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93 [칼럼니스트] 2003년 12월 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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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중요한가, 인권이 중요한가

학교생활기록부 정보가 담긴 CD를 제작·유포하는 행위는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졌다. 서울지법 민사합의부가 28일 고교 3학년생 3명이 국가와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낸 「네이스CD의 제작·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이들의 학생부 기록이 담긴 CD를 만들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법원의 이 같은 결정은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을 포함해 모든 고3 학생들의 신상정보가 담긴 CD를 만들어 전국 380개 대학에 제공해오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법원이 대학입시를 위한 행정편의가 인권에 우선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대학지원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의 정보를 모든 대학에 제공하는 것은 학생들의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권리, 사생활의 평온 및 형성의 자유, 정보관리통제권 등을 침해하는 위법행위이다. 교육부장관에게는 생활기록부 작성·관리 권한이 없으며, 전산자료를 받아 대학에 배포할 권한도 없다.”

위의 인용한 말은 법원의 결정문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결정문은 또“학생부 자료입력의 안정성은 반드시 CD의 제작·배포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CD가 유출됐을 때 발생할 피해를 감내해야 할 정도로 입시전형 업무의 편의성이나 능률성 등에 큰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배경을 밝히고 있다.

법원의 결정이 아니더라도 그 대학에 지원하지 않는 학생의 정보를 다른 대학에까지 주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무슨 권리로 다른 대학에 지원한 학생의 신상정보를 손에 쥘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다. 만약 수험생들의 정보가 해킹을 당하거나, 임의로 유출될 경우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지….

학생부에는 성적뿐만 아니라 출석 및 결석, 교사의견, 행동발달 등 온갖 민감한 정보가 다 들어 있어 만약 유출되거나 잘못 이용될 경우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교육부는 1997년부터 관련법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단지 「대입전형계획」이라는 지침 하나에 의거해 6년째 CD를 제작해 각 대학에 제공해왔다. 그전까지는 학교에서 학생부를 종이 출력물로 뽑아 학생에게 주면 학생은 자신이 지원하는 대학에 제출하는 방법을 썼다.

차제에 대학에서 이처럼 너무나 중요한 개인신상정보를 관리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럴만한 자격은 있는 사람인지 묻고 싶다. 전문가들은 "CD는 복제가 쉬운데다 암호도 지금의 크래킹기술이면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판부도 대학측의 관리잘못에 따른 CD의 유출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그렇게 되면 그 피해는 회복 불가능해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데도 교육부는 가처분신청을 낸 3명의 학생부만 빼고 모든 고3 학생의 학생부를 CD로 만들어 예정대로 다음달 16∼17일 대학들에 제공할 방침임을 재천명하고 있다. 이유는 대입일정에는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교육부의 주장을 좀 더 들어보자. " CD를 제작하지 않을 경우 대학들이 학생들의 방대한 기록을 문서로 하나하나 대조해야 하는 등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이문희 국제교육정보화국장의 말이다. 교육부는 CD의 제작·배포가 안 될 경우 대입전형이 내년 2월 안에 끝낼 수 없고 내년 5월까지 지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는 수작업을 하더라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며 교육부의 주장이 과대포장됐다고 반론을 펴고 있다.

대학입시야말로 수험생으로서는 개인과 국가의 장래를 좌우하는 중대사이다. 그런 만큼 대학입시의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수밖에 없다. 필자로서는 이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만약 대입일정에 심각한 정도의 차질이 생기지 않는 한 법원의 결정한 무시하고 있는 교육부의 처사는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교육부가 신청당사자인 3명만을 빼고 나머지 수험생들의 정보가 담긴 CD는 당초의 계획대로 시행하겠다는 것은 아전인수식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법원의 결정을 냉정하게 분석하면 신청당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수험생에게 해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의도적·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다른 수험생이 법원의 결정을 근거삼아 “CD에 내 정보도 담지 말라”고 요청해도 들어주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그 수험생이 추가로 가처분신청을 내면 그 건에 대한 법원 결정이 또 나야 따르겠다는 방침이다. 참으로 행정편의주의가 낳은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한가, 아니면 성적이 중요한가를 묻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문(愚問)이다. 어떻게 성적이 인권에 앞선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교육부는 인권보다 성적을 우위에 놓고 이해하기 힘든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학생들의 위임을 받아 가처분신청을 냈던 전교조가 발끈한 것은 물론이다. “이번 결정은 학생들의 정보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도 법원이 불법으로 판정한 CD의 제작·배포를 교육부가 강행한다면 교육관료 퇴진운동을 벌이고, 학생을 모아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내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번 결정을 내린 이영훈 주심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판사는 "개인정보를 NEIS를 통해 집적한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학생의 동의 없이 개인자료를 시디로 배포하는 것을 위법행위로 판단했다"고 말한다. NEIS 자체보다 배포에 위법성이 있다는 뜻이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당사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NEIS 자체는 허용될 여지가 많다고 본다. 그렇더라도 CD를 제작해 배포하는 경우는 관리권이 대학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입시업무가 끝난 뒤에도 4년 동안 대학에 무방비 상태로 보관되므로, CD에 담긴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판사의 판단은 참으로 훌륭하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들이 CD만 받겠다고 한데 대해서도 "법원에서 일단 위법하다는 결정을 내렸는데도 이를 고집한다면 대학이 위법행위를 강요하는 셈이 된다"며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학의 태도가 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개인정보보호가 급박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정보화사회에서 개인이나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인터넷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정보화사회가 아무리 네토피아로 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정보가 보호되지 않는다면 한갓 어리석은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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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http://columnist.org/netporter/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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