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15 [칼럼니스트] 2004년 6월 1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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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맑은 하늘
박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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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하늘 맑다고 감탄하던 때가 있었다. 뭔가 칭찬하고 싶은데 마땅한 것이 없으니 하늘 이야기나 하는 것이겠지 생각하면서 듣던 말이었다. 공장의 높은 굴뚝들이 적어서 열등감이 들던 시대였다. 검은 연기 힘차게 뿜어내는 굴뚝은 부강한 나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유럽에 갔더니 거기서는 물도 사 먹더라는 말은 퍽 신기하게 들렸다.

그 즈음에 선생님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물 맑다는 것, 공기 맑다는 것은 불행이다. 물 맑은 것은 땅 속에 쓸모 있는 천연자원이 적어서고, 공기 맑은 것은 2차 산업이 미미해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가난하다. 석탄이 많은 곳의 물은 먹물 같고, 철광석이 많이 나는 곳의 물은 녹물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곳이 없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학생들은 석탄과 철광석이 그득그득 들어 있는 땅의 나쁜 수질을 부러워하고 높은 굴뚝들이 더럽히는 공기를 동경하였다. 우리는 그런 나라들보다 더 힘써서 공업으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정부가 외국 돈까지 빌려와 경제 개발에 나섰다.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 학과에 들어갔다. 그 뒤, 2차 산업의 발전도 이루고, 그에 따라 우리 공기와 물도 나빠졌다. 그러자 변했다. 어느 정도 살 만하게 되면서, 깨끗한 공기와 물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배곯는 형편일 때, 환경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영양실조로 버짐과 부스럼이 퍼져 있던 아이들이 흔한 시절, 세 끼니 다 때울 수만 있어도 풍족하게 알던 시절, 오염이 어떻고 무엇이 어떻고를 따질 만한 여유가 없었다.

과거에는 제조업을 일으키는 것과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였으나, 이제 꼭 그렇지는 않다. 오염을 줄이는 기술이 좋아져서다. 맑은 물, 깨끗한 공기를 지키는 것은 기술보다는 양심의 문제가 되었다. 크고 작은 공장들이 몰래 폐수를 흘려보내거나 독한 매연을 뿜어내다가 적발된다. 그 경영자들이 제품으로 소비자를 속이지 않으리라고 믿기 힘들다.

이제는 잘 사는 나라일수록 환경이 깨끗하다. 그만큼 노력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맑은 공기에 누군가가 감탄한다면, 그 옛날의 뒤틀린 심사가 아니라 반가운 마음으로 들을 것이다. 소중한 것은 잃어 보아야 소중한 줄 안다. 금수강산은 우리가 되찾고 싶은 것이 되었다.

- 국토연구원 [국토] 200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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