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09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2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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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마뜩지 않은 얼짱 신드롬

지금 인터넷세상을 들여다보면 네티즌 모두가 「얼짱신드롬」에 휩싸여 있다. 어떤 연유에서 비롯됐는지는 확실히 몰라도 네티즌들은 너도나도 얼짱에 열광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분위기는 사이트자체가 의도적으로 띄우기도 하지만 신문과 방송도 덩달아 연일 부채질하면서 더욱 무르익어 가고 있다.

얼짱에 관한 내용이나 기사들은 얼른 보면 상당히 재미가 있지만, 잠깐 물러서서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짱이 떠받들어지는 세상분위기라면 못난 사람은 서러워서 어떻게 살겠는가 하는 걱정마저 생긴다.

「얼짱」이라는 단어처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신조어도 드문 것 같다. 1년 전부터 인터넷을 달군 얼짱신드롬은 베이비얼짱, 스포츠얼짱, 엽기얼짱을 생산(?)해 냈고, 심지어 원조얼짱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얼짱이라는 말은 "얼굴이 짱이다"라는 말에서 나왔고 「짱」이라는 용어는 한자어 장(長)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190년대에는 청소년들 사이에 「캡」이라는 말이 유행하다가 1990년대에 「짱」이라는 말이 생기더니, 드디어 올해 초 매스컴에 등장하면서 이제는 「최고의 용어」가 됐다.

「짱」으로 재미(?)를 본 사람을 들라면 노무현 대통령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후원자들이 노후보에게 「노짱」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언론과 인터넷사이트에서 이 용어를 받아쓰면서 적지 않은 선전효과를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8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씨가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1979년 TV방송에 뛰어들면서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그가 인기를 얻게 한 것은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는 말과 함께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었다.

이주일씨는 이처럼 자신의 용모가 못생긴 것을 오히려 특점으로 삼아 인기를 끈 독특한 사람이다. 아무리 코미디언이지만 아날로그시대에 그렇게 해서 성공한 이주일씨가 만일 인터넷시대인 지금 그러한 전략(?)을 구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매일 같이 얼짱예찬론(?)을 펴고 있고, 그 영향을 받은 네티즌들은 얼짱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상황이다. 아무리 코미디언이라고 해도 아마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서라면 얼짱과는 너무 거리가 먼 나머지 최고의 스타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시류를 반영하듯 성형외과가 엄청나게 성업을 이루고 있다. 성형외과의사 치고 돈 못 벌면 당연히(?) 못난이 취급을 받는다. 사이버공간에도 성형외과와 관련한 웹사이트가 수없이 많다. 포털사이트마다 5백개에서 2천개 가량의 사이트가 소개되고 있다. 전문의가 쓰는 성형칼럼도 인기를 끌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전 여성전문채널 동아TV가 평범한 여성들을 이른바 「퀸카」로 변신시켜준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을 방송하겠다고 광고를 하자 세간에서는 “상업성과 외모지상주의로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동아TV는 “평범한 20대 여성들이 「퀸카」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는다”면서 성형외과 의사, 치과 의사, 전문 피부미용사, 메이크업 및 헤어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여대생 등 20대 여성 3명을 1백일에 걸쳐 성형, 치아미백, 메이크업, 헤어, 다이어트, 피부관리 등을 통해 파격적 변신을 시도할 것이라고 소개했었다.

한 사람당 5천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투입되는 이 프로그램인데도 지원자수가 1천2백여명이나 됐다고 한다. 남보다 예쁘지려는 여성의 본능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가난한 여성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하겠다.

이에 대해 많은 시민들은 “여성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신시킨다는 발상은 방송이 우리 사회의 잘못된 외모지상주의를 부추키는 일” 지적하고 “이 같은 풍조가 만연한다면 얼굴 못난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 방송사가 제작한 「익스트림 메이크 오버」는 이와 대조적이다. 언청이나 얼굴에 흉한 점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성형수술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이 프로그람은 매우 건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아TV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얼굴을 예쁘게 찍을 수 있도록 회전 형 카메라를 폴더 끝 부분에 설치한 일명 「얼짱 폰」을 출시했다. 얼굴사진을 찍을 때 렌즈 위치가 시선 아래쪽에 있어 뺨과 턱이 넓고 크게 나왔던 기존 카메라폰과는 달리 렌즈가 시선 위 이마 부분에 맞춰져 얼굴을 예쁘게 보여 주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폰까지 만들어 냈겠는가.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등에서 조사한 바로는 올해 가장 관심을 끈 검색어는 「얼짱」이었다고 한다. 이는 올 한해에 젊은이들이 얼짱신드롬에 빠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언론과 인터넷이 「성형 권하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얼짱」은 분명 모든 젊은이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사람이 연예분야나 스포츠분야에서 활약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타고난 연기력이나 운동소질을 가진 사람이 그만「얼짱」이라는 찬사(?)에 취하다 보니 노력을 게을리 할 우려가 많다. 그렇게 되면 그 분야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연기 못하는 얼짱탤런트, 운동 못하는 얼짱스포츠선수는 아무 소용이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너무 잘 생겨서 성공 못하는 얼짱들을 가끔 보게 된다. 연기나 운동은 얼굴만 갖고 되는 게 아닌데도 노력을 하지 않으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얼짱신드롬」은 젊은 세대가 연출하고 있는 일과성 문화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잘 생긴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수 있고, 못생긴 사람에게는 콤플렉스를 안겨주는 것이 얼짱신드롬이다. 「얼짱」이라는 말이 왠지 마뜩지 않은 것은 필자의 나이 탓인지 모르겠다.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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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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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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