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04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2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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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여행<3.끝>
중국 경제의 심장 상하이

    요즘도 중국 강소성(江蘇省)이나 쑤저우(蘇州), 항저우(杭州) 사람들은 상하이(上海) 사람을 은근히 촌놈 취급한다. 상하이가 작은 시골 어촌 시절에 쑤저우나 항저우는 귀족의 도시였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중국인들에겐 상하이는 일자리도 많고 임금 수준도 높아 부러움의 대상이다. 상하이의 어제와 오늘을 바라보는 극명한 대비다.

    양쯔강 입구의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던 상하이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42년 아편전쟁 이후. 아편전쟁 패배이후 프랑스, 영국 등과 맺은 난징조약으로 5개항구가 개항되면서 국제적인 항구도시로 탈바꿈했다. 영국 등 열강에 의해 계속 조차(租借)지역으로 승계 되었던 상하이는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서 뿐만 아니라 과학, 무역, 산업, 기술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중국 최대의 공업도시이자 항구도시인 상하이는 북경, 천진과 함께 중국의 3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다.

    식지 않는 건설 붐…김정일도 “천지개벽”

    # 푸동지구 개발

    상하이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로 놀랍다. 김정일 위원장이 2001년 19년만에 상하이를 방문하여 ‘천지개벽’이라고 한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상하이는 중국의 개혁과 개방의 상징도시로 용트림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양쯔강(長江)을 한 마리 거대한 용에 비유한다. 양쯔강 하류의 삼각주에 위치한 상하이가 용머리에 해당된다면 중류의 충칭(重京)은 몸통이고, 상류 쓰촨(四川)은 꼬리에 해당한다.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꿈꾸는 상하이 푸동지구의 빌딩 숲은 뉴욕의 마천루를 연상케 한다.

    황푸(黃浦)강 밑 지하터널을 빠져나와 푸동(浦東)지구로 접어들면 증권거래소와 인민은행 지점 등 각종 국내외 금융기관이 빼곡이 들어선 다운타운이다. TV 송신탑 겸 관광 타워로 사용하고 있는 동방명주탑은 높이가 468m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푸동 건설의 상징이 되었다. 98년에 완공된 88층짜리 징마오다샤(經貿大厦.경제무역빌딩)가 위용을 뽐내고, 도심 스카이라인 위에 솟은 타워크레인은 푸동 건설과 개발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과시한다.

    한강보다 수심이 깊고 폭이 넓은 황푸강을 컨테이너선이 수시로 오가거나 정박해 있어 경제?물류의 중심지구임을 피부로 느낀다. 중국은 외국자본의 유치를 위해 토지를 70년간 무상 대여하는 조건으로 외국인에게 건설을 허가해주며 유인정책을 펴고 있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투어 아시아.중국 본사를 상하이로 결정하여 세계 일류 제품의 각축장이 된지 오래다. 거대한 소비시장과 생산기지를 한꺼번에 끼고 있는 도시라는 점이 상하이의 매력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상하이를 중국의 밖으로 뻗어 가는 출구이자,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입을 모은다.

    와이탄(外灘)지역 동쪽은 황푸강이 유유히 흐르고, 서쪽은 50여개의 각기 다른 양식의 서양식 근대 건축들이 줄지어 있다. 이 건물들은 서방열강 시대에 상하이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고, 와이탄은 상하이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옛 기상청 건물 등은 도로 확장 때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땅을 파서 통째로 도로변으로 옮겨놓았다. 황푸강 유람선을 타고 바라보는 상하이의 야경 또한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대표적 볼거리가 됐다.

    황푸강 하류쪽에 위치한 양포대교는 남포대교와 함께 자매교로 불린다. 전체길이 7,658m. 주 대교의 길이는 1,172m로 93년 10월에 개통되었다. 양포대교는 푸동지역과 상하이 시내를 이어줄 뿐만 아니라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희망의 다리다.

    상하이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상업 중심지 난징로는 활력이 넘친다. 거리의 교통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일터로 향하는 아침거리 풍경은 역동적이다. 한 손에 자전거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빵을 먹으며 출근하는 모습은 생동감이 넘친다.

    상하이의 상주인구는 1,700만, 유동인구를 포함하면 2,300만명의 거대도시다. 면적은 서울특별시의 10배인 6,340㎢. 푸동(522㎢) 지역의 넓이만 여의도의 60배에 달한다. 양쯔강 입구의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상하이가 최근 10년 동안 중국최대의 무역항이자 최대 수출기지로 발돋움했다.

