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10월 1일 No. 86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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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보내는 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자유 분방하던 네가 도살장에나 끌려가듯 풀죽어 군대에 간 지도 어언 1년이 되었구나. 획일과 복종이 우선인 군 생활이 너의 성품에 맞지 않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땅에 사는 젊은이의 의무라 하는 것을.

    난세(亂世)란 말이 옛글에 많이 쓰여져 있다. 어지러운 세상 정도로 무심히 흘려 보았으나, 이제 되새겨 보니 그 속내는 참으로 슬픈 것이구나.

    내가 어렸을 적에 6.25사변이 났었다. 충남 대전의 방공호나 개천가에서 시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시체를 처음 대하면 무서워 오금이 저리나 몇 번 보면 호기심이 발동해 구경거리가 된다. 세월은 지난날의 기억을 지워주건만, 나도 죽음이 가까워선지 그 흉한 모습은 오히려 더 선명히 떠오른다.

    1960년대 후반 친한 친구 몇 명이 월남전에 갔었다. 그들과 한 세대가 넘게 만나 자주 술판을 벌이지만 누구도 그 때의 무용담을 떠벌리지 않는다.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에 걸리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이제 또 다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나중에야 미국에게 어떻게 얻어맞든 지금은 젊은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라크 파병 불가(不可)라는 말 한마디를 정부가 못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자란 사람들도 자기들 세력 다툼에만 눈이 벌개져 남의 자식들 죽는지 사는지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들도 명분과 실익을 찾아 전쟁판에 끼자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은 대한민국에는 물론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 귀중한 것을 모두가 가볍게 여기는, 오히려 애견 사랑이 사람들 입에 더 오르내릴 정도인 그런 사회와 시대가 바로 난세다.

    슬픈 얘기다. 하필이면 이 땅에서 너를 낳아 이 때 성장시켰구나. 그러나 앞으로는 괜찮아 질 것이란 희망만은 가지고 살아라. 난세가 바뀌어 평안한 시대로 돌아감은 언제 어디서나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껏 외세에 잡혀 살던 한국이, 경우라고는 반푼 어치도 없는 미국의 파병 압력을 뿌리친다면, 이 사회가 뭔지 새롭게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고 네가 만약 이라크로 파병된다면, 어느 누구의 생명도 해치지 말라. 당하는 그 곳 부모는 얼마나 원통하고 가슴이 찢어지겠는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슬픔을 준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차라리 그들의 슬픔을 내가 안고 가겠다. 잔인한 아비라 원망할 테지만 나의 뜻을 새겨들어 주기 바란다.

    며칠 전 일기예보에 강원도 산골은 첫얼음이 언다 하더라. 감기 들지 않게 모포 잘 덮고 자거라.

    2003. 국군의 날에
   무능한 아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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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훈

아하출판사 대표
herb-ko[a]hanmail.net
http://columnist.org/h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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