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00 [칼럼니스트] 2004년 5월 1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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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위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김우정 (문화마케팅 전문가, 문화마케팅센터 대표) lutain@lutain.com

볼리우드 마살라 영화(Masala Movie)의 복수

인도[India, 印度]. 면적 316만 6414㎢. 인구 10억 476만 1000명(2002). 정식명칭은 인도 공화국(Republic of India). 힌디어로는 바라트(Bharat). 아시아 문명의 원천으로 불교가 발상한 곳이며, 우리에게는 예부터 천축(天竺)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 3세기 반에 걸친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한 민주국가. 국토면적 세계 7위, 인구 세계 2위. 그럼에도 가난과 높은 인구밀도로만 기억되는 인도가 지금 찬란한 문화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세계에서 영화가 가장 발전한 나라는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이다. 헐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의 영화시장은 한 해 개봉영화만 600편 이상을 쏟아내는 영화공화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다. 그 정답은 바로 볼리우드로 대표되는 인도, 가난으로 기억되는 바로 그 나라다. 우리 중에 인도가 1970년대부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한 해 평균 8백 편 이상의 영화가 개봉되고, 인도 전역에 걸쳐서는 무려 1만 2천 개 이상의 극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힌두어를 비롯한 15개의 표준어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방언이 존재하는 인도는 그 다양한 영화만큼이나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 영화의 절반이상은 볼리우드라고 불리는 뭄바이(봄베이)에서 제작되는데 주로 힌두어, 마하라시트라어 그리고 구자라트어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북부 캘커타는 뱅골어로 된 예술영화를, 남부 마드라스는 타밀어와 말라야람어로 된 코메디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반면, 볼리우드는 액션이나 스타 캐스팅, 영화의 규모 등에 있어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되는 상업영화의 천국이다.

흔히 봄베이의 영화들을 '맛살라 영화'라고 부르는데, 맛살라는 그 의미로만 풀이하면 일반 향신료를 총칭하지만 인도인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맛살라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라사스(Rasas : 감정)'라는 뜻을 가진다. 인생의 희노애락에서 느끼는 천 가지 감정, 그것이 바로 맛살라다. 인도의 음식치고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없는 것처럼 맛살라 영화는 일반인들의 삶 속에 깊이 파고 들어가 때론 그들의 현실감각을 마비시키거나 그들에게 여러 가지 꿈을 심는 등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몇 년 전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인도 맛살라 영화 한 편의 수입에 관여한 적이 있다. 한국을 방문한 영화 제작자는 그 영화가 인도의 최고 인기배우들이 출연하고 제작비만해도 200억이 넘으며, 인도에서만 8억 명이 관람한 정말로 무시무시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개봉 시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난생 처음 접하는 인도영화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지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인도에서 DVD가 도착하자마자 모든 업무를 뒤로 하고 영화감상에 빠져들었고, 장장 3시간이나 넘는 관람 후에 느낀 나의 감상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당시 영화감상 중에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가 '신파'였는데, 정말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 안무 하나하나가 닭살 돋는 어색함의 극치였다. 그런데 희한한 사건은 그 날 이후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더 끄집어 관람했다는 사실(당시 필자의 수납장을 장식한 대부분의 DVD는 첫 PLAY 이후 지금까지도 전혀 REPLAY 되지 않고 있다)이다. 그럼 필자는 그 영화에 중독되었던 것일까, 중독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왜! 어째서?

결국 나의 중독성 관람(?)이 찾은 결론은 몇 가지(당시 필자의 업무가 투자컨설팅인 이유로 그 해답은 자연스럽게 흥행요인 분석으로 풀이된다)로 요약될 수 있었다. 인도 맛살라 영화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존재하는데 흔히 '맛살라 영화 조리법'이라고 불리는 그 내용은 1)두 명 내지 세 명의 스타, 2)여섯 곡의 노래, 3)세 가지 춤, 4)위험한 수위(?)를 넘지 않는 에로틱한 장면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그런데 내가 본 영화에는 이런 요소에다가 영국 해외 로케이션, 6명의 스타, 더욱 많은 춤과 노래, 게다가 특수효과까지 가미되었으니 내가 중독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 그런데 이런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는 그 중독성의 궁금증이 해소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풀리지 않던 궁금증은 올 해 브로드웨이 개봉을 앞둔 뮤지컬 한 편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 세계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로 명성 높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제작자로 참여한 '봄베이 드림스(Bombay Dreams)'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는데, 이 뮤지컬은 인도 봄베이를 배경으로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청춘남녀의 사랑을 담은 '맛살라 영화의 뮤지컬판'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뮤지컬이 영국에서 공연 된지 불과 2년 만에 세계 공연의 메카인 브로드웨이로 직행한다는 내용까지 접하자 이 영화의 성공이 분명 나의 영화중독과 관련이 있다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인도는 오랜 시절 영국의 지배를 받은 나라다. 식민지 시절 영국으로부터 받은 수 많은 침탈은 인도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인도는 한국과 여러 면에서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인도인은 식민지 시절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당한 복수심은 폭력과 전쟁이 아닌 문화와 예술로 서서히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때 자신을 정복했던 나라에게 문화와 예술로 복수하는 나라가 바로 인도라는 것이다. 그것도 문화예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한 영국이라는 당당한 제국을 향해 말이다.

지금도 영국에서는 수많은 인도영화가 매주 개봉되어 박스오피스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인도의 음식과 복장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유행이라고 한다. 문화를 통한 통쾌한 복수,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한류가 일본까지 진출했다는 기사는 우리에게도 희망을 안겨준다. 36년의 식민지 시절을 가슴에 담고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스스로를 감옥에 쳐 넣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마이크를 통해 들추기 보다, 그들이 침탈했던 나라의 위대한 문화를 점잖게 그리고 오래도록 소개하는 일도 그리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필자가 관람했던 영화의 영제가 'Sometime Love, Sometime Happy'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의 내용은 한 가족의 사랑과 불화, 그리고 화해를 다룬 단순한 러브스토리다. 하지만 3세기 넘게 자신들을 지배했던 영국 도심 한복판에서 인도의 춤과 노래를 당당하게 부르는 모습이 영화에 투영되었을 때, 필자는 아마도 이 영화에 중독되어야만 한다는 자기최면을 걸고 있었던 것 같다. 필자는 영화가 아니라 아름다운 인도인의 모습에 중독되고 만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영국의 역사적 과오에 복수하는 인도인의 정신, 그 정신이야말로 그들이 위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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