    푸동 개발정책이 발표된 것은 주롱지(朱鎔基) 총리가 상하이 시장으로 재직중이던 1990년 4월. 10년전만해도 논밭이었던 푸동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완전히 달라져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한다. 물론 상하이의 성장과 발전에도 걸림돌은 있게 마련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의 질과 제도다. 상하이 사람 세 명이 대만인 한사람과 비교될 정도로 인력의 질적인 차이가 심하다고 한다. 중앙정부의 관료적 사고방식과 인민의 피동성이 외형적 성장을 질적인 성장으로 전환하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중국은 올해 두 자릿수 성장으로 세계경제질서의 강자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지만 우리는 고작 2%대에 그치고 있다. 한국을 동북아 중심국가로 만들겠다고 목청만 높이고 ‘소득 2만불시대’를 열겠다고 구호만 외치는 꼴이니 뒤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갈수록 줄어들고, 국내기업의 탈(脫)한국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임금은 생산성 향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노사대립은 심화되는 데 누가 선 듯 투자하려 들겠는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었던 한국이 이무기로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와 자괴감을 지을 수 없다.

    ‘정부집무실’엔 작은 책 세 개가 고작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와 루쉰공원.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아픔을 체험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大韓民國 臨時政府 舊址)는 일제시대 3?1독립운동이 일어난 뒤 광복을 위해 임시로 중국 상하이에 선포한 정부가 활동하던 장소이다. 이봉창(李奉昌)과 윤봉길(尹奉吉)사건으로 일본의 탄압이 심해져 1932년 저장성(浙江省)의 항저우(抗州)로 활동무대를 옮기기 전까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활동했다.

    임시정부청사는 상하이시 루완구 마당로에 위치한 쓰러져 가는 옛 건물사이에 위치하여 초라한 느낌을 준다. 1992년 노태우 전대통령이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삼성그룹의 노력으로 그나마 깔끔하게 유적지로 꾸며놓았다. 입장료는 15위안(2,250원). 도로 옆 1층이 들어서면 임시정부요인들의 활동상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활동사진을 본 뒤 골목 옆 전시실 출입구에서 비닐 덧신을 신고 들어서면 빛 바랜 옛 대형 태극기 두 개가 맞은 편 벽에 걸려 있어 가슴 뭉클한 감회를 느낀다. 왼쪽 벽에는 이승만, 박은식, 이상율, 홍진, 김구, 이동녕, 등 6인의 흑백 초상화가 낯설지 않다.

    맞은편 전시실은 ‘부엌’. 아궁이와 부뚜막과 솥과 물독이 가난했던 시절 시골의 초가집 부엌만큼 초라해 보여 코끝이 찡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은 개방된 ‘화장실’. 대나무로 만든 요강에 판자 뚜껑을 만들어 놓고 용변을 보는 곳이다. 요즘도 상하이 서민 아파트는 이런 변기를 사용한다는 것.

    좁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정부집무실’. 말이 집무실이지 작은 사각책상 세 개 달랑 놓여 있는 게 전부다. 벽에는 도산(島山) 선생 쓴 ‘애기애타(愛己愛他)’ 액자가 걸려있다.

    맞은 편 방은 ‘김구 선생 집무실’. 책상 위에는 구식 검정 색 전화기가 놓여 있고, 방구석에는 작고 초라한 침대가 놓여 있으며, 바람개비가 네 개인 철제 선풍기가 서있다. 벽면에 놓인 장롱 속에는 독립신문들을 진열해 놓았다.

    옆방은 임정 수립의 역사를 기록한 안내지와 역사적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등(吳等)은 자(慈_에...'로 시작하는 ‘대한독립선언서'의 푸른 인쇄 글씨.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초상, 비밀리에 주고받은 편지들, 당보, 각종 선언서, 관련 신문 스크랩 등이 전시돼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기념스카프와 배지 등을 파는 선물 코너와 함께 성금모금함과 방명록이 놓여 있다.

    71년 만에 세워진 윤봉길 의사 기념관

    #루쉰궁위안(루쉰공원.魯迅公園)

    상하이시 북쪽에 위치한 루쉰공원은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추앙 받는 루쉰을 기념한 곳으로, 우리에게는 홍구공원(훙커우공원?虹口公園)이라는 이름이 더 귀에 익은 곳이다. 이른 아침에 들린 탓인지 무리 지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패드병에 물을 담아 주둥이를 천으로 막은 뒤 붓 삼아 아스팔드 위에 글자를 쓰는 모습도 특이하다. 호수를 품고 있는 공원은 너무 넓어 둘러보기를 포기하고 루쉰 묘와 흉상이 있는 먼저 곳을 찾았다.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상가며 혁명가이기도 했던 루쉰(魯迅 1881~1936)이 공원의 주인대접을 받으며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루쉰의 흉상과 묘를 비롯, 루쉰기념관이 있고, 공원 옆에는 루쉰이 말년을 보낸 집이 보존되어 있다. 묘비명은 마오쩌둥의 필체.

