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92 [칼럼니스트] 2004년 04월 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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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와 균형의 공연학

김우정 (문화마케팅 전문가, 문화마케팅센터 대표) lutain@lutain.com

블록버스터 공연의 허와 실

우리는 흔히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고 하면 여름방학 등의 특정한 시즌을 겨냥하여 대규모 흥행을 목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들여 제작한 영화를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는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 않게 큰 규모의 대형 공연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웬만한 상업영화 이상의 제작비와 규모를 초월하는 블록버스터 공연이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100억이라는 사상 초유의 제작비를 들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성공 이후, 국내 공연계에는 사상유례가 없는 대형 공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페라 '투란도트', 오페라 '아이다', 오페라 '라보엠', 뮤지컬 '시카고', 뮤지컬 '맘마미아', 오페라 '카르멘'까지, 하나 하나의 제작비만 50억을 훨씬 넘는 그야말로 블록버스터급 공연물의 홍수라고 표현함이 옳을 듯 하다.

사실 관객들에게는 대형공연 열풍이 보고 싶은 공연을 외국까지 나가지 않아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니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공연들이 매달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니 국내 공연시장이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자부심도 생길 테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행복할 일만은 아니니 문제다.

오페라의 유령이 수입될 당시 한국 뮤지컬 시장의 규모는 300억 정도라고 추정한다. 뭐 아직도 신뢰도 높은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못하는 관계로 당시의 추정치가 그리 정확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튼 그러한 시점에 100억이라는 높은 제작비를 투여하여 공연시장을 단숨에 2배 규모로 성장시킨 일은 분명 자랑할 만한 일이다. 당시의 성공이 외국에 로열티를 많이 준다고 욕할 상황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한국영화의 성장에 분명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통한 영화 관객층의 확대가 기여했듯이, 창작공연의 성장을 위해서도 그것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자위했던 것. 그런데 2001년과 지금의 사정이 그렇게만 인정하기에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얼마 전 한 국내의 저명한 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면 그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보고서는 공연시장의 성장을 위해 해외공연의 국내수입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임에 틀림없지만, 현재 공연시장은 양적 팽창만이 존재할 뿐, 질적으로는 전혀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런 문제를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고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 개운치가 않다. 너나 할 것 없는 대형공연의 수입열풍에 토종공연들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활로조차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가 바로 극장을 빌리는 일, 즉 대관이다. 그런데 국내에 공연을 제대로 올릴 수 있는 유명 공연장은 이미 해외공연을 수입하는 주요 기획사들의 독무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뭐 엊그제 일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넘겨도 별 일 아니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요즘 대형공연들의 대관행태를 지켜보다 보면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주류가 비주류의 비상구조차 막아버리는 문화 획일화 현상이 너무나 심각한 지경이기 때문이다.

공연 장르가 편중되는 것은 결국 관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한한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처음에야 내가 보고 싶었던 해외공연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니 반가움에 몸 둘 바를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에만 중독된 기획사들의 수입경쟁은 해를 건너 비슷한 공연의 수입으로 획일화되고 관객들은 다양한 공연보다는 무엇엔가 중독된 듯한 문화선택을 강요 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특히, 대형공연의 수입이 가지고 있었던 국내공연시장 확대라는 명분도 더 이상 시장확대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관객에게 있어서나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업무상의 이유로 작년과 올해 공연된 대형공연들을 마음껏 볼 수 있었던 영광(?)을 누렸다. 그런데 필자는 현장에서 위에 나열한 어려운 이유들을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대형 공연의 명쾌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이었는데, 작품의 질을 떠나 미숙한 공연운영과 현장서비스, 그리고 준비되지 못한 기획 등의 이유로 인해 관객들이 대형 공연의 재구매를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번이라도 공연에 실망한 관객을 다시 공연장으로 초대한다는 사실은 공연티켓을 한 장이라도 팔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어려운 명제다.

모든 대형 공연이 잘못 기획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변의 유행에 편승한 기획이 한국 문화시장과 관객들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공연 기획자들은 분명히 반성해야만 한다. 그런 사람도 있다는 식의 관객폄하는 다시는 공연을 하지 않겠다는 자기결심과도 같은 무모한 발상이다. 공연계가 어렵다는 사실은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잘못된 기획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얼마 전 전국민의 관심 속에 끝마친 415총선을 기억한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와 공연의 마케팅 전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 하지만 정치와 경제만을 우선시하며 문화예술의 중요성은 전혀 공약하고 있지 못한 정당과 후보자들의 모순. 문화예술은 배부른 자의 전유물이라는 국가적 선입견. 그리고 잘못된 문화기획의 불편한 마음. 누구 하나 서로를 탓하기가 부끄러운 대한민국. 그래도 우리가 이 나라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안에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블록버스터 공연의 어두운 현실 속에도 분명 희망은 존재한다. 관객이 최우선 되는 기획, 시장을 고려하는 경영,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지향점. 공연은 절대로 어려운 문화가 아니다. 우리가 어리고 순수했을 때, 친구들과 부모님들께 보여주기 위해 아둥거렸던 학예회의 추억 속에 바로 공연예술의 진수가 숨어 있다. 그것은 배우와 관객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감동과 배려, 그리고 우리의 열린 마음, 그 단순한 상식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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