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01 [칼럼니스트] 2004년 5월 1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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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신문과 포털 사이트

이강룡 / 블로그 'readme 파일' 운영자 readme@readme.or.kr

아까운 지면을 스포츠 신문이 주는 해악에 대해 할애하고 싶진 않다. 다만, 온갖 선정적이고 불확실한 정보가 넘쳐나는 스포츠 신문의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의 주 화면을 뒤덮고, 그 정보들에 너무나 많은 네티즌이 자의든 타의든 매일같이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자발적으로 스포츠 신문을 사서 보는 것과, 매일 방문하는 포털 사이트의 주 화면에 선정적 스포츠 신문 기사가 범람하여 이를 볼 수밖에 없도록 하는 상황은 아주 다르다. 포털 사이트는 이미 네티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웹의 미디어 권력이다. 정상적인 미디어 기능을 바라는 마음에서 포털의 미디어 기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온오프라인을 망라하여 가장 큰 이슈라면 ‘얼짱 신드롬’을 들 수 있는데, 얼짱 신드롬을 부추긴 일등 공신은 바로 포털 사이트였다. 얼짱 콘테스트를 상설 이벤트로 열고, 방문자 증가와 조회수 증가에 혈안이 되어 ‘얼짱 카테고리’ 라는 기형적 디렉토리를 신설한 것에 대해 ‘소비자의 요구’ 혹은 ‘현실의 반영’ 으로 발뺌하는 건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포털 사이트가 사회적 공기(公器)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따지기엔 너무 늦었다. 포털은 강력한 미디어이며 이미 사회 공기의 기능을 하고 있다.

포털의 빗나간 상혼

2003년 10월 31일, 네이버와 엠파스 등 포털사이트에는 이른바 ‘이벤트 경매’라고 불리는 사행성 배너 광고가 등장했다. 광고주는 내부자의 부당 낙찰 혐의로 대표가 구속되는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업체였다. 사기 혐의로 대표가 구속된 이후에도 배너를 내리지 않아 네티즌의 거센 항의를 받았었는데 버젓이 다시 배너가 걸린 것이다. 유사한 사례를 살펴보자면, 9만 명이 넘는 피해자와 300억이 넘는 피해액을 낳은 하프프라자 사건이 있다. 포털을 비롯해 많은 웹사이트에 하프프라자 광고가 실렸고, 네티즌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광고 수주시에 광고주의 광고가 적법한지 여부를 매체사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미 하프프라자 사태로 홍역을 앓았고, 현재 사회 물의를 빚고 있는 업체의 광고를 또 다시 게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배너 광고가 실려 있는 네이버나 엠파스의 지식검색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벤트 경매 믿을 수 있나요?', '제2의 하프프라자 아닌가요?' 와 같은 종류의 질문들이 많이 올라왔다. 이런 것을 해프닝으로 설명해야만 할까?

<아이뉴스24>의 강희종 기자는 ‘욕설까지 팔아먹는 포털’ 이라는 기사에서 상도덕이 실종된 포털의 행태를 꼬집기도 했는데 이벤트 경매 광고 게재는, 상도덕이란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네티즌의 사행심까지 조장하는, 포털의 빗나간 상혼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책임의식 없는 포털 뉴스 운영진

모든 포털 사이트는 별도의 뉴스 섹션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 화면에는 그 날의 주요 기사가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 기사를 보기 위해 해당 홈페이지를 방문하기 보다는 포털의 뉴스 섹션을 주로 이용하는 네티즌이 많으며, 당연히 이들은 주 화면의 헤드라인 기사를 먼저 보게 된다. 여기에는 각 뉴스 담당자의 판단이 개입되는데, 그 판단 기준에서 기사의 정보 가치는 배제되고 대신 많은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는 선정적 정보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특정 사이트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포털이 똑같다. 예를 들어보자. 2004년 2월 25일 네이버 주 화면에는 ‘호나우두 안양 입단’ 이라는 기사 제목이 노출됐는데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먼 훗날 호나우두 같은 대스타를 영입하는 게 목표’ 라는 것이었다. 2004년 3월 24일 미디어다음은 ‘박근혜 대표 참회 108배’ 기사를 ‘박근혜 대표 참회 3000배’ 라는 제목으로 노출했다. 가수 서태지가 새 음반을 발표하기 전 엠파스에는 ‘서태지의 여인’ 이라는 기사 링크가 떴는데, 기사 내용은 서태지의 새 음반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여자 배우가 정해졌다는 소식이었다.

포털 사이트 뉴스 섹션의 선정성은 물론 스포츠 기사의 선정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들 기사가 헤드라인 기사로 너무 많이 노출된다는 점이다. 2004년 2월 20일 야후코리아의 주 화면을 보면, 기사 링크의 절반 정도가 다음과 같은 제목이다. ‘이룰 수 없는 여교사와 제자’, ‘이승연, 어떤 포즈였길래’, ‘최지우 얼마나 벗나요?’, ‘중, 여강사 누드 파문’. 포털이 스포츠 신문보다 욕을 더 먹는 까닭은 제공 콘텐츠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의식도 없다는 점 때문이다. 포털은 해당 기사에 대해 네티즌이 반발하거나 문제가 될 경우 아예 기사를 삭제해버린다. 기사 내용은 삭제돼 없고 댓글만 주르륵 달려 있는 페이지를 보는 것은 참으로 씁쓸하다. 엠파스와 미디어다음은 2004년 1월 20일 이건희 회장 딸 기사가 문제시되자 기사를 삭제해 버렸고, 엠파스는 최근 ‘14만 원짜리 구찌지우개’ 기사 또한 기사 제공 몇 시간 만에 내용을 삭제해 버리기도 했다.

포털 뉴스 운영진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점이 또 있다. 언론사에서 제공한 ‘대학생 75%, 인터넷 짜깁기’ 기사의 제목이 포털 사이트에 와서는 ‘짜집기’ 로 변했다. (2004년 3월 24일 미디어다음) 틀린 맞춤법을 바로잡는 건 아예 바라지도 않지만, 이렇게 제멋대로 틀리게 바꿔도 되나?

언론사에서 포털에 기사를 전송하는 과정에 간혹 오류가 생기는 경우가 있고, 몇몇 언론사 기사의 경우 언론사 홈페이지 기사와는 다르게 띄어쓰기가 무시된 채로 포털 사이트에 게재되기도 한다. 포털에서는 기사 제공 전에 해당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고 게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다음 경우를 보면 뉴스 운영자가 단 한번의 검토도 없이 그대로 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4년 3월 31일 네이트 기사 중에는 골프 선수 미셸위의 기사 속에 엉뚱한 모기지론 기사가 뒤섞여 있었다. 운영진의 실수라기보다는 책임의식이 아예 없는 게 아닐까.

포털의 뉴스 섹션 운영 실태가 이렇다. 단지 몇 가지 사례를 언급했을 따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끝이 없다. 포털의 뉴스 운영진은 뉴스 제공자로서, 혹은 뉴스 전달의 매개자로서의 책임감이 필요하다. 최근 대폭적으로 개편된 네이버 뉴스 섹션의 공지문에는 ‘더욱 뜨거워진 뉴스 서비스’ 라는 문구도 보인다. 지금도 충분히 뜨거운데 걱정이다. 디자인이나 조회수 증가를 위한 개편만 신경쓰지 말고 정상적인 미디어 기능에 대해 숙고하고 그 고민을 개편에 충실히 반영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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