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12 [칼럼니스트] 2004년 6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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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5) 스리랑카 불교유적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찬란한 섬'의 찬란한 문화유산

'찬란하게 빛나는 섬' 스리랑카는 인도 대륙이 떨어뜨린 눈물방울처럼 생긴 인도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훼손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비롯하여 고대문화와 예술, 홍차와 보석, 독특한 음식문화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이다. 특히 기원전 3세기에 불교가 도입돼 불교 신자가 전체 국민의 70%를 차지하고, 발길 닿는 곳마다 찬란한 불교유적이 즐비하다.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된 석굴사원 '담불라'와 바위요새궁전 '시기리아'는 순례자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다. 담불라와 시기리아, 부처의 사리가 안치 된 불치사는 스리랑카 한 가운데 위치한 아누라다푸라, 플로나루, 캔디를 잇는 삼각형의 세 도시 안쪽인 '문화삼각지역(Cult ural Triangle)'에 위치해 있어 둘러보기 편하다.

서부 해안에 위치한 스리랑카 최대 도시 콜롬보에서 내륙 중앙의 담불라까지 가는 길은 고속도로라지만 폭이 좁은 왕복 2차도로 우리나라의 88고속도로를 연상시킨다.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에 에어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봉고차를 이용하여 후덥지근하고 온 몸이 뒤틀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을 지루하게 달리는 데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산과 마주친다. 담불라(Dambulla) 석굴사원이다. 서울에서 대전 가는 거리인 150여㎞를 5시간 걸려 도착했다. 담불라는 캔디와 아누라다푸라를 연결하는 간선도로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순례자와 관광객들로 붐빈다. 산중턱에 위치한 석굴사원까지 오르는 길은 가파르지만 그다지 힘들지 않은 언덕길이다. 올라갈수록 탁 트인 전망이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황금사원' 담블라의 눈부신 불상

석굴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면 복도에서 석굴로, 다시 복도에서 석굴로 5개의 석굴이 이어진다. '황금사원'의 진면목은 가장 오래된 제1석굴 안의 황금빛 와불(臥佛). 길이 15m의 와불이 열반(涅槃)에 들 자세로 누워있다. 발바닥에 그려놓은 불꽃같은 꽃무늬도 강렬하고 현란하다. 전남 화순 운주사의 와불보다 3m나 길다.

규모가 크기로는 제2석굴. 천장 벽화에는 붓다의 생애와 싱할라족과 타밀족간의 분쟁의 역사가 녹아있다. 제3석굴엔 50여개의 불상과 9m의 와불, 제4석굴엔 좌불상들이 열병식하듯 늘어서 있어 부처의 나라에 들어선 느낌이다. 불상이 안치 된 제5석굴은 가장 최근인 1915년에 조성했다. 담블라는 180m 높이의 흑갈색 바위산이지만, 석굴안의 불상과 벽화는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래서 담블라를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뜻이 담긴 '란 기리'라고도 부른다.

담불라 석굴사원은 BC 1세기 무렵 신할라 왕조 제19대왕 와타가마니 아바야가 건설했다. 남인도의 침략을 받은 아바야는 당시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에서 쫓겨나 66㎞ 떨어진 담불라로 도망쳤다. 왕은 이곳에서 수행하던 승려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수십 년 뒤 수도를 되찾게 되자 감사의 뜻으로 석굴을 만들어 승려들에게 기증했다고 한다.

난공불락의 바위요새 시기리아 옛 궁터

담블라에서 시기리아까지는 22㎞. 봉고차를 타고 계속 북동쪽으로 이동한다. 시기리야(Sigiriya)는 난공불락의 성채이자 승원의 피신처다. 기슭에서부터 가파른 돌계단을 딛고 산허리 부근쯤 오르면 갑자기 땅이 평평해지면서 땅을 힘차게 누르는 듯한 사자의 발 두개가 나타난다. 견고한 회반죽으로 빚은 사자 발은 요새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어른 키 두 배 높이의 사자 발 사이로 다시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돌계단은 끊어질 듯 이어지다가 나선형의 철 계단으로 연결된다. 철 계단이 없던 예전에는 도대체 이곳을 어떻게 올라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

195m 높이의 장엄한 바위요새 정상에 오르니 바위 위에 이렇게 드넓은 평원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1200㎡에 이르는 널따란 벌판 바닥에 가득 박힌 벽돌이 옛 궁전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벽돌을 쌓아 만든 수조와 연못, 산책로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쌓은 궁전 외벽은 바닥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허물어지거나 사라졌다.

시기리야는 사자를 의미하는 '싱하'와 '산'을 의미하는 '기리얀'이 합쳐진 말로 '사자산'이란 뜻이다. 스리랑카인 중 74%를 차지하는 싱할라족은 스스로를 사자의 후예라고 믿는다. 그런 탓인지 스리랑카 국기를 보면 칼을 든 사자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1500여 년 전 싱할라 왕조에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자 카샤파는 정실 혈통으로 왕통을 이을 것이 확실시되던 이복 동생 모갈란을 몰아내고 왕좌에 올랐다. 카샤파는 동생의 보복이 두려워 아누라다푸라에서 80㎞ 떨어진 이 바위산으로 궁전을 옮겼다. 커다란 사자상(像)을 만들어 요새 입구를 지키게 했다.

