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10월 7일 No. 864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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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치가 떠난 동강

    영월댐 건설 찬반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1988년 봄, 처음으로 동강을 찾았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정선과 평창의 산하를 휘감아 흘러내린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과 합궁하여 남한강을 잉태한다. 뗏꾼들이 구성지게 아라리를 부르며 스쳐간 강줄기를 따라 펼쳐진 비경을 바라보며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까마득한 절벽 위 소나무에는 까막딱따구리가 파놓은 보금자리가 선명하고, 희귀조 비오리가 새끼를 거느리고 나들이 나온 모습이 앙증맞다. 찔레꽃 숲에서 밀어를 속삭이던 원앙 한 쌍이 인기척을 느끼고 푸드득 비상한다. 밤이면 수달이 물장구를 치고, 수리부엉이가 야경을 서는 곳이다.

    동강이 품고 있는 비경중의 백미는 어라연(魚羅淵). 중국의 절경 계림(桂林)에 빗대어 `한국의 계림'이라 불린다. 속살까지 훤하게 비치는 강물엔 어름치, 버들치, 연준모치가 떼지어 노닌다. 동강은 생태계의 젖줄임을 눈으로 확인하고, 희귀 동식물을 키워낸 풍요의 강을 콘크리트 벽으로 멈춰 서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모세혈관처럼 흐르는 강줄기가 끊기면 생태계는 파괴되기 마련이다. 2년 뒤인 2000년 6월, 10년 가까이 끌어 온 영월댐 건설논란은 환경논리의 판정승으로 결론이 났다.

    문제는 댐 백지화 이후다. 댐을 짓느냐마느냐를 놓고 너무도 긴 논쟁을 벌이는 동안 동강은 유명세를 탔고,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비경을 눈치채고 말았다. 너도나도 그곳을 찾다가보니 동강은 인파에 시달려 신음하기 시작했다. 야영 족들이 버리는 쓰레기와 오물을 뒤집어 쓴 채 강물은 2급수로 떨어졌고, 레프팅 족들이 질러대는 아우성에 비오리와 원앙이 슬금슬금 자취를 감췄다. 새벽에 일어나 물을 마시던 수달이 자맥질하기도 꺼림직 해진 것이다.

    보트를 타는 사람이 늘고 광산폐수·생활하수·축산폐수의 유입량이 늘어 수질이 나빠지면서 생태계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에서 유영하던 어름치·다묵장어·납자루·참중고기·밀어 등 9종이 사라지고, 2,3급수에서도 살 수 있는 뱀장어 등이 늘어났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강줄기를 따라 어느새 식당과 숙박업소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도로확장, 주차장 시설 등 무차별 난개발로 동강의 시름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환경부는 2001년 3월 동강 46㎞ 양안(兩岸)을 단계별로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취사·야영을 금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간의 이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재정을 외면할 수 없는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환경문제는 겉돌면서 야금야금 훼손된다.

    얼마나 어렵게 살려 낸 동강인가. 댐 건설을 반대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어름치가 다시 돌아오게 해야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깨끗하게 보전하여 후대에 물려줘야 할 책무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 월간 '국토' 10월호 (2003)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ky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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