기는 이미 고려 현종 때 민간에 널리 퍼졌다. 무신정권시대 최충헌도 단오 날 백정동궁에 그네를 매고 문무4품 이상의 높은 벼슬아치들을 모두 모아 사흘 동안이나 그네뛰기 경기를 베풀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을 위한 가장 큰 놀이가 그네였다.

문화란 가까운 나라에서 흘러 들어온 문화가 오랜 세월 고유의 문화와 어우러져 독창적인 문화의 꽃을 피운다. 중국과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오랜 세월 교류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키워 왔다. 단오절이 중국의 주장대로 고유 명절이라면 세시(歲時)민속을 계승 발전시켜 인류문화유산으로 키워온 우리에게 오히려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배타적 중화(中華)주의 속셈을 드러낸 중국이 한국의 고구려사를 중국 고대 변방사의 일부라고 강변하고 나선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단오절에 대한 한?중간의 갈등이 고조되자, 유네스코는 두 나라가 공동으로 무형문화유산을 등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문화유산은 한 나라의 전유물이 아닌 다른 나라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중국을 외교통상의 제1파트너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하는 판국에, 중국은 한국이 문화약탈을 감행하고 있다고 몰아붙이고 있으니 우리만 중국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문화소국으로 폄하하려는 그들의 오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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