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85 칼럼니스트 2003년 11월 1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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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이 달려와 노인이 되었으나

    허약해지고 병치레가 많게 마련인 노인은 누군가가 보살펴야 한다. 그 일을 정부와 사회가 떠맡아 잘 하고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가정이 맡아 왔다. 우리는 늙은 어버이를 자식이 봉양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 왔고, 한때 이것은 이른바 선진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바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 노인이 부럽다.” “한국 가족제도가 훌륭하다.” 이런 찬사가 들리지 않은지 오래다. 부모 봉양을 의무로 여기지 않는 자식들이 늘어나고, 대부분의 부모도 돈이 있으면 노후를 자식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말한다. 가정은 책임을 벗으려 하고 정부와 사회는 넘겨받을 채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오늘날 노인 문제의 핵심이다.

    사람들의 수명은 길어졌다. 태어나는 아기의 비율은 낮아진다. 노인들이 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날로 늘 수밖에 없다. 고령화 사회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기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으뜸이다. 전에는 북유럽 나라들 사회의 빠른 고령화가 본보기처럼 이야기 되어왔다. 그러나 그 나라들에서 한 세기쯤에 걸쳐 이루어진 변화를 우리 사회는 불과 10여년 사이에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국가가 단기 및 중ㆍ단기 계획을 세워 대처해야 할 텐데 그리 뚜렷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의 노인들은 대부분 배곯음과 추위, 전염병의 위협, 전쟁의 공포를 겪었으며, 밤낮없이 일해 경제 고속성장을 이루어낸 주역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와 어느새 노인이 되었으나, 옛날의 노인이 받던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현실에 당황하게 된다. 자식을 위해 교육비를 아끼지 않고 지출하다 보니 모은 돈도 없다. 성장한 자식은 학업을 마치고 돈벌이를 시작했지만 제 처자 건사하기에도 빠듯하니 부모가 짐이 될 뿐이다. 자식이 여유가 있다 해도, 모시겠다는 갸륵한 효심을 부모가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가고 있다.

    노인의 지위는 가정에서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날이 갈수록 낮아져 간다. 고령자의 경험과 지혜는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몇 년 전 20세기가 끝난다 하여 한 인터넷 사이트가 지난 2,000년간에 나온 중요한 발명품을 뽑아 보았다. 선정 위원은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적 석학 100명이었는데, 이들이 뽑은 것 가운데 돋보기가 있었다. 선정 이유는 “시력이 좋은 연령층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연령이 많은 층이 경험 적은 젊은 층의 경솔과 독단을 막아 인류 역사에 공헌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돋보기 연령층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나. 직장에서 나이가 많아지면 자리가 불안해진다. 나이 들었다고 몰아낼까봐 돋보기 쓴다는 것조차 말하지 말아야 한다.

    늙는다는 것이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즐거울 일이 아니었겠지만, 노인이 요즘처럼 서러운 때도 없을 것이다. 국가가 돌보지 않고, 가족이 보살펴 주지 않고, 사회가 냉대하니 벼랑에 서 있는 것과 같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사는 노인이 100명에 16명 꼴이다(2000년 통계). 1990년에 9명 꼴이던 데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혼당하는 노인도 많아, 2002년 65세 이상 노인 2,345명이 이혼했다. 황혼 이혼이 하루빨리 재산을 상속하고 싶어하는 자식들의 종용으로 이루어지는 수가 많다고 하니, 세상은 메마름을 넘어 살벌해지고 있는 듯하다. 자살하는 노인도 많다. 2002년 하루 7.5명꼴로 65세 이상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노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보니, 교통사고 등 사고사도 딴 나라보다 월등하게 높다. 교통 사고만 해도 사망자 비율이 영국의 여덟배, 일본의 세배나 된다.