    공원 한쪽에는 선 듯 이해하기 힘든 안내판이 서 있다. ‘매정(梅亭) 매원(梅苑). 1994년에 고려풍(高麗風)으로 건축했다. 정자 둘레에 매화를 심어 매정이라 했다. 1998년 매원 안에 석비를 하나 세웠다. 여기서 발생한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그리고 고인을 기리고, 평화를 기리기 위함이다.’ 매원은 윤 의사의 호. 고려풍은 한국, 역사적 사건은 윤 의사의 의거를 뜻한다. 안내판 있는 곳이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

    1994년 한국정부가 윤 의사 기념관을 루쉰공원 내에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는 한국 임시정부 계열의 항일투쟁을 인정하지 않는 북조선이 항의할까 우려했고, 일본 관광객들의 감정을 고려한 중국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어정쩡하게 안내판을 쓴 것이다.

    1908년에 태어난 윤봉길은 18세 때 상하이로 건너와 김구(金九)가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1932년 4월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소위 천장절(일본왕 생일) 및 승전기념 축하식장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 등 많은 요인을 숨지게 한 뒤 그 해에 사형 당했다.

    안내판을 지나 호수를 낀 안쪽에 들어서면 한글과 중국어로 윤 의사의 의거를 각인해 놓은 ‘석비’가 반긴다. 석비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2층 누각 ‘매정(梅亭)’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12월4일에 개원한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다. 일제하 대한독립의 기개를 만방에 펼쳤던 그의 우국충정이 71년 만에 역사의 현장에 들어섰다.

    유품으로는 윤 의사의 고향 전경과 윤 의사가 사용하던 붓과 벼루, 한시집, 월진회 취지서와 통장, 윤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시, 의거 직전 김구(金九)선생과 함께 한 윤 의사의 모습과 시, 의거에 사용한 물통과 도시락 폭탄의 모형이 전시돼 있다.

    <여행 쪽지>

    △상하이 요리

    항구 도시답게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유명하며 ‘해파(海派)요리’라고도 한다. 수산물과 사계절의 신선한 야채를 사용하는 상해요리는 원료의 본맛을 살리면서 연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 게 요리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취해(醉蟹)’. 산 게를 술에 담아 두었다가 먹는 방법으로 인기드라마 ‘대장금’에서도 소개된 북송 때부터 전해지는 요리다. 상하이 요리는 전반적으로 기름기가 많고 맛이 진하고 바삭한 것이 특징. 간장과 설탕을 많이 사용하여 달고 매운 맛을 낸다.

    흰죽, 닭죽, 피단죽, 새우죽 등 중국의 가장 일반적인 아침식사는 ‘쪼우(粥)’이다. 커다란 꽈배기 같이 생긴 ‘요우티아오(油條)’는 기름에 바싹 튀긴 것. 길이는 약 30~40㎝ 정도. 맛은 약간 짭짜름하고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말랑하다. 죽에 넣어 먹거나 또우쟝과 함께 먹는다. ‘또우쟝(豆醬)’은 우리나라 베지밀보다 맑고 달콤하다.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두 종류가 있으며, 중국인들에게는 인기 있는 음료.

    중국인들은 만두를 좋아한다. ‘빠오쯔(包子)’ 만두소는 돼지고기와 부추, 배추 정도로 재료자체의 맛을 즐기는 게 특징. ‘샤오마이(燒賣)’는 만두 끝을 오므리지 않아 만두 속이 보이는 만두. 안에 찹쌀과 고기가 들어 있어 쫄깃쫄깃한 맛을 즐길 수 있으며 모양도 예쁘다. ‘훈뚠’은 우리나라 만두국과 맛이 비슷. 크기는 만두의 절반정도이며 국물 맛이 담백하다. ‘따삥(大餠)’은 밀가루를 반죽해 원형 또는 사각 모양으로 만들어 참깨를 뿌려 구운 빵으로 중국인들이 아침식사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대부분 호텔 아침 식단에 나온다.

    △ 아침은 대부분 외식

    아침은 보통 6시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일반가정은 가사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침은 거의 외식을 한다. 아침먹거리들 대부분은 노점에서 해결하는 데 노점은 음식이 다양하고 값이 싸 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빵을 먹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저녁은 남편들이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상하이 거리풍경

    한마디로 교통의 무법지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뒤에서 차가 빵빵 경적을 여러 번 울려야 마지못해 피해준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과 차량 운전자간에 눈을 흘기는 일을 다반사다. 자전거 도로가 있으나 곳곳에서 끊겨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다시 차량들과 뒤엉킬 수밖에 없다.

    또 상하이에는 신호등이 없는 거리가 많아 대충 차량의 흐름을 봐가며 길을 건너야 되는 경우가 많다. 횡단 보도는 있으나마나. 차량은 무시한 채 무단횡단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휙 지난다. 차들은 아무데서나 유턴하고 좌회전하고, 끼어 들기는 아찔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거리 풍경’은 서커스 묘기를 방불케 한다.

    - 2003.12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ky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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