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89 칼럼니스트 2004년 4월 2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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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국회의장을 기다리며


임 영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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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재보선에서 당선된 유시민의원이 평상복 차림으로 국회의원 선서를 하려다가 못했다. 감색 양복 상의에 회색 라운드 티셔츠,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유의원이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서자 의원석에서 "옷차림이 그게 뭐냐." "놀러 왔느냐." 등 고성이 터져 나오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몇십명이 의석을 박차고 나가 의원선서가 하루 뒤로 연기됐던 것이다. 이번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강기갑 당선자가 평소 입고 다니던 점퍼와 개량한복 차림으로 등원한다 해도 1년 전과 같은 소동이 또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이번 4.15국회의원 선거결과는 그 이상의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정치부 기자로 잔뼈가 굵은 신문사의 한 남자 후배가 "국회의장을 여성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 자신, 부패한 현실정치의 대안으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왔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터였다.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 몫인 국회의장 선출에는 선수(選數)가 우선시 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의 최다선(6선)의원인 김원기 의원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당내 위상이나 당 기여도로 보아 당연한 흐름이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를 곱씹어 보면 이제 여성 국회의장이 등장할 때가 됐다고 할 수 있다. 16대의 두배가 넘는 총39명의 여성의원이 국회에 진출했다는 사실에 단순히 고무된 탓은 아니다. 여성이 국회의장이 된다면 총선 민의가 가장 상징적으로 압축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국회가 환골탈태하고 새로운 정치를 할 것을 요구했다. 부패정치 대결정치를 끝내고 민생을 중요시하며 대화와 상생의 생산적인 정치를 할 것을 바란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른바 거물 정치인인 다선 의원들이 대거 몰락하고 16대의원중 33%만 재당선했으며 초선의원이 63%에 이른다는 것은 '국회 판갈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의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 진출한 진보정당인 민노당은 국회의원의 지나친 권위와 특권을 벗어던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같은 총선 민의와 국회의 변화를 가장 잘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여성의 부드럽고 섬세한 통합의 정치력이다. 새 국회에서는 산업화 시대의 투쟁적인 상어 리더십 보다는 대화와 조정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정보화 시대의 돌고래 리더십이 필요하다.

여성국회의장 후보로는 열린우리당의 3선의원이 되는 이미경 당선자와 재선의원이 되는 한명숙,김희선,조배숙 당선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가운데 장관을 두번 역임한 한명숙 당선자는 여성 총리 후보로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평균연령이 대폭 낮아져 30,40대가 43.1%로 국회의 주류가 된것을 감안하면 다선의 권위에 집착하지 말고 재선, 3선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영국 핀란드 뉴질랜드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이미 여성국회의장이 배출됐다. 지난 92년 영국의 첫 여성 하원의장이된 베티 부스로이드가 8년만에 의장직을 떠날때 의원들은 박수가 금지된 하원의 관례를 깨고 일제히 박수를 보낼만큼 그는 성공적인 국회의장 활동을 했다.

우리도 이제 부스로이드 같은 여성 국회의장을 못가질 이유가 없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아날로그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다만 여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는 이제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정치가 국회문화를 바꿀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30%이상의 여성 국회의원이 배출되어야 겠지만 지금부터는 여성정치인도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17대 국회 여성당선자들의 책임은 그만큼 무겁다.

    - 서울신문 200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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