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84 [칼럼니스트] 2003년 11월 1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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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처지가 되어보자

    몇년 전 어느 날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한 시각장애인이 상당히 다급한 목소리로 방화행이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특정인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좋으니 안내를 좀 해달라는 뜻이었다.

    마침 방화행 열차가 곧 출발할 태세라 그의 팔을 약간 잡아 당기며 이쪽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돼 차안으로 밀어넣으려고 했더니 강하게 반발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무슨 흑심을 품고 이러느냐는 투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승차했다.

    남의 호의를 그렇게 오해한 야속함에 꽤 당황했지만 그의 처지를 이해못할 것도 없었다. 눈 뜨고도 별일을 다 당하는 세상에 그가 겪은 험악한 일들이 오죽 많을 것인가. 그 때문에 순간적으로 표출된 방어본능이리라. 그래도 그 섭섭함이 한동안 말끔히 가시지 않았다.

    지난 여름 또 지하철 3호선에서 다른 시각장애인과 만났다. 자정이 넘어 승객도 드문 시간 차에서 내려 출구를 찾는 그와 방향이 비슷해 같이 가게 되었고 그의 집 부근 포장마차에서 소주까지 한잔했다.

    그러나 사려깊지 못한 나 때문에 술자리가 번거로워졌다. 삶은 조개를 안주로 주문한 것이 문제였다. 물론 그가 동의했지만 좀 더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먹기 편한 다른 안주를 택해야 했었다. 젓가락으로 집기가 쉽지 않았고 초장 찍는 것 또한 간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번번이 옷에 흘려 내가 닦아 주어야 했다. 그래도 우리는 웃으면서 즐겁게 마셨지만 나의 미련스러움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에 광화문역에서 만났던 시각장애인 얘기를 했더니 같은 처지에서 봐도 그 사람이 좀 심했지만 그래도 내가 더 많이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자기와 이렇게 잠간만 있어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불균형 관계였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나는 그의 외형을 모두 보는 반면 그는 내 목소리로만 나를 보아야 하니 답답하고 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잔하는 자리가 자칫하면 값싼 동정으로 여겨질지 몰라 신경을 써야하는 것 또한 보통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는 많은 말을 주고 받았지만 그런 불균형과 차이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는 불가피한 장애가 적잖았다. 그리고 남의 입장에서 상대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동의했다.

    그렇지만 깊은 애정을 가지고 노력하면 무너지지 않을 장애는 결코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녀를 비롯한 주변의 친구들과 자기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예로 들었다. 그렇다. 그의 말대로 인간 사이를 막는 절대 장벽은 없다.

    그러나 신체적 장애가 없는 이들 사이에도 숨막히는 장벽이 너무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너나없이 인색하기 때문이다.

    2003년은 심각한 정치 불안정, 좌우 대립으로 인한 극도의 사회적 혼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 등으로 팍팍하고 고단하기 그지 없는 해였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의 절망적 상황을 탈출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남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또한 유력한 비상구임에 틀림 없다. 물론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되면 새해를 향한 우리들의 발걸음은 상당히 가벼워질 것이다.

    - '비비안' 사보 11/12월호(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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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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