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67 칼럼니스트 2003년 10월 1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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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제2의 가미카제 전쟁

    사람이 어렸을 때 당한 가벼운 사고는 젊었을 때나 건강하면 그 영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늙거나 쇠약해지면 잊고 지내던 그 사고의 후유증이 몸의 어디엔가는 반드시 나타난다.

    국가란 조직체도 마찬가지다. 1천년, 2천년 전의 까마득한 사건일지라도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의식 속에 그 이미지가 스며들고,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와 알게 모르게 지금의 국가 운행(運行)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

    1231년부터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해왔다. 고려 왕실과 최우 등 권력자들이 강화도로 도망가자, 그들은 6차례에 걸쳐 한반도를 침입,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30여년 동안 섬에 박혀 세계 최정예군의 침입을 나무판에 불경이나 새겨 막겠다던, 있으나마나 한 왕 등이 1260년 제 발로 걸어나와 항복했다.

    그 후 7대 90여년간 왕의 명칭 앞에 ‘충(忠)’자를 붙여 썼다. 1271년 몽고군이 중국 대륙을 석권하고 만든 원(元)의 황제에게 충성한다는 표시며, 따라서 그들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는 의미며, 그 대신 말만 잘 들으면 세계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뜻이었다. 이 때 고려는 명실상부한 식민지였다.

    몽고의 동쪽을 향한 세계 정복 야욕은 한반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1266년 그들은 일본에게 조공(朝貢)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군인들로 구성된 최고 권력 기관인 막부(幕府)에서는 이를 거절했다. 몽고는 1273년까지 여섯 차례나 거의 매년 사신을 보내 복종할 것을 강요했으나 일본측은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격분한 원 세조 쿠빌라이는 1274년 일본을 무력으로 정복키 위해 정동군(征東軍)을 조직했다. 원의 군인 2만명, 고려 군인 5천3백명, 고려인 수부(水夫), 잡부 등 5천명과, 고려가 만든 병선(兵船) 9백여척이었다. 전쟁 비용의 대부분을 고려가 부담한 것이다.

    이 때의 총사령관은 몽고인 흔도, 부사령관은 고려인 홍다구였다. 이들은 일본에 상륙하여 승승장구하다가, 뜻밖의 폭풍우를 만나 병선 피해가 막대하고 수많은 군인들이 죽자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 발생했던 폭풍우를 일본인들은 ‘가미카제’[神風]라 부른다.

    다시 1281년, 고려 군인 1만명이 포함된 동로군(東路軍) 5만명, 중국 남부 출신 군인 10만명으로 구성된 2차 정벌군이 일본 하카타만에 도착하였으나, 이들 역시 그 곳에서 태풍을 만나 병선의 태반을 잃고 퇴각했다.

    원의 쿠빌라이는 79세 나이로 죽을 때까지 세계 정복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죽기 1년 전인 1294년에 또 다시 고려에게 일본 정벌을 위한 막대한 수의 병선과 군량미를 준비할 것을 명령했다. 그가 죽자 이 계획은 포기됐다.

    20여년간 한 미치광이의 세계 정복이란 야욕으로 말미암아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고 그리고 재산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7백여년 지난 현재 추측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왕이란 나부랭이들이 이렇게 백성들에게는 큰 고통을 주던 세계 패권국가 서울 연경(燕京)에 가서 풍월이나 읊고, 그들에게서 책이나 4,371권 받았다는 일 따위만이 전해질 뿐이다.

    몽고, 고려 연합군의 일본 정벌이 수포로 돌아간 후부터 한반도는 일본 왜구의 무차별 공격을 받는다. 과거에는 배 몇 척 정도의 해적 수준이었으나, 1350년대 충정왕 이후에는 많게는 5백여척으로까지 대규모 군단을 편성하여 한반도 내륙 깊숙이 들어와 노략질하였다.

    연합군의 일본 침략 2백여년 후인 1492년 일본은 조선측에게 대륙을 정벌하겠으니 길을 내달라고 요구하며 전쟁을 벌였다. 원과 일본의 요구가 뒤바뀐 것이다. 1930년대에는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켜 실제로 대륙을 손아귀에 넣었으며, 1940년대에는 2차 세계대전 속에 또 다시 가미카제 바람이 불어 독코타이[特攻隊]를 만들었다.

    지금도 일본인들이 역사 속의 낱말 중 자주 꺼내 쓰는 것이 ‘가미카제’다. 그 때마다 그들은 몽골과 조센진을 연상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가미카제는 일본인들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그들의 뇌리 속에 박혀 있을지 모른다. 거기에 애꿎은 우리도 곁다리끼어 업보 하나를 만들었다. 그 업보는 업보를 만들어 우리도 그들에 대해 또 마찬가지다. 다른 민족과 전쟁을 벌여 피를 본다는 것은 이렇게 그 영향이 크며 오래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라크 파병을 얘기하고 있다. 이 파병의 상황 전개가 1200년대 몽고, 고려 연합군의 일본 침공 때와 같다고 아니 할 수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세계 패권 국가 미국은 파병을 강요 안 하는 척 시침을 떼고, 대한민국 권력자들은 파병을 못해 안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싸워야만 될 전쟁 당사자인 미국군은 한반도에 앉아 있고, 애꿎은 한국군만 배를 타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50여년 동안 우리는 무력을 숭상하는 관찬 국사(官撰國史)만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 흐르는 역사는 따로 있으며, 권력자들은 그것을 인식하고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 200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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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훈

아하출판사 대표
herb-k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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