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98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1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 |
나무처럼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 지내는 분의 노모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자리를 지켜본 적이 있다. 병원이 아닌 안방에서 유족들과 함께 임종을 한 것이다.

    누구의 주검을 마주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고 비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바로 전까지 벌였던 사투의 흔적이 험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 형제를 비롯한 여러 주검을 겪어 보았지만 그렇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도리어 조용히 눈을 감으신 평화로운 표정에서 형용하기 어려운 기품과 단아함까지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한 생명이 이승에서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무덤덤할 정도로 담담한 내 자신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고인의 피붙이가 아니어서일까. 자문해 보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냉정을 충분히 유지하지 못하는 여린 성격을 내 자신이 싫어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분의 주검 앞에서는 왜 그랬을까. 상가를 나와 긴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곧 그 까닭을 알았다. 깊은 겨울 밤 차가운 하늘을 향해 좌우로 늘어선 나목들이 바로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벌거벗은 채로 서 있으면서도 추위에 움츠리거나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그 나무들의 기품과 위엄이 고인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그 분의 주검에서 마른 나무가 지닌 소박함과 굳건함을 느꼈던 것이다.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처럼 나무의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언제 닥칠지 아무도 모르고, 원하는대로 맞이할 수도 없는 죽음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말한다면 나무처럼 살다가 나무처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그 이후부터 내게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것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유명한 영화 ‘희생’의 처음 장면에 나오는 죽은 나무처럼.

    영화의 주인공 알렉산더는 그의 생일날 오후 막내아들 고센과 함께 죽은 묘목 한 그루를 황량한 바닷가에 심는다. 그는 아들에게 먼 옛날 ,죽은 나무에 삼년 동안 매일 같이 물을 주어 마침내 꽃을 피우게 만든 한 수도승과 그 제자의 전설을 들려준다.

    타르코프스키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과 신뢰를 죽은 나무를 통해 강조했다. 죽은 그 나무의 외형은 앙상하고 메말랐지만 구도자의 자세로 서서 부활과 강렬한 구원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한 것이다.

    그처럼 죽으면 죽은대로, 살아있으면 살아있는대로 고아한 기품과 위대함을 지니며 우리에게 부러움과 아쉬움,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나무다. 봄부터 겨울까지 어느 계절이건 그때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고결한 자태를 잃지 않는다. 벌거벗은 나목은 나목대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고목은 고목대로 위엄과 기품을 흩트리지 않는다. 나무의 추한 모습은 여간해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가. 청춘이니 젊음이니 하는 말들이 아름다움과 강력한 에너지를 표상하지만 배타적이고 제한적인 의미가 깊이 깔려 있다. 즉 이와 상대되는 노년이나 늙음은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표하고 있다. 인간보다는 덜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들도 젊은 날은 귀엽고 아름다우며 씩씩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힘이 빠지며 추해진다.

    잎이 다 떨어지고 바싹 말라도 품위를 잃지 않는 나무 등 식물과는 영 다르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 차이가 더욱 심하다. 동물의 죽은 모습은 대개 추하지만 죽은 나무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안타깝고 아쉬운 노릇이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임을 어찌하랴.

    그렇다고 인간을 비롯한 동물에게 식물처럼 기품을 잃지 않는 종말은 영 불가능한 것인가. 타르코프스키의 ‘죽은 나무’나 나무같은 기품을 유지한 채 숨을 거두신 그 노모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강렬한 희망의 단서이자 구원의 메시지다.

    주변을 보면 나무처럼 기품있게 늙어 가시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은 젊은 날의 푸르름과 정력이 쇠퇴했지만 노년 나름의 미덕을 드러내며 고결한 자태를 잃지 않는다. 드물지만 이런 이들에게서 나무가 전하는 희망과 구원을 감지할 수 있다.

    - 동화기업 사보 1/2월호(2003 12)


-----
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ynhp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