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08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2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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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셜록 홈스와 흥신소 직원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필자와 같은 50대나 60대의 사람들에게 「탐정(探偵)」이라는 말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읽을 소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절인 1950년대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던 우리들은 국내작가 박래성의 탐정소설에 나오는 유불란탐정의 눈부신 활약을 얼마나 경이롭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탐정소설 매니아들은 이와 함께 「괴도(怪盜) 루팡」이라고 번역됐던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과 코난 도일의 「셜록홈스」를 탐독했다. 신사도둑 뤼팽과 명탐정 셜롬홈스의 치열한 머리싸움은 독자들에게 끝없는 스릴과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 두가지는 중학교 때 마스터를 해야 축에 끼일 정도로 탐정소설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우리들은 그때 탐정이라면 어떤 범인이라도 잡을 수 있는 초인적인 인물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능적이고도 신출귀몰한 범인보다 한발 늦으면서도 정확한 추리와 주도면밀한 작전(?)으로 기어이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기막힌 솜씨에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공부시간에 강의는 듣지 않고 탐정소설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혼나는 친구들도 많았다.  

탐정을 두고 예전에는 염탐꾼이라 했으며, 전쟁 중에는 밀정(密偵) ·간첩 ·스파이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탐정소설이 널리 읽히면서 오늘날에는 주로 사설탐정을 의미하게 되었다. 세계 최초의 탐정기관은 1748년 런던의 보스트리트의 치안판사였던 H.필딩이 창설한 「보스트리트러너」라는 자치체(自治體)에 속한 소수의 조직이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쯤부터 탐정과 비슷한 직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비로 흥신소였다. 탐정이 「남의 비밀사항이나 사정을 은밀히 알아내는 일 또는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흥신소직원 역시 「 의뢰를 받아 개인이나 법인의 경력, 인물, 자산 또는 영업상태 등을 조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탐정이 되려면 △조심스러워야 한다 △관찰력이 뛰어나야 한다 △문제를 접했을 때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기억력이 뛰어나야 한다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서 정보를 빼낼 수 있는 능력을 길어야 한다 △모험심이 있어야 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 △법적인 지식 외에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의뢰인에 대해 철저히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이런 조건은 업무의 성격이 비슷한 흥신소직원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사설탐정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앞에서 열거한 8가지 조건과는 정반대일지도 모를 만큼 자질이 형편없는 사람들이 많다.

흥신소직원이 욕심을 과다하게 부려 마치 폭력배나 공갈배와 같은 행동을 하다가 쇠고랑을 차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돈만 주면 무엇이라도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다. 현실이 그렇다보니 일반인들은 흥신소라고 하면 마치 허가 낸 범죄집단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실세계에서 적지 않게 말썽을 부리고 있는 흥신소가 지난해부터는 사이비공간에까지 대거 침투해 온갖 물의를 빚고 있어 걱정이다. 최근에는 돈만 주면 살인까지 마다 않는 인터넷 흥신소가 등장해 우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흥신소가 「범죄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자신의 불륜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청부살인을 시도한 30대 주부가 경찰에 잡혔는데, 조사결과 인터넷 흥신소를 통해 1천만원을 주고 살인 청부업자를 구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주부의 말로는 자살을 생각하고 자살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심부름센터」와 연결돼 청부업자 이모씨에게 내연관계에 있던 남자를 죽이도록 부탁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현재 이 같은 인터넷 흥신소가 줄잡아 2백개는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업소들이 폭력에다 불법적인 미행과 몰래촬영 등 범죄에 악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곳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해결사」노릇을 폭력 등의 전과자가 적지 않다. 외국의 사설탐정기관, 즉 흥신소와는 질적으로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인터넷상에서 범죄모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개인메일이나 채팅을 통해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적발된다고 해도 인터넷상으로 주고받은 글만으로는 형법상 제재방법이 없다고 하니 걱정이다.

경찰관계자의 말로는 "살인죄나 강도죄와 같이 중죄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예비 음모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서 형법을 제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이다. 현재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유해사이트 신고가 들어오면 심의를 거쳐 이용중지와 내용삭제 등의 명령을 내리는 것뿐이라고 한다.

윤리위원회에 따르면 불법흥신소 등 유해사이트 신고는 수천 건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실제로 범죄구성요건이 성립되어 형사입건된 것은 19건뿐이다. 이런 결과는 범죄는 있으나 처벌은 없는 무법적인(?) 상황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사이버공간에서 온갖 나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나 법적 조치가 미처 뒤따르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멍하니 처다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현실세계에서는 범죄가 먼저 생기고 그 뒤를 따라 처벌법이 마련된다. 인터넷세상도 다를 바 없다.

현실세계이든, 가상공간이든 범죄 있는 곳에 수사가 있어야 하고 죄가 드러나면 처벌을 해야 한다. 인터넷상의 범죄를 엄하게 다스리는 법적 대책을 제때에 마련하는 일과 인터넷이 더 이상 범죄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힘을 기울이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모두의 사명이다. <03.12.18>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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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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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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