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85 [칼럼니스트] 2004년 4월 1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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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봄노래
박강문                                        

http://columnist.org/parkk

봄은 겨울의 꼬리를 잡고 있다가 어느 새 여름의 머리가 돼 버린다. 봄의 인상은 그래서 겨울이나 여름처럼 정연하지 않다. 눈이 아직 응달에 있고 바람이 차도 나무는 벌써 움을 틔우고 풀은 새 푸르름을 채비한다. 그리고 좀 지나면 사람들이 “덥다, 덥다.” 하는데도 봄은 봄이다. 봄의 첫 도막, 가운데 도막, 끝 도막은 다른 철의 그것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봄바람이라 해도 찬 봄바람이 있고 따스하거나 더운 봄바람이 있다. 꽃이 필 무렵 꽃샘 추위가 온다. 겨울 난 거지가 봄추위에 얼어 죽는다고 할 만큼 이 때의 바람은 차다. 그런데,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하는 봄바람, 대중가요 ‘개나리 처녀’에서 “요놈의 봄바람아“ 하는 바람은 찬 바람이 아니고 훈풍이다. 얼굴과 팔 다리에 감기는 이 바람이 마음까지 간질이는 것이다. 어쨌든 봄바람의 대표는 찬 바람이 아니다.

계절의 경계는 땅에 따라 좀 다르다. 우리는 입춘에서 입하 직전까지 봄으로 친다. 대략 2월 4일이나 5일에 입춘이 오고 입하는 5월 6일께에 온다. 프랑스에서는 춘분(3월20일께)에서 하지(6월21일께) 전날까지를 봄으로 친다. 두 나라의 봄을 대 보면, 우리 봄의 시작은 너무 이르고 프랑스의 봄 마감은 너무 늦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체감하는 봄의 기간이 이런 날짜 구분보다는 훨씬 짧아서 그럴 것이다. 어찌된 셈인지 점점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짧아져 간다. 특히 봄의 길이는 더 짧은 듯하다. 봄이 짧으니 예전 같지 않게 꽃들이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다투어 핀다. 진달래,개나리,목련에다 라일락까지 한 무렵에 어우러지는 때가 많다. 어느 때는 날씨마저 여름으로 줄달음질쳐 ‘봄의 실종’사태까지 빚는다.

춘분,추분,하지,동지는 모두 우리 지구와 태양에 관련된 것이어서 양력으로는 해마다 거의 규칙적으로 날짜가 잡힌다. 음력으로는 종잡을 수가 없다. 농사는 해님이 돕는 것이라 달을 기준으로 만든 음력은 농사에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춘분,추분,하지,동지 사이사이에 20개를 더 넘어 24절기를 만든 것이다. 24절기가 태고 적에 만들어진 것인 줄 아는 이들이 있으나, 청나라때 베이징에 와 있던 아담 샬이 음력 쓰는 중국인의 농사에 도움 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설을 음력설, 양력설 두 가지를 다 쇤다. 음력설은 종잡을 수 없이 왔다갔다 하지만 그래도 대개는 2월에 온다. 올해는 1월에 와서 1월은 쉬는 날이 많았다. 음력은 양력하고 너무 벌어지면 윤달을 넣어야 한다. 올해는 윤달이 있어 음력으로는 달이 열 세 개다. 올해 윤달은 2월이다. 음력으로는 올해 봄이 긴 셈이다. 박목월이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이라고 읊는데, 음력 4월하고도 윤4월이면 봄은 늘어질 대로 늘어진 봄이니 그 봄날의 해는 과연 길기도 하겠다. ‘윤사월’이라는 말의 나긋나긋하고 나른함, 목월의 탁월한 시어 선택을 본다.

봄의 시작이라는 입춘이라 해도 2월 초순이라 중부 이북 지방에는 겨울 눈이 남아 있고 새 눈이 내리기도 한다. 겨울의 자락이 아직 남아 있건만 봄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봄을 고대해서일 것이다. ‘입춘 대길’(立春大吉)이라고 희망을 걸어 본다. 프랑스 사람들은 봄보다는 여름을 더 기다린다. 그들의 봄이 우리 봄과 같지 않은 것이다. 프랑스의 봄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거나 하늘이 우중충하고 기온도 낮아 ‘화창’하지 않다. 봄의 시작인 춘분은 별로 의식하지 않고 보내고 여름의 시작인 하지 때는 ‘여름 축제’를 벌인다. 이 때쯤 되면 지열이 제법 높아진다.

우리 겨울의 추위는 유럽의 겨울보다 훨씬 맵다. 봄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 봄이 마음에 일으키는 울림은 혹독한 겨울을 지내는 우리에게 더 클 수밖에 없다. 우리처럼 그토록 많은 시와 노래로 봄을 찬미하는 사람들도 지구상에 드물 듯하다. 봄은 처녀처럼 오고(봄처녀 제 오시네), 또 음악으로 온다(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나른하고 포근한 봄은 시인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그야말로 걸리는 데 없이 미끄러진다(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시인의 봄, 가객의 봄, 봄은 따스한 계절이다. 봄바람은 따스한 바람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봄처럼, 봄볕처럼, 봄바람처럼 화기를 띄게 되었으면 한다. 거칠고 험한 사람,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다보니 ‘두루춘풍’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봄에는 봄노래 마음 편히 불렀으면 좋겠는데...

- 한국한센복지협회 '복지' 200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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