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90 [칼럼니스트] 2003년 11월 2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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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되는 한국게임고등학교

초등학교 6학년 남자어린이가 인터넷게임을 실컷 하고 싶다며 집에 있던 현금과 수표 1천9백여만원을 훔쳐 갖고 나갔다가 사흘만에 돌아왔다는 소식은 자못 충격적이다.

이 어린이는 TV뉴스에서 가출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버지가 하지 말라고 하시는 인터넷게임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임이 얼마나 하고 싶었기에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가늠이 안 된다.

이 사건(?)은 인터넷게임중독의 무서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이 어린이는 3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우선 집안의 돈을 훔쳤고, 다음으로는 가출했다. 마지막으로는 게임중독에 걸렸다는 점이다. 게임중독이 무서운 이유는 한번 게임에 중독되면 마약처럼 치료하기가 쉽지 않고 재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어린이는 가출하자마자 어릴 적에 살았던 부산으로 가 금정구의 한 PC방에서 사흘동안 인터넷게임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집에 가지도 않은 채 며칠씩이나 게임을 하는 어린이도 문제지만,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낯선 소년이 그러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PC방 주인은 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의학적으로도 게임중독은 정신질환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게임을 많이 했기에 부모들이 말리고, 어느 정도로 중독됐기에 게임을 하기 위해 돈을 훔쳐 가출을 한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인터넷게임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있음은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말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은 게임 중독에 걸렸다"는 내용의 특집기사를 실었을 정도이다.

NYT는 특집기사에서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미국을 능가하는 것은 분명 부러운 일이지만, 청소년들의 일탈 등 부작용도 크다"면서 남의 나라 일을 걱정하는 내용을 실었다. 한국 인터넷세상의 현주소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알려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게임을 하는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까 일류 프로게이머들은 유명 프로야구나 축구선수 못지 않게 10대 청소년의 우상이 되고 있다. 장래희망이 프로게이머인 청소년도 적지 않다. 그들은 현재 게임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게이머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시장은 연 1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컴퓨터게임을 전문적으로 중계하는 TV방송국 있을 정도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다른 친구들이 음악이나 코미디프로를 좋아하는 것과 달리 컴퓨터게임을 중계하는 TV채널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 등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 가운데 80%가 인터넷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10.6%가 심각한 게임중독 증세를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학생은 더 심하다. 지난 3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자제력을 잃고 인터넷을 장시간 이용하는 「사이버중독 증세」를 보이는 중학생이 전체의 27.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거의 10명중에 3명 꼴이다. 중학교 교실에서는 게임 때문에 밤을 샌 학생들이 공부시간인데도 책상에 엎드려 잠자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의 사이버중독, 그 중에서도 게임중독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정부당국과 교육계에서는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게임열풍이 워낙 거세어서 그렇다고 여겨진다.

언론에서도 자주 청소년들의 사이버중독현상을 놓고 특집기사를 싣거나 기획물을 방송하고 있지만 게임의 불길을 잡는데는 역부족이다. 그저 당국과 매스콤, 가정이 합심하여 애를 쓰면 언젠가는 성과를 거두지 않겠나 기대를 걸고 있을 뿐이다.

가정에서의 처방도 가지가지이다. 어떤 부모는 아들의 게임중독을 고치기 위해 억지로 군에 입대시키는가 하면, 아예 평수가 좁은 집으로 옮겨 컴퓨터를 거실에 놓음으로써 자식의 중독증세를 고친 부모도 있다.

게임중독이 무서운 또 다른 이유는 게임을 하기 위해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은 부모 몰래 돈을 훔치거나 집전화를 통해 비싼 게임요금을 예사로 결제하고 있다. 이런 자식들 때문에 엄청난 요금이 부과된 요금고지서를 받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태국에서는 한국산 온라인게임에 중독된 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청소년들이 밤새워 컴퓨터에만 매달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오후 10시 이후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온라인게임업체의 서버를 아예 막아버리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한국이 게임의 왕국임을 말해주는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현재 게임과 관련된 학과를 개설한 대학만도 전국에서 40여개에 이르고 있다. 더군다나 내년에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서 「한국게임고등학교」가 문을 열게 된다. 고교과정으로는 이 학교가 처음이다.

특성화 학교인 이 학교를 졸업하면 일반 고등학교를 다닌 것과 다름없는 졸업장을 받는다. 신입생은 내년 2월에 50명을 선발하며, 이후엔 매년 1백명씩 뽑을 계획이다. 내년 3월 시작되는 수업은 한반 수강 인원을 5명 안팎으로 편성해 개인지도식으로 진행된다.

이 학교를 설립한 사람은 한세대 컴퓨공학과의 정광호교수(47·컴퓨터공학과)와 컴퓨터학원을 운영하는 이명숙(45)씨 부부이다. 게임 분야에 뛰어난 자질을 지닌 학생을 선발하여 디자인, 프로그래밍, 그래픽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해 게임기획자나 설계·제작자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 정교수의 설명이다.

 "청소년들의 창의성을 맘대로 펼치게 할 수 있는 영재사관학교를 만드는 것보다 보람있고 값진 일이다." 이 말은 부인 이씨가 "힘들어 학교설립을 포기하고 싶다"고 푸념하는 남편인 정교수에게 한 말이다. 내년에 문을 여는 한국게임고등학교가 인터넷게임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게임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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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http://columnist.org/netporter/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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