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06 [칼럼니스트] 2004년 5월 2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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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따라 길따라(9) 보성 차밭-낙안읍성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녹차 향 묻어나는 초록빛이랑

초록은 자연이 뿜어내는 생명의 빛깔이다. 빈 가지에 새 살로 돋는 녹두 빛 잎새는 싱그러운 설렘이다. 화사하게 쏟아지는 햇살 속에 눈부신 초록의 향연을 보려면 전남 보성의 차밭으로 떠나자. 초록빛 고랑이 주름치마처럼 흘러내린 차밭을 둘러보면 마음이 정갈해진다.

보성읍에서 바닷가 마을 율포로 빠지는 18번 국도를 따라 8㎞쯤 가면 봇재에 차밭 조망대 다향각(茶香閣)이 보인다. 누각에 오르면 차나무들이 앞다퉈 피워 올린 초록 잎새들이 '녹색 융단'의 물결을 이루며 산비탈과 능선에 일렁인다.

찻잎은 곡우가 낀 4월20일 전후에 딴 것을 우전(雨前)차라하여 최상품으로 친다. 곡우를 넘겨 5월 초까지 자란 찻잎을 세작(細雀)이라하고, 5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딴 찻잎을 중작(中雀)이라 한다. 5월 중순에서 6월 초까지의 진녹색 찻잎은 엽차로 쓰이는 대작(大雀)이다.

은근하게 차를 우려내듯 느긋하게 차밭사이를 걷노라면 그윽한 차 향이 솔바람에 실려온다. 골안개 곰실곰실 피어오르는 이른 아침이나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 차밭을 거닐어 보라. 녹차 밭은 수묵화가 되고, 옷자락도 마음도 안개에 젖는다.

다향각에서 약 500m 거리에 위치한 대한다업(주)의 보성다원(061-852-2593)으로 향한다. 울창한 삼나무 오솔길이 300m 가까이 이어져 "아! 여기가 그곳이군" 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구니와 수녀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모 이동통신 CF 장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화 '선물'에서 이정재와 이영애가 걷던 삼나무 숲길도 이곳이다.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바쁘다.



느릿느릿 걷노라면 삼나무 가지사이로 쏟아지는 봄 햇살이 눈부시다. 오솔길이 끝나면 차밭이다. 둥글게 휘어지며 곡선을 그린 차밭 이랑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30여만평의 차밭 주위로는 삼나무 숲이 빽빽하게 둘러쳐져 있다.

보성다원은 1959년에 문을 열었으니 40년이 넘는다. 무료로 주는 녹차 한 잔 마시면 일상에 찌든 마음도 씻긴다. 농장 식당에서는 녹차 잎으로 사육한 돼지고기·쇠고기 식단을 내고, 매점에서는 녹차·녹차아이스크림 등 녹차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보성은 부드러운 바닷바람과 습한 바다 공기와 안개 등으로 차 재배의 적지다. 1930년대 일본인들이 차 씨앗을 처음 뿌렸으나 보성의 풍토와 아름다운 경관은 그 종자를 완전한 우리 차로 만들어 향기와 맛이 뛰어나다. 보성의 차밭 면적은 150만평이 넘고 전국 차 생산의 80%를 차지한다.

해마다 5월이면 보성다향제가 열린다. 4일부터 10일까지 열린 다향제에서는 찻잎따기, 차 만들기, 다례시범, 다신제, 녹차장터가 열었다. 관광문의 보성군 문화관광과 061-850-5225∼6. 녹차 밭에서 마음을 씻었으니 녹차탕에서 몸을 씻을 차례다. 봇재 부근 보성만 율포 해변은 해수녹차사우나(061-853-4566)로 유명하다. 녹차탕에 몸을 담그고 통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바다 풍경이 운치를 더한다. 지난해 34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많으나, 공간이 비좁아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리면 샤워꼭지를 차지하기 어려운 것이 흠이다. 지하 암반해수에 녹차를 풀어 목욕을 즐기는 온천욕으로 피부미용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길을 나선 김에 욕심을 부려도 좋다. 보성은 의향(義鄕)·예향(藝鄕)·다향(茶鄕)의 삼보향(三寶鄕)으로 일컬어 질 만큼 소리의 고장이다. 율포해변에서 나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보성소리의 명가 '정응민 예적지'가 나온다. 1896년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에서 태어난 정응민 명창은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등 쟁쟁한 명창들을 양성 한 뒤 1964년 소리인생을 접었다.

보성읍에서 2번 국도를 타고 순천방향으로 가면 벌교읍.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화다리' '현부자네집' '김범우집' '남도여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벌교에서 857번 지방도로를 타고 승용차로 10여분 가면 낙안읍성 민속마을이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기대고 있는 낙안읍성은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민속촌이나 향토박물관처럼 옛 모습을 재현해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체취가 묻어나는 민속마을이다. 초가와 돌담과 고샅길, 원님이 죄인을 호령하고 집무를 보던 동헌(東軒), 중요한 손님이나 중앙 관리들을 묵게 했던 객사(客舍)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전들이 거처했던 내아(內衙)도 복원해 놓았다. 정자문화의 운치가 낙풍루, 낙민루에 남아 있다.

마을 안 고샅길을 둘러보면 사라져간 농촌의 토속적 정취가 풍긴다. 툇마루와 부드러운 흙 마당, 돌담과 장독대도 정겹다. 고령토를 빚어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방, 물레로 삼베나 명주를 짜는 아주머니, 새끼로 멍석을 짜는 할아버지도 만날 수 있다.

#먹거리

▶율포해변에 횟집들이 즐비하다. 보성만과 득량만에서 잡은 전어회를 된장과 곁들여 깻잎에 싸먹으면 쫄깃쫄깃하고 부드럽다. 칼집을 내고 왕소금을 뿌려 굽는 전어구이는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바다풍경(061-853-3315) 아주머니의 손이 크다. 바지락을 식초와 고추장에 매콤새콤하게 무쳐내는 바지락회도 별미다. 녹차를 먹여 키운 녹돈(사진) 오겹살을 비롯, 녹차수제비, 녹차 떡국 등 녹차 음식점이 즐비하다. 해변가든(061-853-1331)의 밑반찬이 깔끔하다.

▶보성의 향토먹거리는 우렁탕. 논우렁을 흐르는 물에 일주일 정도 담궈 흙을 토하게 한 뒤 된장을 풀고 다진 마늘과 붉고 푸른 풋고추를 숭숭 썰어 넣어 얼큰하고 담백하다. 벌교읍 우렁식당(061-857-7613)이 잘한다.

▶낙안읍성안에 있는 토속음식점에서 먹는 녹두 빈대떡과 표고버섯 부침개도 별미다. 무쇠솥에 지어낸 밥 냄새가 구수하고 평상에 앉아 마시는 막걸리 맛도 걸쭉하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송광사IC로 나온다. 27번 국도와 18번 국도를 이용하면 보성읍이다. 광주에서 화순을 거쳐 29번 국도를 타도된다. 서울에서 보성은 하루 2회 열차가 운행된다(5시간30분 소요). 보성읍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율포 방향으로 8㎞가면 차밭과 만나는 봇재가 나온다. ▶보성읍에서 벌교읍까지는 2번 국도를 이용하면 되고, 벌교에서 857번 지방도로를 타면 낙안읍성이 나온다.

- <승강기안전관리원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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