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03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1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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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여행<2>
동양의 베네치아 쑤저우

    쑤저우(소주.蘇州)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춘추시대 오나라의 수도로 자리잡은 이래 2500년이나 내려온 고도(古都)이다. BC 514년 오왕(吳王) 합려(闔閭)가 이곳에 약 24㎞의 성벽을 쌓으면서 도시가 형성됐다.

    소주는 도시 전체에 운하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원나라 때 이곳을 다녀간 마르코 폴로는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찬탄했다. 이곳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은 장강(長江)으로 흘러든다. 소주 사람들의 생활은 운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교통수단도 대부분 배를 이용할 정도로 ‘물의 도시’다. 서쪽으로는 태호와 가깝고 동쪽으로는 상하이와 가깝다.

    중국인들은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소항(蘇杭)’이라 하여 소주와 인근 항주(杭州)를 ‘인간 천당’이라 불렀다. 풍광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남송시대 때부터 자수와 비단제품의 산출로 부유한 고장이다. 쌀, 명주, 차, 물고기가 풍부하여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고도 한다. 그런 탓으로 중국인들은 소주의 미인을 아내로 맞아 소주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다.

    운하와 정원의 도시로 이름난 이 소주는 ‘비단 장수 왕서방’의 본고장으로 관광도시이면서도 중국의 실크산업을 주도하는 산업도시다. 높은 생산력을 지닌 벼농사를 토대로 고도의 수공업을 일찍부터 발전시켜온 소주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1994년부터 중국-싱가포르 합작사업의 일환으로 소주공단(蘇州工業園區)을 건설하면서 역사고도에서 역동적인 현대도시로 탈바꿈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주의 중심인 남북을 관통하는 인민로(人民路)에는 많은 상점들이 몰려있다.

    중국판 피사의 사탑 ‘운암사탑’ 눈길

    #후치어우(호구.虎丘)

    처음 찾은 곳은 호구(虎丘). 평야로 이루어진 소주는 산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소주에서 가장 높다는 호구산(虎丘山)은 해발 36m. 산이라기보다 야트막한 언덕이다. 호구는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476년)말기, 오나라 왕 부차(夫差)가 그의 아버지 합려(闔閭)의 묘역으로 조성한 곳이다. 그를 매장한 지 3일째 되는 날 하얀 호랑이가 나타나서 무덤을 지켰다는 전설로 인해 ‘호랑이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도심에 자리한 공원이라 사람들이 붐빈다. 호구산 들머리 오른쪽에 있는 시검석(試劍石)이 눈길을 끈다. 오왕 합려(闔閭)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 시험삼아 잘랐다는 전설이 담긴 돌로, 실제로 가운데가 둘로 쪼개져 있다. 그곳에서 좀더 올라가면 1,000명이 앉아서 승려의 설법을 들었다고 하는 천인석(千人石)이 있다. 소동파가 즐겨 마셨다는 샘물 제삼천(第三泉)과 합려의 유체와 함께 3,000여개의 검이 묻혔다는 검지(劍池)도 발길을 머물게 한다. 진시황이나 손권(孫權)이 검지에서 명검을 발굴하려 노력했지만 단 1개의 검도 찾지 못했다.

    20ha 면적의 호구산 정수리에 우뚝 솟은 ‘운암사(雲岩寺)탑’은 압권이다. 8각형 7층 벽돌탑으로 높이는 47.5m. 961년에 완성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다. 이 탑은 1173년~1350년에 건축된 세계7대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하나인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斜塔)’처럼 15도 정도 기우러져 있는 ‘중국 판 피사탑’이다. 눈으로 보기에도 기울어진 경사가 느껴진다. 올 해 개방하기 시작했다는 탑 내부 1층을 둘러보았다. 해마다 2㎜씩 기우러지고 있다는 설도 있고, 벽돌 탑을 쌓으면서 3층부터 기울기가 기울어졌다는 설도 있다. 탑 꼭대기는 몇 년전 낙뢰로 훼손된 것을 보완하여 탑의 품격이 훼손된 것이 아쉽다.

    남방 정원의 백미…중국 4대 명원

    #졸정원(拙政園)

    중국에는 옛부터 ‘강남의 정원은 중국 제일이요, 소주의 정원은 강남의 제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주에는 정원문화가 발달됐다. 두 번째 찾은 곳이 중국의 4대 명원(名園) 가운데 한 곳인 졸정원(拙政園). 면적은 4ha로 중국 4대 명원 중에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정원이 조성된 것은 명대의 왕헌신(王獻臣)이 관직에서 추방되어 실의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온 때인 1522년. 진대의 시 한 구절인 ‘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한다(졸자지위정?拙者之爲政)’에서 본 따 졸정원이라고 이름지었다. 부지의 60% 정도가 연못으로, 연꽃이 피면 누각과 정자를 휘감은 물길 따라 자욱한 물안개 속에 연꽃 향이 그윽하다는 것.

