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97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1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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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요구를 당장 중지시켜라

우리나라의 17세 이상 되는 국민이라면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아야 한다. 주민등록증은 "당신은 이제부터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는 인정서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래서 주민등록증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기분이란 정말로 "Good!"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주민등록증을 반드시 제시해야 할 때가 있다. 은행에서의 통장개설, 운전면허취득, 각종 민원서류발급 등의 일을 볼 때가 그렇다. 그래서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리면 많은 불편을 겪게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갑에 주민등록증과 함께 운전면허증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신용카드나 회원카드 등을 넣고 다닌다. 그래서 지갑을 분실했을 때는 정말로 난감해진다.

부랴부랴 은행이나 카드회사에 분실신고를 한 다음 이를 재발급 받으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주민등록증의 재발급이다. 주민등록증이 있어야만 신용카드나 회원카드 등을 발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증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적혀있다. 그 속에는 많은 비밀(?)이 담겨 있다. 우선 그 사람의 생년월일을 알 수 있다. 간혹 호적이 잘 못돼 실제 생일과 다른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2∼3%도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추측이다. 비록 실제생일과 다른 주민번호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소용되는 것은 주민등록번호 자체이다.

특히 뒷부분의 7자리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정보가 들어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물론 그 사람의 출생지를 알 수 있다. 마지막 숫자는 「검증번호」이다. 생년월일을 포함한 앞 12개 숫자 모두를 특정한 공식에 대입해서 산출한다. 따라서 앞의 12자리 숫자가 차례로 정해지면, 마지막에 올 수 있는 번호는 딱 하나로 결정된다.

인터넷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 ID를 만들면서 엉터리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할 경우 컴퓨터가 금방 "그런 번호는 없다"고 거부한다. 이 마지막 번호가 공식에 안 맞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진위를 확인시켜주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금 우리들이 갖고 있는 주민등록증은 1968년에 생겨났다. 그해 5월에 주민등록법을 개정하여, 병역사항과 특수기술사항을 신고사항으로 규정하고 주민등록증제도를 만들었다. 이때 주민등록증은 만 18세 이상의 성인에게 발급됐으며, 12자리의 주민등록번호제도가 함께 도입됐다.

1975년에 이루어진 3차 개정에서 발급대상을 18세 이상에서 17세 이상으로 낮추었고, 사법경찰관리가 확인을 요구할 때는 언제든지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도록 했다. 이 때 개정된 시행규칙에 따라 주민등록번호가 현재와 같은 13자리로 바뀌었다.

1980년의 제5차 개정에서 17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주민등록증소지의무를 부과하고 분실했을 때 7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했다. 그리고 1983년 주민등록증 일제갱신을 통하여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이 나오기 전까지 사용되었던 비닐로 만들어진 형태가 확정되었으며, 2000년 5월까지 사용됐다.

이이 앞서 1996년 김영삼 정부 당시, 전자주민카드의 도입이 추진됐으나 국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자 비닐에서 플라스틱으로만 바꾸고 이를 2000년 6월부터 전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비닐로 된 구 주민등록증은 2000년 6월부터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이때의 10차 개정에서는 주민등록법 자체에 지문이라는 문구를 처음으로 삽입함으로써 지문날인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지문날인이 법적인 근거도 없는 불합리한 제도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문날인의 법적 근거를 제도를 폐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률로서 강화시켰던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개정을 통해 주민등록증의 소지의무는 법률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법경찰관리가 주민등록증을 요구할 때 운전면허증만 보여주면 별 시비 없이 넘어간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이 신분증으로서 절대적인 위치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겠다.

우리는 한동안 주민등록번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거의 모르고 살아왔다. 사실 산업사회였던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나의 주민등록번호가 설사 남에게 알려졌어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모든 것은 인터넷으로 통한다"는 인터넷시대를 맞아 우리들이 e메일을 쓰고, 검색을 하고, 전자상거래를 하려면 인터넷사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반드시 주민등록번호를 가르쳐줘야 한다. 그냥 가입시켜주는 사이트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다.
 
문제는 이때 제공한 나의 주민등록번호가 가끔 다른 곳으로 유출된다는 사실이다. 사이트가 해킹을 당해서 그럴 수도 있으나, 고의로 그럴 때도 적지 않다. 해당 사이트가 문을 닫으면서 회원의 정보를 송두리째 다른 사이트에 팔아 넘기는 일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인터넷 이용자의 5명 중 한명 꼴인 19.8%가 주민등록번호를 도용 당한 적이 있으며, 11.8%는 반대로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인터넷사이트의 회원 가입 등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최근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이 실시한 「주민등록번호 도용에 관한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개인정보의 침해가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상담 및 신고사례 가운데 주민번호 도용과 관련된 내용이 57%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터넷 사업자들이 과도하게 개인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됐다.

응답자들이 가장 제공하기 꺼려하는 정보는 주민번호(92%), 신용카드번호(70%), 예금계좌번호(61%) 순으로 나타났다. 많은 네티즌들이 이 같은 비율로 응답했다는 것은 자신의 정보가 그만큼 유출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조사대상 인터넷 웹사이트 4백48개 가운데 447개가 회원으로 가입할 때 주민번호 입력을 필수항목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이들 업체들은 주민번호를 수집하는 이유에 대해 본인확인(71.4%)과 성인인증(14.3%)을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청소년의 경우는 이보다 더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8월말부터 9월초까지전국의 13∼19세의 인터넷 사용자 2천7백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민번호 생성기 또는 타인의 주민번호를 이용해 회원제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타인의 ID를 도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30.9%인 846명이 "있다"고 답했다.


이제 인터넷업체들이 꼭 회원이나 가입자의 주민번호를 꼭 알아야 하느냐를 따지 않을 수 없다. 본인확인과 성인인증이 그 이유라면, 이건 "장사를 너무나 편하게 해먹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여 가입을 원하는 사람이 본인인지, 그리고 성인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주민등록번호의 유출이 개인은 물론 사회적·국가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이상 정부당국은 업체의 편의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인권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금 당장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얘기이다. <03.12.1>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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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http://columnist.org/netporter/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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