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86 [칼럼니스트] 2003년 11월 1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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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바둑이 탄생시킨 여류국수

철옹성을 지키던 철녀 루이나이웨이(芮乃偉)가 마침내 무너졌다는 소식이다. 올해 18세인 조혜연 4단이 여류바둑 사상 처음으로 루이나이웨이를 꺾고 정상을 밟았다는 신문기사는 눈을 번쩍 띄게 할만큼 빅뉴스라고 할 수 있다.

루이나이웨이가 누구인가. 3년전 제43기 국수전에서 바둑황제 조훈현9단을 꺾고 국수자리를 차지해 한국바둑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장본인이 아닌가. 이 일은 당시 조훈현을 사랑하고 바둑을 좋아하는 팬들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사건」이었던 것으로 뇌리에 박혀 있다.

그렇게 되자 바둑계에서는 루이나이웨이를 넘어설 여류기사는 당분간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여자보다는 강하다는 남자들을 여지없이 격파해버리는 그녀에게 철녀(鐵女)라는 별명이 붙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조훈현9단은 다행히 다음해 국수자리를 되찾아 오면서 1년 전의 망신(?)을 앙갚음했지만, 여류바둑계에서 루이나이웨이의 위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그 동안 박지은과 조혜연과 같은 신예 여류기사들이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그때마다 패퇴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루이나이웨이를 제압하는 것은 여류바둑계, 나아가서는 한국바둑계의 숙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를 넘어서야만 한국의 여류바둑이 당당히 세계에서 군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조혜연 4단이 꿈같은 승리를 거둔 대회는 GEO배 여류국수전이었다. 지난 3일 결승 1국에서 겨우 반집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던 그녀가 11일 경주에서 열린 결승 2국에서는 한집반 승을 거둬 종합전적 2대0을 기록, 대망의 여류국수로 등극한 것이다.

조혜연은 2년 연속 이 대회 결승에서 루이9단과 맞붙어 아쉽게 패한 바 있다. 그때마다 어린 소녀로서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녀는 이번 우승으로 한국 여류기사 중 최초로 결승전에서 루이9단을 꺾은 기사로 기록됨과 동시에 생애 첫 타이틀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1천만 바둑팬의 기쁨도 더 할 나위 없이 컸으리라고 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의 소망을 18세 소녀 조혜연이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결승 1·2국을 합쳐 단 2집으로 꿈을 실현시켰으니 본인의 기쁨은 더욱 컸을 것이다.

1985년생인 그녀는 12세 때인 1997년 프로에 입문한 천재이다. 이는 조훈현(9세), 이창호(11세)에 이어 역대 세번째 최연소 입단이니 그녀를 천재라고 하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조혜연의 오늘이 있기까지를 살펴보면 다른 기사와는 남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그녀는 인터넷으로 바둑실력을 연마한 프로기사라는 점이다. 어린 시절 「꿈꾸는 초보」라는 ID로 인터넷에서 바둑을 배웠고, 얼마가지 않아 인터넷바둑계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다.

바둑이 강해지려면 특정학교나 바둑도장에 다니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조혜연은 집이 수원인 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느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이 그녀의 바둑실력을 기르는 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조혜연을 단련(?)시킨 사람들은 임동균·노근수씨 등 아마 강자들이었고, 그들과 무수히 바둑을 두면서 기력을 쌓았다. 「꿈꾸는 초보」라는 그녀의 ID가 한때 인터넷바둑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김원(6단)도장을 거쳐 프로가 돼서도 인터넷은 조혜연의 공부방이었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인터넷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조혜연은 그런 점에서 인터넷이 배출한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태어난 최초의 타이틀보유자라는 말이 더 옳을는지 모른다.

사이버공간에 바둑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 PC통신에서부터이다. 천리안과 하이텔은 회원확보를 위해 바둑코너를 신설, 회원끼리 대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중요대회는 실시간에 중계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몇년 뒤 인터넷의 사용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이버 바둑무대는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이때부터 바둑사이트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현재 문을 열어놓은 사이트만도 수십개가 될 정도이다.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등 최고의 프로기사들도 앞을 다투어 자신의 홈페이지를 개설해 바둑팬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필자는 바둑을 잘 두지 못한다. 한참 나이가 들어서 배웠는데 나름대로는 죽어라고(?) 공부를 하는데 기력이 7∼8급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정석이나 포석, 행마, 사활문제 등 금방 배우고 외운 것도 돌아서면 까먹어버린다.

몇 군데 바둑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해 틈만 나면 강좌를 듣고 보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별다른 진척이 없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실력이 없는 데다 배운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대국코너에 들어가 다른 네티즌과 바둑을 둔다는 것은 왠지 두려워진다.

지금까지 인터넷바둑을 둔 것은 10차례도 안 된다. 승률은 50% 이하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력도 모자라지만 상대방이 워낙 빨리 두는 바람에 50대 나이의 필자로서는 페이스를 맞추기가 어렵다. 우리 나이에 바둑을 두려면 아무래도 장고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얼마나 답답해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빨리 두고 만다.

늦게 배운 바둑에다 경험도 일천한 사람이 다음 수를 오래 생각하지 않고 두어버리면 결과는 뻔해진다. 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필자는 요즘에 와서 바둑을 늦게 배운 것은 무척이나 후회한다. 늙어서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둑뿐이라는데 나이들어 배웠으니 친구들 사이에서는 늘 하수로 불린다.

필자가 바둑을 늦게 배운 것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는 다음 얘기를 들어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필자의 아들이 지난 8월 중순 군에서 제대를 했는데, 물론 바둑을 둘 줄 모른다. 필자는 9월초에 아들의 손목을 잡고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바둑교실에 등록시켰다. "남자는 반드시 바둑을 배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면서….

조혜연의 여류국수 타이틀 획득 소식을 듣고 또다른 기쁨을 갖는 것은 철녀 루이나이웨이를 꺾었다는 사실 이외에, 그녀가 인터넷바둑을 통해 그와 같은 실력을 쌓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제부터라 겁(?)을 먹지 말고 인터넷에서 상수들과 맞붙어 기력을 갈고 닦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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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http://columnist.org/netporter/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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