왕자의 난 때 인도로 도망쳤던 모갈란은 18년 만에 군대를 모아 쳐들어왔다. 의기양양하던 카샤파는 바위요새에서 내려와 진열의 선두에서 동생의 부대를 맞았다. 공교롭게도 카샤파가 탄 코끼리가 길을 잘못 잡아 늪에 빠졌다.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코끼리가 돌아서는 순간 뒤에 있던 카샤파 병사들은 왕이 싸움을 포기한 채 도망친다고 생각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 남게 된 카샤파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담불라 석굴사원에는 아바야 왕의 황금빛 보은(報恩)이 서려 있고, 시기리야의 바위요새는 카샤파 왕의 배반으로 얼룩져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보은의 끝은 빛나지만 배반의 끝은 궁터의 잔해처럼 무상하다.

부처의 치아 사리 안치된 불치사

'문화삼각지역'안에 있는 캔디(Kandy)도 빠뜨릴 수 없는 불교유적지다. 캔디의 대표적 명소는 불치사(佛齒寺·달라다 말리가와)로 부처의 치아 사리가 안치된 사원이다. 불치는 기원전 543년 인도에서 석가를 화장할 때 입수한 것이라고 한다. 사원 안에는 크리스탈 바위를 깎아 빚은 석가의 좌상, 정밀한 조각이 새겨진 돌문, 화려한 당초 문양이 돋보이는 천장 등 조각들은 정교하고 문양의 솜씨는 빼어나다. 해마다 음력 7월이면 부처의 치아 사리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최대의 불교축제 '에살라 페라헤라'가 캔디에서 열린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로 불리는 캔디는 1474년 싱할리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싱할리 왕조 최초의 수도는 아누라다푸라였으나 인도의 침략으로 폴론나루와, 감포라 등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닌 캔디로 수도를 옮겼다. 싱할리 왕조는 이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꾸준히 이어왔으나 왕권 내부갈등으로 1815년에 멸망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고원분지에 자리잡은 캔디는 고대문화의 향기가 고즈넉하게 배여 있다.

빈부격차 심한 콜롬보의 두 얼굴

스리랑카의 관문인 콜롬보(Colombo)는 최대의 도시다. 1985년 콜롬보에서 동쪽으로 약 10㎞떨어진 스리 자야와르다나푸라를 새로운 수도로 지정했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콜롬보다. 비즈니스지역인 북쪽 포트지구엔 대통령궁을 비롯, 백화점, 서점, 항공사 사무실 등이 들어서 현대적 도시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남쪽 해안가엔 호텔과 맨션, 넓은 공원이 있어 남국의 정취와 함께 생활의 여유가 엿보인다.

투숙했던 호텔에서 열린 선박부호 아들의 결혼식은 무척 호화로웠다. 꽃으로 장식한 결혼식장 입구에서부터 전통 의상을 입은 민속악단이 연주하고 춤을 추며 신랑 신부를 예식장으로 안내한다. 한국 농악대의 '길놀이'와 비슷하다. 화동(花童)들도 여럿이고 하객들이 다 함께 축가를 부는 것도 이색적이고 피로연도 화려하다.

그러나 시장 부근이나 빈민촌의 풍경은 비참하다. 바나나 등 열대과일 몇 개를 놓고 문을 연 상점들이 많고, 관광객들에게 손을 내미는 걸인들도 수두룩하다. 거리 청소원이 지나가는 필자에게 담배 한 개피를 달라고 해 꺼내 주었더니 잠깐 사이 10여명이 우르르 몰려와 손을 내민다. 스리랑카는 물가가 싼 편이지만 담배는 한 값에 1,800원꼴로 서민들은 사서 피울 엄두조차 못한다.

콜롬보시내 주요 교통수단은 버스, 일반 택시와 삼륜 택시, 오토바이 릭샤가 있다. 러시아워가 아니라도 버스는 늘 만원이고 버스차장이 있지만 개문 발차는 예사다. 신호등과 건널목이 드문 거리를 차량과 사람들과 개들이 무질서하게 오고가 아찔하다. 길거리에 늘어 서있는 삼륜 택시의 호객행위가 대단하다. 기본료는 35루피(Rc·420원 정도). 요금을 미리 확인한 뒤에 타는 게 좋다. 흥정만 잘하면 싼 요금으로 콜롬보시내를 한바퀴 둘러볼 수 있다.

실론 홍차와 보석 세계적으로 유명

스리랑카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보석과 홍차. 충적토질에서 나는 보석과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실론(Ceylon)' 홍차는 스리랑카가 자랑하는 특산품이다. 세계 5대 보석 생산국답게 블루사파이어, 루비, 캐츠아이, 문스톤 등이 유명하다. 기원전 10세기 솔로몬 왕이 '시바의 여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했다는 루비도 스리랑카에서 나왔다.

영국여왕의 왕관에 장식된 400캐럿짜리 블루 사파이어와 '인디아의 별'이란 사파이어도 스리랑카에서 생산된 것으로 뉴욕박물관에 영구 보존돼 있다. '실론티'는 세계 시장의 50%를 점유할 정도로 인기다. 고산지대의 서늘한 기온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라, 녹차 맛이 은근하고 깊다.

<여행쪽지> ▲서울에서 스리랑카까지는 직항편이 없어 싱가포르 경유 항공편을 이용해야 한다. 싱가포르 항공(02-755-1226)의 경우 서울∼싱가포르 6시간 소요. 싱가포르서 콜롬보까지는 3시간40분 걸린다. ▲관광 목적으로 체류가 1개월 안쪽인 경우에는 사증(비자)이 필요 없다. ▲한국이 스리랑카보다 3시간30분 빠르다. 통화는 스리랑카 루피 (rupee) ▲스리랑카는 1년 내내 여름이므로 순면으로 된 가벼운 의상이나 세탁하기 쉬운 옷가지를 가지고 가는 것이 편하다.

- <월간 '광업진흥' 0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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