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71 [칼럼니스트] 2004년 3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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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꽃, 목련

홍순훈
herbhong 'a' 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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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하늘나라에 한 공주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백옥 같이 흰 살결에 갸리끼리한 몸짱인데다 신분마저 짱이니, 하늘의 뭇 청년들이 애간장을 태우며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접근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쿨, 애타는 청년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유는, 무슨 상류층 사교 파티에선지 국제회의 땐지 분명친 않으나 어디서 북쪽 바다를 다스리는 해신(海神)을 한번 만났기 때문이다. 그의 싸나이다운 모습에 팽 가버린 공주는 오매불망 밤낮으로 북쪽 하늘만 바라보며 상사병에 걸린 것이었다.

공주는 결단을 내린다.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마찬가지, 임금 아빠 몰래 궁궐을 탈출하여 북쪽 바다 해신을 찾아 가자. 애인 찾아 3만리 실행은 좋았으나, 그 동안 발바닥 부르트고 주린 배 움켜쥐고 눈물 짠 고생은 말로 다하랴. 그래도 공주의 결단은 성공, 해신의 궁궐에 기어이 도착했다.

도착한 기쁨도 잠시, 공주는 장탄식을 한다. ‘나의 어리석음이라니! 정보의 중요성을 왜 이다지도 몰랐을까?’ 해신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던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슬프게도 공주는 차디찬 북극해에 짱이었던 몸을 던진다.

해신 역시 멀리서 찾아온 공주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녀의 시체를 바다에서 건져 내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준다. 슬픔이 지나치면 꼭지가 도는 법, 얼마 후 해신은 자기 아내도 독약을 먹여 죽인 후 공주 옆에 나란히 묻었다.

이런 신화에나 나올 법한 자살과 타살의 비극을 알게 된 하늘나라 임금님은, 두 여성을 가엾이 여겨 공주는 백목련으로, 해신의 아내는 자목련으로 피어나게 했단다.

목련의 꽃말은 연모(戀慕). 겨울을 막 벗어나 웬만한 나무는 잎눈조차 틔우지 못한 3월에 홀로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서 꽃망울을 터트리고, 4월에 흐드러지게 핀 후 망가진 꽃잎을 땅바닥에 수북히 쌓아 놓는 목련, 미안하오, 금년에 피는 목련은 배신(背信)의 꽃이다.

공주가 애비를 버리고 해신이 아내를 죽이듯, 국민을 속이고 서민을 잡는 갓댐들이 이 땅에서 활개치고 넘쳐나니..... 4월 바람아 불어라! 한날 한시 한닢도 남김 없이 배신의 꽃잎들을 떨어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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