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94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 |
시장과 노마지지(老馬之智)

    어느 방송 관계자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자연히 프로그램에 미쳤다.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내 주변의 시청자들 반응을 전했다.

    TV 프로그램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 대다수가 장년 또는 노년층인데 불만의 내용은 한결 같다. '왜 그렇게 젊은것들이나 연예인들만 나와서 시시덕거리느냐' '뉴스시간에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것을 크게 취급하느냐' 등등이다. 유난히 까다로워 습관적으로 불평 불만을 입에 달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만약 그들이 대거 외면해 시청률이 크게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한 마디로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방송국의 배려가 아쉽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시장의 반응이 매우 차갑다는 것이었다.

    TV와 광고주들이 시청률에 목을 매고 안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년 및 노년층으로 인한 시청률 상승은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말로 하면 그들은 봐도 좋고 안 봐도 그만이라는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층, 주부들에 비해 구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장년 노년층을 광고주나 시장이 좋아할 턱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막강한 시장의 힘 앞에서 나이 든 이들이 얼마나 초라한가를 확인시켜주는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TV의 사명과 윤리, 시청자들의 요구, 학자를 비롯한 근엄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작용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장 힘이 센 시장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이 노년층이 TV 앞을 떠나도 시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게 싫으면 그들도 구매력을 늘려 소비를 많이 하라는 것이었다. 철저한 자본의 논리와 막강한 시장의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농담 진담 반으로 이어진 얘기는 더욱 기가 막혔다. 고령자들이 그렇게 불평 불만을 늘어놓아 보았자 자신들이 늙었다는 점만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공영방송인 NHK를 자신도 모르게 자주 보고 편하게 느끼면 늙었다는 증거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도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젊은층 위주의 시끄럽고 소란한 프로그램이 싫어져 자연히 광고가 없고 차분한 채널을 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쪽으로 간다는 얘기다. 우리도 KBS 1TV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그걸 보는 시간이 늘수록 늙은이로 보면 거의 틀림없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농담이지만 시장이 촉수를 날카롭게 쳐들고 그런 것까지 파악하면서 소비자들을 지배하는 엄연하고 냉혹한 현실이 섬뜩했다. 56세 이상의 직장인을 도둑으로 비난하는 ‘오륙도’, 45세면 정년을 맞아야 한다는 ‘사오정’에 이어 38세도 퇴출위협에 시달린다는 ‘삼팔선’까지 밀린 중.장년 이상을 시장은 더욱 가혹하고 냉정하게 몰아붙이는 것이다.

    일터에서 밀려나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오늘의 중년 이상은 대체로 한길만 보고 살아왔다. 가족의 부양과 자녀들의 교육 외에는 돌아볼 여지가 없는 막막하고 고단한 인생이었다. 벌이가 있을 때에는 그래도 좀 나았지만 직장을 떠난 뒤로는 어떻게 비벼볼 틈도 없다.

    사회적 약자가 된 그들의 영향력은 가정에서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대부분 소비는 처자식이 전담, 경제적 지위도 미미해진 그들은 ‘돈 안 들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착각한 TV한테까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탑골공원, 종묘공원,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부근에서 방황하는 고령자들의 초점 잃은 시선에서 그들의 배신감을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힘들고 고단해도 참고 살아왔던 그들을 사회와 가정은 물론 TV까지 비웃고 있는 것이다. 만약 TV가 시장의 눈치를 보는데 들이는 노력의 백 분의 일만이라도 그들을 배려하는데 돌린다면 길거리에서 그렇게 초라하게 방황하는 이들을 많이 줄일 것이다.

    고령층도 그렇게 무장해제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힘을 모으고 단결해 사회적 정치적 발언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판이 엉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거라는 제도가 있다. 그럴 때 단결된 모습과 목소리로 확실하게 자신들의 힘을 보여 주고 요구할 것은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러면 시장과 자본도 지금처럼 철저하게 그들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노년이라고 자기계발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범람하는 정보량 앞에서 대부분 허우적거리는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그 정보들을 계량하고 자기에 맞게 재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같은 세대의 힘을 집결하고 강력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뒷전에서 불평을 해 봐야 돌아오는 건 냉소뿐이다.

    또 지식에서는 젊은층에 밀리지만 그들이 갖고 있지 않는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걸 활용하는 길도 여러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그 활용방안에 중점을 둬야 하지만 자신들 스스로도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경험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지혜는 시대나 공간을 넘어서 작용하는 생존법칙이다. 제갈량이나 시저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들이 지닌 정보의 양과 질을 오늘에 비추어 보면 미미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이 당시에는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지금도 그들을 배우고 연구하는가. 다름 아닌 지혜 때문이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늙은 말을 풀어놓으니그의 경험과 지혜로 길을 안내하더라는 고사에서 비롯한 말이다. 그처럼 고령자들은 경험을 통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걸 활용하는 방안이 절대 필요하다. 그것은 고령자 자신들이 갈 길이고 젊은층과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요령이다. 그걸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사장해버리면 개개인은 물론 사회적,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 '시사평론. 12월호(2003.12)


-----
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ynhp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