    “노부모를 누가 모셔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가족’이라고 답한 사람이 2002년에 70.7%였다. 그 4년 전인 1998년의 89.9%보다 19.2%포인트나 줄었다. 급격한 감소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이 노부모를 가족이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은 다행이라 할 수 있으나, 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해서 한 응답도 많을 것이다. 다시 몇 년이 지나면 노부모를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특히 치매 노인 문제는 심각하다. 치매 노인으로 인한 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정이 전적으로 떠안기에는 벅차며, 자식이 효심만으로 감당하기가 너무 고통스럽다. 자신이 장차 치매 상태가 될까봐 걱정하는 연로자들도 많다. 60세의 조 아무개씨는 미리 쓴 유언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넣기까지 했다.

    “의학적으로 완전치료나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내려졌을 경우엔, 절대로 내 생명을 기계에 의존하여 연장시키지 말라. 오직 자연사를 원할 뿐,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다오! 만에 하나라도, 내 병이 금방 죽음에 이르지는 아니하되 주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줄 염려가 있거나, 가족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치매, 기타 등등)에 이르러 의술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판정이 내려졌을 경우엔, 지체 없이 일정한 격리수용시설에 의탁하라.”

    나중에 가족이 격리시설에 맡기려 해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이 유언장을 쓴 이는 이를 위한 비용을 준비해 놓았다. 이런 정도 대비라도 돼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의탁할 만한 시설은 절대적으로 모자라다.

    노인들이 양로원보다는 가정에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는 하나, 그렇지 못한 형편에서는 노후를 양로원에서 보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의탁할 곳이 없어 목숨을 끊거나, 돌아보는 이 없어 죽은 지 며칠 후에나 발견되는 것은 비극이다. 쇠잔한 노인이 남은 삶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는 시설들이 필요하다.

    노인 대책은 이제 코앞에 닥친 문제다. 국가 정책으로 다방면의 노인 복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다른 여러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방안들을 검토하고 도입해야 한다. 그 하나는 노인 취업 문제다. 일하고 싶어하는 노인에게는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홍콩에서 골프 캐디는 노인들만 할 수 있게 하고 있듯이, 노인이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 주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현재는 청년 실업조차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판이기는 하지만, 노인 취업 문제를 등한히 할 수 없다. 노인이 생활비를 벌면, 그 만큼 국가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노인을 채용하는 사업장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나라들도 있다. 노인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것이 아직은 먼 일로 여겨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노인 아닌 노인’이 양산되는 조기 퇴출 풍조도 바로잡혀야 한다. 오십만 넘어도 직장에서 퇴출 대상자로 몰리는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오십에 밀려나면 20~30년의 은퇴생활을 강요받는 셈이다. 가용한 생산인력을 방기하는 것이어서 국가적 손실이 크다. 피크 임금제, 재교육 기회 마련 등이 그 대책일 수 있다.

    홀로 음식 마련하기가 어려운 노인에게 시청에서 날마다 집으로 음식을 배달하기까지 하는 나라를 언제까지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런 정도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사람은 늙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누구나 노년기를 맞는다.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는 것은 누구나가 누려야 한다. 외롭고 괴로운 노년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 없거나 적어야 선진국이다.

    노인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이제 각국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도 노인 정책은 수립되어야 한다. 55세, 60세 또는 65세로 돼 있는 정년도 더 뒤로 미루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나, 정년 연장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나이 많고 무능한 사람이 정년을 방패로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고 있으면 사회 발전이 정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지닌 전문 능력을 나이만을 기준으로 하여 더 발휘하지 못하도록 막으면 국가 손해다.

    모두들 대책 없이 노후를 맞을까 두려워한다. 부동산 투자 과열도 노후 준비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로는 집이나 땅을 사서 값 올랐을 때 파는 것이 가장 확실한 노후 생활비 확보책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뇌물을 챙기는 것도 불안한 노후 때문일 수 있다. 자식에게도 기대할 수 없고, 가까운 장래에 국가가 해결해 줄 수 없다면, 개인이 각자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무리한다. 그럴 수도 없는 사람은 불평 속에서 절망할 뿐이다. 국가의 노인 대책은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긴요하다.

    - 디지털포스트 11월호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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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http://columnist.org/par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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