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78 [칼럼니스트] 2003년 11월 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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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녀' 열풍은 남성의 폭력이다
    - 유머에 가려진, 또 다른 이름의 성희롱

필자는 하루에 한번 정도는 디씨인사이드 (dcinside.com, 이하 디씨)의 유저 갤러리를 방문한다. 그 중에서도 디지털카메라(디카)로 찍은 재미 있는 사진들과 합성 사진들이 모여 있는 엽기 갤러리를 즐겨 본다. 중독처럼 매일 이곳을 찾는 이유는 기상천외한 유머와 풍자를 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최근 웹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인 ‘딸녀’ 열풍이 시작된 곳도 바로 이곳(여친 갤러리)이다. 이 글은 디씨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디씨 갤러리의 잘못된 문화를 비판함이 목적이다.

딸기를 들고 야릇한 표정을 짓는 여성의 사진이 갤러리에 올라 오면서 이 이름 모를 여성에겐 ‘딸녀’ 라는 별명이 부여됐고 순식간에 수만 명의 팬을 거느린 네티즌 인기 스타가 돼 버렸다. 지금까지 몇 달 동안 수많은 디씨폐인(디씨 마니아)들이 딸녀를 이용한 합성 사진을 만들었고 열광하고 있다.

최근까지 딸녀를 다룬 매체들은 한결 같이, ‘딸녀가 누구인가’, ‘한국인인가 아닌가’, ‘합성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딸녀 나와라’ 같은 제목으로, 웹은 물론 방송 매체까지 덩달아 호들갑을 떨었고, ‘딸녀’ 라는 어감이 부담스러웠는지 ‘딸기소녀’로 대체돼 사용되곤 했다.

일본 포르노 배우 ‘스즈키 리에’ 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대만 배우 ‘비비안 수’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아직 증명되진 않았다. ‘딸녀 찾기 범 국민 운동 본부’인 팬카페에는 사진을 확대한 결과 왼쪽 귀부분이 잘려 나간 것을 밝혀 냈고, ‘합성’ 임을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를 정점으로 하여 딸녀 열기가 다소 가라 앉고 있긴 하지만 딸녀에 대한 호기심은 쉽사리 없어지진 않을 것 같다.

‘딸녀’ 만이 아니다, ‘광녀’ , ‘핥녀’ 와 같은 익명의 여성들도 합성의 단골 메뉴이다. 물론 합성의 대상이 되는 남성들도 많다. 장승업(최민식 분), 앙드레 김, 응삼이 등등 그리고 디씨폐인들이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문희준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공인의 신분이고 또한 대부분은 연예인이다.

왜 ‘이름 모를’ 여성들을 등장시켜 마음대로 합성하고, 우스개로 만드나.

이런 문화는 디씨의 적극적인 사용자들, 디씨폐인의 대부분은 남성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디씨 대표인 김유식씨나 운영자 박유진씨도 기꺼이 합성 요소가 되고 있는데, 박유진씨가 올리는 공지 게시물에 달리는 수백수천의 댓글을 보면 좀 과장하여 대부분이 ‘유진낭자 사랑하오’ 류의 글이다.

물론 디씨폐인 중 여성도 많겠지만 적어도 디씨의 주류문화에서는 배제되고 있는 듯 하다. 디씨 갤러리는 여성 네티즌 참여가 허용되지만, 철저히 남성 네티즌을 위한 공간이고 남성 디씨폐인의 문법이 통용되는 곳이다. 여친 갤러리와 남친 갤러리가 있는데, 남친 갤러리에 남자친구 사진을 올린 여성 햏자(디씨 이용자)들은 대개 ‘해요’ 체를 쓰며, 디씨의 기본 어법인 ‘~하오’ 체에도 익숙하지 않다. 병역 거부를 위해 국적을 포기한 유승준이나 소위 ‘빠순이’ 부대를 이끌고 ‘록커’를 자칭하는 문희준이 디씨 갤러리에서 조롱 당하는 것을 보면 디씨 문화는 이들 젊은 남성 폐인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마초이즘이 ‘재미’ 라는 절대명제 하에 기꺼이 묻히는 것이다.

딸녀 열풍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O양 비디오 사건의 가벼운 유머 버전이다. 딸녀의 야릇한 표정은 다분히 성적인 상상을 유발시킨다. ‘미모’ 까지 겸비한 이 젊은 여성을 찾아내기 위해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최소한 이 여성을 위해서 만이라도 그래선 안된다.

필자는 즐겨 찾는 성인 사이트도 많고 P2P 프로그램으로 포르노 비디오도 구해 보지만, 아직 ‘O양 비디오’ 도 ‘B양 비디오’ 도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다. 몰카를 포르노라고 생각하는 건 범죄에 가깝다. 딸녀 열풍 또한 본인에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디씨에 열광하는 네티즌이다. 하지만 ‘딸녀, 광녀, 핥녀’ 를 만들어 냈듯이 앞으로 제2의 ‘딸녀’ 를 또 무수히 탄생시키고, 이 익명의 무고한 여성들을 난도질하여 남성 폐인들의 우스개감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리고 여전히 그런 과정을 보는 것에 열광한다면 디씨에서 얻는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누구나 유머의 소재가 될 수 있고, 디씨 갤러리에 다양한 합성 사진으로 등장하는 많은 연예인들 또한 기꺼이 유머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자신들이 조금 망가짐으로 인해 사람들이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면 애교로 봐 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디씨의 합성 사진들에 등장하는 ‘딸녀’, ‘광녀’ , 이들은 그렇지 않다.

최근에 ‘광녀’ 의 주인공이 초상권을 문제로 자신의 사진 합성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고 한다. 만일 명예훼손 혐의로 디씨나 사진 게시자를 고소했다면 이 ‘광녀’는 디씨폐인들과 한바탕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걸 예상했을 지도 모른다. 만일 딸녀의 진짜 인물로 확인된 여성이, 무단으로 사진을 게재하거나 혹 합성한 네티즌에게, 또는 디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낸다면 어떨까. 마찬가지일까? 물론 광녀는 디씨 덕에 그야말로 ‘광녀’가 돼버렸고, 딸녀는 월드컵 스타 미나처럼 유명인사가 됐으니 상황은 다를 테지만 말이다.

꼭 디씨에만 한정하여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마초이즘을 역시나 디씨에서도 보게 되니 안타깝기 때문이다. ‘세상이 뭐라 해도 나는 아햏햏요’ 에 열광했던 초기의 디씨 문화가 그립기도 하기 때문이다. 엽기적인 재미의 극단을 향해 가는 디씨에 건강하고 통쾌한 풍자만을 기대하는 건 혼자만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귀차니즘의 압박을 극복하면서 쓴 글인데 영 신통치 못한 건 나 또한 디씨의 문화에 너무 함몰돼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제2의 딸녀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좀 자제하자. 그동안 너무 심했다.

2003.10

이강룡
웹칼럼니스트 / readme[a]dreamwiz.com

* 이 글은 <오마이뉴스>와 <국정브리핑>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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