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83 [칼럼니스트] 2003년 11월 1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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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파라치」들이 활개치는 세상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너의 이름을 들으면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 같은 질문에는 여러가지 답변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인 찰스왕세자, 아들인 윌러엄왕자,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여왕, 아니면 세자비이면서도 남편처럼 바람을 피웠던 여성 등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생각에는 「파파라치(Paparazzi)」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녀를 생전에 못 살게 굴었던 파파라치들. "못 살게 굴었다"는 말은 결코 비유어가 아니라 사실이다. 결국은 그들이 다이애너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파파라치들의 집요한 추격을 피하려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이다. 최근에 와서는 이 교통사고가 의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파파라치 때문에 그녀가 목숨을 잃은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파파라치는 「유명인의 프라이버시에 근접해서 특종 사진을 노리는 직업적 사진사」를 말한다. 파파라치의 단수는 파파라초(Paparazzo) 이다. 그 이름은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1970년대에 만든「달콤한 생활」에 등장한 신문사의 카메라맨에서 유래한다. 이탈리아어로는 파리처럼 웽웽거리며 달려드는 벌레를 의미하고 있다.

이때부터 유럽에서는 예능인·부호·정치인 등 유명인들의 스캔들이나 프라이버시를 드러내는 사진을 노리는 질이 나쁜 사진사를 지칭하게 되었다. 1997년 8월 31일 애인과 함께 차에 탄 다이애나비가 파리 센강변 자동차도로 중간의 터널에서 오토바이 등으로 뒤쫓아오는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가 자동차 충돌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 큰 충격을 던졌다. 그 이전에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오나시스 등 많은 유명인들이 밀회장면·나체사진 등으로 피해를 보았다.

다이애너비가 숨진 그 해에는에는 프랑스의 알랑 베르베리앙이 만든 스릴러물 「Paparazzi」라는 영화가 만들어져 1988년에 개봉되기도 했다. 빠뜨릭 땡지, 뱅상 랭동, 까뜨린느 프로, 이자벨 제리나스, 이자벨 아자니 등이 출연했는데 이 영화가 제작된 것은 파파라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의 매우 높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파파라치의 역할(?)이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필요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라는 것임을 알게 되자 우리나라에는 파파라치보다는 이른바 Car와 Paparazzi를 합성한 「카파라치(Carparazzi)」라는 이름의 사진사들이 등장했다.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장면을 찍어 경찰에 제출하면 건당 2천원씩의 신고포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제도는 2001년 3월부터 시행되다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지자 올해부터 폐지됐지만 한때는 카파라치의 수가 전국에서 수천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솜씨가 좋은(?) 카파라치는 한달 소득이 3백만∼4백만원은 좋이 됐으며, 1천만원이 넘는 사람도 있었다.

신고포상금제 시행으로 시민의 교통위반이 감소하기도 하였고, 불합리한 교통안전 시설을 개선하는 등의 효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보상금만을 노린 전문 신고꾼이 양산되고, 국민 상호간에 불신감이 조성되는 등 부작용도 많아 2003년 1월부터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할 일이 없어지자 변신을 하게 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모습을 촬영하는 쓰파라치, 약사들의 임의조제 등 불법행위를 몰래 촬영, 신고하는 팜파라치, 대형할인점이 약속한 「최저가격 10배 보상제」등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 이를 신고해서 보상금을 타먹는 값파라치 등이 그렇다.

이뿐만 아니다. 자동판매기의 불법이나 불량을 신고하는 자파라치. 전국의 슈퍼 및 대형매장에서 불량식품이나 유통기간이 지난 식품을 적발하는 슈파라치, 미성년자에 담배 파는것을 신고하는 담파라치들이 있다.

지난 4일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술을 판 식당이나 술집을 관할 시군구청 위생과나 각 지방 식약청에 신고하면, 포상금 2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혀 업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주(酒)파라치나 식파라치가 틀림없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입수능이 5일 끝나게 됨에 따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고3 학생들이 크게 늘어날 것은 뻔한 일이어서 주파라치들이 기승을 부릴 것 같다. 이에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스낵식당이나 노래방을 운영하는 업주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고자질을 하는 것을 매우 치사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신고정신이 없다고들 말한다. 남이 법규를 위반하는 것을 보아도 그저 지나쳐버린다. 선진국에서는 옆집에서 싸우는 소리만 나도 경찰에 신고하는데 우리는 대부분 그냥 참거나 불평만 할 뿐이다.

그런데 「포상금」이라는 사탕을 준다니까 온갖 신고꾼이 나타나고 있다. 돈을 주면 신고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몰라라 하는 것이 우리네 사고방식이다. 포상금과 관계없이 잘못된 일은 언제 어디서라도 즉각 신고해서 바로잡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다.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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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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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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