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84 [칼럼니스트] 2004년 5월 2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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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건, 네티켓 그리고 네토피아
박연호                                        
http://columnist.org/ynhp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 언론사와 기자들은 툭하면 전화폭력에 시달렸다.어느 개인, 단체 또는 특정분야에 달갑지 않은 기사가 나갔을 경우 해당자들의 반발은 무서웠다. 오보일 때는 언론사와 기자의 잘못이므로 댓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또 어떤 이들은 해당 기사의 논리 비약, 부적절한 어휘, 사용한 자료의 미비점 등을 자세히 지적하며 무엇이 잘못이었는가를 명확하게 짚어준다. 그럴 경우는 기자 개인의 발전 및 언론사의 보도자세 개선 등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임에도 그 기사는 나가서는 안 된다며 생트집을 잡는 이들이 더 많았다. 사이비종교단체 비슷하거나, 떳떳치 못한 방법으로 영업을 하는 업체, 특정 정파 등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시비를 거는데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들의 항의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욕지거리부터 퍼붓는다. 기자는 회사, 전화번호, 이름까지 모두 드러나 있는 반면 독자 또는 시청자는 목소리밖에 없다. 상대는 이러한 불공평성과 익명성을 즐기며 갖은 포악을 해대는 것이다. 설명하려 해도 거절하고, 자기는 밝히지 않는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아예 그 회사 또는 해당부에 여러 명이 하루 종일 전화를 걸어 업무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언론사와 독자 또는 시청자간의 일방적 소통구조가 빚은 모순의 결과라고 애써 생각해도 괴로운 일이었다.

인터넷의 등장은 이런 문제점들과 기존 의사소통방식의 구조적 모순을 해소시켜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누구든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므로 보통 사람들을 갖가지 권위와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켜주며, 정보의 왜곡과 서로간의 오해를 대폭 줄여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 기대는 크게 어긋나지 않아 일상생활의 대부분에서 긍정적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 또한 그에 못지 않아 디지털사회에 대한 우려도 점차 높아가고 있다. 다자간의 평등한 소통이 가능하므로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 미비점과 문제점 해결에 같이 노력하는 건전하고 바람직한 풍토룰 조성하리라 크게 기대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오프라인에서의 사고방식과 폐습이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아니 갈수록 더욱 난폭하고 비열해지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옛부터 토론에 익숙하지 못하고, 남의 비판을 수용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숱한 고통을 겪어왔다. 적과 동지만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젖어 살아오면서 너나없이 역사적, 사회적으로 상처를 입고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전통사회의 권위주의와 일방적 의사소통이 빚어낸 결과였다.

조선조 5백년 동안 우리는 유학 그 가운데에서도 주자학에 갇혀 단 한마디라도 그 이론과 다르면 처형도 마다하지 않던 고착성을 버리지 못했는데 그처럼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병폐가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일본이나 유학의 태동지인 중국에서 유학의 한 갈래인 양명학이 주자학과 쌍벽을 이루며 사상의 다양화를 추구했는데 우리는 양명학의 양자만 꺼내도 정치적 사회적 매장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다른 것'을 또 다른 가능성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틀린 것, 제거해야 할 것으로 치부하는 편벽성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디지털사회를 맞아서는 더욱 극성을 떨고 있다. 지난 번의 탄핵정국, 총선기간 동안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 궤도에서까지 자기와 다른 방법이나 견해는 도저히 못봐주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도배하는 것이 다반사다. 살기에 찬 폭언과 비난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예의를 갖춰 차분하고 치밀하게 반론을 제기하면 상대도 흔쾌히 잘잘못을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며 최선의 접점을 찾을 텐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 네티즌들의 무례와 폭력성은 정평이 나있다. 축구장마다 나타나 난동을 부리는 영국의 훌리건(hooligan)처럼 우리 네티즌들은 온라인상의 훌리건 즉 네티건(netigan)이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한국에 불리하거나 잘못된 정보가 올라오면 한꺼번에 달려 들어 욕하고 서버를 다운시켜 업무를 마비시키기 일쑤다.

물론 우리를 왜곡하거나 악의적으로 표현하는 이들에게 항의하고 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거기에도 지켜야 할 네티즌의 예절 즉 네티켓(netiquette)이 있다. 점잖게 논리적으로 따지고 대응하면 대부분 성의 있는 태도로 나온다. 그럼에도 후속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때 거친 항의나 비난을 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대부분은 처음부터 폭언과 욕설을 퍼부어대니 유리했던 우리 처지가 오히려 불리한 쪽으로 기우는 사례가 생기게 된다. 인터넷강국이라는 명성이 도리어 부끄럽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도 네티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심하지 않다. 또 네티건들이 발호하지 않도록 효과적인 장치가 많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도 이런 장치를 만들었거나 만들 예정이지만 효과가 의심스럽다. 도로교통법은 잘 돼 있으나 교통질서 후진국을 면치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인 존 페리 발로는 "인터넷은 불의 발견이후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취이며, 디지털 가상공간이야말로 완전한 표현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시켜줄 인류의 신천지"라고 역설했다. 온란인상의 유토피아 즉 네토피아(netopia)가 실현가능한 꿈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 인류의 재산을 우리 한국인들이 앞장서 인터넷지옥 곧 디스토피아(dystopia)로 바꾸었다는 오명을 뒤집어 써서는 안 된다. 인터넷강국다운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 '지방행정' 5월호 (20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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