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79 칼럼니스트 2003년 11월 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 |

<김동호가 만난 영화제 사람들(8)>
NETPAC(아시아영화진흥기구)을 이끄는 사람들

    1990년 8월 27일부터 8월 30일 까지 4일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실험영화와 비상업영화의 진흥과 배급을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의 창설”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유네스코와 인도에서 발행하는 영화전문 영자계간지 시네마야(Cinemaya)가 공동 주최했던 이 회의에 초청된 나는 당시 영어도 잘 못했음에도(지금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지만) 만용을 부려 혼자 참석했었다.그러나 그 만용이 많은 아시아 영화인들을 만나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유네스코 및 인도영화계의 관계자들과 20개국 25명의 대표가 참가한 비교적 작은 규모의 국제회의였지만 일본,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이란, 한국 등의 영화진흥기구 대표와 싱가포르, 하와이 등 영화제집행위원장, 평론가와 제작자들이 참여해서 아시아영화의 진흥을 위한 네트워크 형성에 합의한 것은 매우 큰 성과였다. 이 회의가 바로 넷팩(NETPAC, Network for Promotion of Asian Cinema), 즉 아시아영화진흥기구의 창립총회가 된 셈이다.

    이날에 모였던 창립멤버들은 다음해인 1991년 10월 일본에서 열린 제2회 야마카타 다큐멘터리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진흥을 위한 비공개 회의를 갖고 NETPAC을 정식으로 출범시키는 동시에 아루나 바슈뎊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여하튼 뉴델리회의에 참석한 나는 평소 알고 지냈던 대학선배인 김태지 인도 주재 한국대사께 부탁해서 대표단 전원을 대사관저로 만찬에 초대함으로서 한국의 전통음식을 접하게 된 참석자들로부터 인기를 독점할 수 있었다.

    예정에 없던 ‘한국대사관저 초청 만찬’으로 주최자인 시네마야의 발행인 겸 편집장인 아루나 바슈뎊(Aruna Vasudev)여사와는 각별하게 친한 사이가 되었다.1937년 생, 나와 동갑인 아루나 바슈데프는 인도사회의 마당발이며 인도영화계의 대모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장관급의 고위관료로 있었기 때문에 정, 관계인사들과 가까웠고 개막식에도 총리와 외무장관, 공보장관 등 주요 인사들을 참석시키는 영향력을 보여 주었고 회의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1988년부터 영화진흥공사의 운영책임을 맡고 있었던 나는 업무상 아루나 바슈뎊과 자주 서신을 교환했었고 한국에도 몇 번 방문하기도 했다.부산국제영화제가 창설된 이후에는 매년 부산을 방문했고 해외 영화제에서도 자주 만난다.

    그녀와 임권택 감독, 그리고 나와 관련한 에피소드 한 토막.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난 직후 아루나 바슈뎊은 인도를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임권택 감독을 1997년 1월에 열리는 인도국제영화제에 꼭 참석하도록 교섭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그러나 임 감독은 내가 동행한다면 몰라도 안가겠다고 고사했다.

    이를 전해들은 그녀는 예산상 나에게는 비행기표를 제공하기 어렵지만 인도에 오면 숙식은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고 영화제측의 공문을 보내면서 꼭 함께 와 줄 것을 간청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자비로 인도에 가기로 하고 임 감독과 여정에 올랐다.

    인도영화제는 한해 뉴델리에서 개최하면 다음해는 지방도시에서, 또 다음해는 다시 뉴델리로 돌아오는 순회방식을 취하고 있다.그해에는 인도의 최남단 도시, 3대양이 마주치는 ‘트리반드롬’이라는 곳에서 개최되었다.

    그런데 첫 기착지인 뭄바이(종전의 봄베이)에서부터 인도의 경직된 관료주의와 충돌했다.영접 나온 인도 관리는 임 감독만 영빈관에 모시고 나는 별도요금을 부담하겠으니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해도 막무가내로 임 감독만 꼭 모셔야 한다고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임 감독은 그곳에서 자고 나는 별도의 숙소를 구하겠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말이 안 통하는 데 절대로 혼자는 못 가겠다고 펄쩍 뛴다. 30여분간의 실랑이 끝에 우린 결국 시내로 들어와 다른 숙소를 구했다.

    그는 그곳까지 따라와서 확인한 후에야 돌아갔다.트리반드롬에 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토요일에 도착해서 한 차례 숙소를 전전한 다음 임 감독이 묵을 호텔에 도착해서 로비에 마련된 영화제데스크를 찾았으나 임 감독의 방만 예약되어 있어서 나는 호텔을 제공할 수 없다고 사정없이 자른다.

