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05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2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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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와 '디지털 편지체 소설'

    딴 사람이 받아야 할 이메일이 엉뚱하게 내 받은편지함에 들어오는 수가 있다. 그 덕분에 뜻하지 않게 아주 은밀한 편지를 읽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기도 한다. 한 직장의 유부남을 짝사랑하는 여성의 애타는 편지 같은 것은, 속마음을 들킨 당자에게는 이런 낭패가 없겠지만, 제삼자가 읽기에는 흥미 만점이다. 남의 편지 보기를 재미있어 하는 것은 인간에게 엿보기 본능이 있어서다.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디지털 편지체 소설'(digital epistolary novel, 줄여서 DEN)이 한 장르를 형성하면서 미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사실, 편지체 소설(서간체 소설)이라는 장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래 전부터 있던 것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슬픔'이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디지털 편지체 소설은, ‘디지털’이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디지털 환경을 활용한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이메일로 소설이 전개된다. 간간이 쪽지나 웹페이지도 끼어든다. 독자는 남이 주고받는 이메일을 가로채 읽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좇아간다.

    디지털 편지체 소설에 동원되는 이메일이나 메시지나 웹페이지는 진짜가 아니다. 소설이 ‘가공의 진실’이듯, 이것도 진짜처럼 지어진 것이다. 디지털 편지체 소설은 시디 한 장에 담겨 5달러에 팔린다. 이것을 파는 사이트에서 맛뵈기 소설 한 편을 즉시 내려받아 공짜로 볼 수 있는데, 한 주일 닷새씩 다섯 주 동안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이메일 형식으로 돼 있다.

    이 디지털 편지체 소설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젊은 층이다. 젊은이들 소설책 읽지 않는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다. 그들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를 이렇게 개발할 수도 있다. 소설가도 디지털 환경을 잘 알고 활용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는 듯하다.

    -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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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http://columnist.org/par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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