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96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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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와 리더의 귀

    신라 제48대 경문왕은 유난히 귀가 커 당나귀 귀를 닮았다.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왕의 감투를 만드는 복두장이 뿐이었다. 그는 요상하게 생긴 임금님 귀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말을 했다가는 임금 모독죄나 비밀누설죄에 해당되는 중벌을 받을게 뻔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복두장이는 도림사 대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소리치며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냈다. 그 뒤 바람이 불면 대나무 밭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소리가 났고 소문은 장안에 퍼졌다. 참다못해 경문왕은 대나무를 베어내고 산수유를 심었으나 그 소리는 계속 들렸다.

    경문왕의 ‘여이설화(驪耳說話)’는 비밀이란 아무리 감추려해도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이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이건 너한테만 말하는 비밀”이라고 다짐을 받아도 세상을 떠돌다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경문왕은 당나귀 닮은 귀를 숨길 것이 아니라, 큰 귀로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려 선정을 베풀었으면 당나귀 닮은 귀는 흉이 아니라 오히려 추앙의 상징이 됐을 것이다.

    나라를 이끄는 임금이나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조직의 리더들은 말을 아끼고 당나귀 귀가 되어 아랫사람의 의견을 듣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리더들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다. 아랫사람의 의견은 들은 채 만 채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거나 독선적인 지시로 끝내는 ‘독불장군형’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아랫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결론을 내리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형’이다. 독불장군형 리더는 부하들을 일방적으로 따라오게 하다가 공멸(共滅)할 공산이 크지만, 쌍방향 커뮤니케이션형 리더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정보를 교환하여 결정하므로 공생(共生)관계라 할 수 있다.

    독불장군형 리더 중에는 자수성가한 최고경영자(CEO)나 월급쟁이 중에서도 입지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난다. 성취에 따른 자만심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독선에 빠지기 쉽다. 그러다 보니 말이 많을 수밖에 없고 말이 많다보니 자기 함정에 빠져 속내를 드러내 문제를 일으킨다.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일수록 듣기 거북한 말에는 참지 못하고 감정을 노출시켜 바른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된다.

    또한 모든 걸 완벽하게 장악하고 통제해야 직성이 풀린다. 자신의 의사결정에 따라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를 바란다. 일은 빈틈없이 추진되는 장점이 있으나 조직의 덩치가 커지면 추진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시시콜콜 간섭하게되면 직원들은 수동적이 되고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게 된다. 과감하게 업무권한을 넘겨주고 추진 결과를 지켜 본 뒤 결과에 다라 칭찬을 아끼지 말거나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리더일수록 다양한 정보를 수렴하여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펼칠 수 있다. 칭기즈칸이 인구 200만밖에 안되는 몽골민족을 거느리고, 수십 배의 인구와 영토를 가진 중국과 러시아를 마음대로 유린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몽골군의 탁월한 정보력과 전령(傳令) 시스템 덕분이었다. 곳곳에 흩어진 상인들과의 연계로 각국의 동향을 꿰뚫고, 탁월한 기마병들로 구성된 전령들이 총사령부와 점령지를 오가며 소식을 전달했다. 칭기즈칸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활용이 주효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남의 말을 정성껏 들어 주는 데 있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 준다거나, 작업현장의 살아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때에 따라 1대1면담이나 팀별로 회식을 하거나, 월례 모임을 정례화 할 필요도 있다.

    요즘은 직장분위기가 많이 삭막해졌지만 예전엔 퇴근 후 동료나 선후배가 어울려 주점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술자리만큼 상사와 부하, 동료와 동료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 빠르고 정확하게 소통되는 자리도 드물다. 조직의 문제점은 물론 개인의 애환까지 파악할 수 있으니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끈끈한 인간관계의 형성은 조직의 활력과 생기로 이어진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잃어버리면 독선에 빠져 고립되기 쉽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조직은 동맥경화에 걸려 업무추진이 경색되기 마련이다. 대화의 채널을 열어놓고 직원들이 두려움 없이 얘기하게 하라. 진솔한 의견교환 속에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지혜가 샘솟는다. 리더들의 귀는 당나귀처럼 늘 크게 열려 있어야 한다.

    - CEO Report 11월 (2003)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ky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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