    호텔에서는 선불조건으로 방을 줄 수 있다는데도 오히려 영화제 측에서는 완강히 거부한다.여기서도 1시간 이상 다투다가 호텔 측이 중재해서 체제기간의 숙박료를 전부 지불한 후에야 방을 얻을 수 있었다.

    주말을 넘긴 후 서울에서 공문사본을 팩스로 받고 영화제에 항의했더니 공식 사과와 함께 선불했던 호텔비를 되돌려 주었다. 2-3일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루나 바슈뎊과 집행위원장은 어쩔 줄 몰라했고 넷팩 멤버들과 함께 내 방에서 ‘룸 파티’로 불쾌했던 기분을 풀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영화제를 운영하기 시작한 나에게는 귀중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다.아루나 바슈뎊은 1999년에 시네 판(Cinefan)이라는 작은 영화제를 창설해서 운영하고 있다.

    4년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넷팩총회에서 아루나 바슈뎊은 회장으로 연임되었고 나는 새로 신설한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개최된 총회에서는 넷팩의 본부를 싱가포르에서 부산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래저래 아루나 바슈뎊과는 가까울 수 밖에 없는 사이가 되었다.싱가포르 국제영화제의 창설 멤버이며 집행위원장으로 활약 중인 필립 치어(Philip Cheah)는 넷팩의 공동 창안자인 동시에 이사회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아루나 바슈뎊과 함께 넷팩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장본인이다. 16년간 싱가포르국제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그는 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혼자 전 세계를 누비고 돌아다닌다.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영화평론가이며 광적인 인형수집가인 필립 치어는 형과 함께 음반회사도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1인 3역을 하는 46세의 청년이다.

    1988년 영화진흥공사에 부임하면서부터 만나기 시작한 필립 치어는 매년 서울을 찾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창설된 이후에도 매년 부산을 찾는 단골 손님이 되었다.술을 못해 재미는 없지만...

    하와이국제영화제를 창설하여 15년간 집행위원장을 맡아왔고 또 미국의 팜 스프링영화제를 창설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남가주대학(USC)의 미디어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넽 펄슨(Jeannette Paulson) 또한 넷팩의 핵심 멤버다.그녀는 뉴델리회의와 야마카타회의에 모두 참가한 비 아시아권의 주류회원이다.

    특히 1990년 뉴델리회의에서 친해진 이후 계속 서신 교환이 있었고, 부산국제영화제에는 1회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환상적인 결혼식에 자비로 다녀온 적이 있다.

    지넽 펄슨은 1998년 여름 하와이대학에서 만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파푸아 뉴기니 태생의 연하인 빌리 헬레니코(,Vili Heleniko)와 재혼했다. 아침 6시, 와이키키근교에 위치한 지넽 펄슨의 집앞 해변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배경으로 영국에서 건너 온 신부의 주례로 나를 포함 50여명의 가족과 친지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른바 sun rising wedding ceremony. 각자 집에서 들고 간 의자를 다시 들고 좁은 집안으로 자리를 옮겨 간단한 음료와 빵으로 아침을 겸한 축하연을 가진 후 우리들은 해산했다.

    저녁 9시, 이번에는 와이키키 해변에 무대를 마련하고 남편이 연출을 맡고 아내가 제작한 공연, 이 일몰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파푸아 뉴기니와 하와이 원주민의 춤과 드럼으로 구성된 sun set wedding performance 에는 하와이 주지사를 포함한 약 200여명의 인사들이 초청되었고 이 공연이 끝난 후 에는 인근 호텔에서 밤새도록 댄스 파티가 이어졌다.

    다음날 나는 바로 서울로 돌아왔지만 지넽 펄슨의 결혼식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낭만적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결혼식에 참석해 준 나를 잊지 못하고 있다.지넽 펄슨과의 각별한 우정으로 나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난 직후인 1996년 11월에는 화와이국제영화제의 귀빈으로, 다음해에는 심사위원으로,그리고 2000년에는 팜 스프링영화제의 귀빈으로 참석할 수 있었고 금년 9월에는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가 주최한 한국영화에 관한 회의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에 미친 영향”이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넷팩을 이끄는 아루나 바슈뎊, 필립 치아, 지넽 펄슨-이 세 사람과의 우정은 10년 지기이상의 끈끈함이 있다.

    - '프리미어'11월호(2003.11)

-----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http://columnist.org/getiger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