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57 [칼럼니스트] 2003년 9월 2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 |
문학 속의 나무, 나무 곁의 인간

    '겨울 산마루에 우뚝 선 외로운 소나무' (冬嶺秀孤松.동령수고송)

    중국의 도연명은 그의 시 '사시(四時)'에서 겨울 부분을 이렇게 읊었다. 봄의 물, 여름 구름, 가을 달로 각 계절을 그렸는데 겨울은 소나무로 묘사했다. 흰 눈을 거부, 소나무를 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투명한 겨울 풍경의 묘미가 지극하다.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한데 눈발까지 어지럽게 휘날리는 겨울날, 고개 위에서 조용히 나그네를 내려다보는 늙은 소나무. 쳐다보기만 해도 영혼 깊숙한 곳을 밝고 따뜻하게 해주는 성자(聖者)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는 것이다.

    소나무 등이 마을로부터 대체로 먼 곳에서 인간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느티나무 대나무 같은 것들은 동네 부근에서 주민과 마을의 수호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이처럼 말없이 지켜보며 언제든지 감싸주는 나무들이 시 등 문학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너무도 당연하다.

    조선조의 폭군 연산군도 나무를 칭송했다.

    아리따운 나무 꽃을 토해 비가 붉게 내리고 (芳樹吐花紅過雨.방수토화홍과우)
    주렴에 버들개지 날아들어 바람 하얗게 놀라네 (入簾飛絮白驚風.입렴비서백경풍)
    누른빛은 새벽 따라 버들잎에 푸르게 퍼지고 (黃添曉色靑舒柳.황첨효색청서류)
    내리는 꽃가루 소나무 위에 눈으로 쌓이네 (粉落晴天雪覆松.분락청천설복송)

    우리가 알고 있는 연산군답지 않게 대단히 서정적이다. 나무에 관한 그의 또 다른 시도 이처럼 감수성이 풍부하게 드러나 놀라게 한다.

    하긴 로마의 폭군 네로도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 음악과 문학 등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으며 시인 루카니스를 재무관직에 기용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업무 아닌 문학에 대한 견해 차이 로 그를 관직에서 내쫓고 문학활동까지 금지시켰다. 인간성 순화라는 예술의 일부 기능이 연산군과 네로한테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씁쓸하지만 그런 이들도 감동시킨 나무의 위대성이 그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가는 슈베르트의 '보리수'처럼 나무는 언제든지 인간을 폭넓게 보듬어 준다. 폭군들도 그 앞에서는 인간일 수밖에 없는 여유와 깊이를 나무는 지니고 있다.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에서 보듯이 동양의 시들이 나무를 들어 대부분 충신의 절의와 선비들의 고결한 정신을 노래한데 비해 서양 시인들이나 현대시인들은 나무의 아름다움 또는 그 자체의 품성을 묘사하고 있다.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소녀를 나무의 요정으로 묘사한 '소녀'에서
    '나무가 내 손으로 들어갔다/ 수액이 내 팔로 올라갔다/ 나무가 내 젖가슴 속에 자란다//    내게서 나무 가지가 뻗어 내려간다/ 팔처럼' 이라고 읊었다.

    조이스 킬머도 '나무들'에서
    '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런 시를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중략)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뿐'이라며 극찬했다.

    박재삼 시인 역시 '나무'라는 시에서
    '한없이 스러지는 허망이더라도/ 아름다운 이여//
    저 흔들리는 나무의/ 빛나는 사랑을 빼면
    이 세상엔 너무나 할 일이 없네'라고 했다.

    이처럼 나무의 미덕과 온기, 그 넉넉한 품을 노래한 시들이 고금동서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와 항시 함께 하고 있지만 그를 닮기에는 너무 부족한 인간의 끝없는 갈증과 절절한 열망의 표출인 것이다.

    갈증과 욕망은 절대로 완성되지 않는 법. 인간의 불가피한 본성이고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를 닮고 싶어하는 인간의 노래와 시들은 앞으로도 끝없이 태어날 것이다. 인간과 나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 동화기업 사보 9/10월호 (2003)


-----
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ynhp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