    정원 안은 동, 중, 서원(西園) 3개의 구역으로 나뉘져 있으며 각각의 변화가 풍부하다. 호수, 정자, 나무와 꽃 그리고 그림과 조각을 잘 조화시킨 남방정원의 백미다. 연꽃의 향기가 퍼져 있다는 것에서 이름이 붙은 원향당(遠香堂)에서 바라보는 졸정원의 풍취도 일품이다. 소설 홍루몽(紅樓夢)의 배경인 대관원의 모델이라고도 한다. 장가계의 비경이 수묵화라면 소주의 정원은 한 폭의 수채화다.

    졸부의 재산은 물거품인가. 왕혼신의 아들은 도박으로 졸정원을 날려버렸고, 지금은 정부에서 관리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북경(北京)의 이화원, 승덕(承德)의 피서산장(避署山莊), 졸정원 함께 중국의 4대 명원 중 한 곳인 소주의 유원(留園)을 일정에 밀려 들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밖에도 소주에는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창랑정(滄浪亭),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망사원(網師園), 청대에 만들어진 이원(怡園) 등 볼만한 정원들이 많다.

    불우한 선비의 시심 스민 한산사

    #한산스(한산사.寒山寺)

    소주는 수려한 풍광 덕분에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정작 소주의 이름을 높인 것은 과거에 떨어져 시름없이 고향 길을 가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게된 장계(張繼)가 지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시다.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고
    고깃배 불빛, 강가 단풍을 비춰 잠 더욱 못 이루는데
    고소(姑蘇)성 밖 한산사(寒山寺)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客船)에 이르네

    ‘풍교야박’으로 유명해진 한산사는 서기 502년에 건립된 고찰이다. 역대 중국의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5차례나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었다가 청대 말에 재건되었다. 당나라 때에는 일본에서 많이 유학을 오기도 했다. 당대(唐代)의 승려인 한산(寒山)이 머물면서 한산사로 부른다.

    절 입구에 들어서니 향냄새가 진동한다. 향을 많이 태울수록 복을 많이 받는 다는 속설 때문에 향을 다발 채 향로에 넣고 소원을 빈다. 이곳 저곳에 켜놓은 커다란 촛불이 제 몸을 녹이며 흘러내린다. 절 마당과 회랑에는 시 한 수 때문에 절을 찾았다는 청나라 강희제(康熙帝)를 비롯한 명사들의 서비(書碑)가 즐비하고, 절 밖 상가에서는 ‘풍교야박’ 탁본이 잘 팔려 불우한 시인의 혼을 위무한다.

    경내 종루에 있는 범종은 원래 1,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청나라 때 일본인들이 약탈해갔다. 현재 종루에 있는 종은 1907년에 만든 것.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종소리는 40위안씩 내고 소망을 비는 신도들이 치는 종소리다. 대웅보전 안에는 일본이 사과의 뜻으로 만들어 보내온 종이 있다. 한산사 앞에는 장계의 시에 등장하는 풍교(楓橋)가 있다.

    한산사에서 나와 마주 보이는 8각형 9층의 불탑이 북사(北寺)탑이다. 높이 76m로 나무와 벽돌로 만들었다. 양(梁)나라 때 창건했고, 남송(南宋)때인 1153년에 중건(重建)한 것이다. 탑이 있는 북사는 17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소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나무 계단으로 7층까지 올라가면 소주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소주의 상징탑이다.

    실크로드 발원지…한 올 한 올 수작업

    #실크공장 견학

    소주는 항주 능수와 운남 주단과 함께 중국 3대 실크의 고장이다. 공장에 들어서면 맨 처음 안내하는 곳이 공연장. 다양한 패션의 실크를 걸친 미희들이 펼치는 패션쇼도 볼거리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과정에서부터, 실을 부풀리는 작업, 부풀린 실크 솜으로 이불을 만드는 공정을 둘러봤다. 김이 서리는 더운물에 손을 담그고 작업하는 여성 종업원의 손은 퉁퉁 부어있어 안쓰럽다. 이곳에서도 실크산업은 3D 업종이지만 소주 인근에서 몰려드는 농촌 사람들이 이 회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한다. 한 올 한 올 실을 뽑아 기계에 거는 작업은 자동화공정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며 나라에서 운영한다.

    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니 실크 의류, 머풀러, 침구 등 다양하고 부드러운 실크 제품이 눈을 현란하게 만든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을 노린 당국이 관광객의 발길을 의도적으로 유인한다.

    <여행 수첩>

    소주는 상하이에서 100㎞. 고속도로가 뚫려 1시간 정도 걸린다. 상하이~쑤저우 열차 여행도 1시간 소요. 상하이에서 소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주변 농촌에는 각종 공장들이 건설 중이어서 중국 전역이 현재 공사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자나 기계 등 첨단업종도 있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들이 외면한 3D업종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드넓은 평야에는 뽕나무가 즐비하다. 동양의 베네치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중심가 운하는 오염되어 악취가 풍기고, 물길 옆 판자 집들은 60년대 청계천 판자 집을 연상케 한다.

    - 2003.12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ky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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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219 ■중국 여행<2> 동양의 베네치아 쑤저우 
031218 ■중국 여행<1> 장가계, 여기가 무릉도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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