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9월 19일 No. 85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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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해야 하나

    금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의 명분이 대량 살상 무기를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그 명분으로 스마트폭탄, 소프트폭탄, 지하벙커 파괴폭탄, 열 압력폭탄, 슈퍼폭탄 등 일반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갖가지 대량 살상 무기를 미국은 원없이 터트렸다. 점령 후 막상 이라크 땅을 샅샅이 뒤져봐도 제거할 살상 무기가 없었다. 결과가 이 지경이면 아무리 무법자라도 ‘아이엠쏘리’하고 꽁무니를 빼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 13만명 이상의 미군이 이라크에 계속 주둔하고 있으며, 사단급인지 무슨 급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수의 한국 군인마저 그 볼썽사나운 난장판에 미국이 불러들인다고 한다. 결국 대량 살상 무기를 없앤다고 들어갔던 미국이, 살상 무기를 휴대한 제3자인 외국군까지 끌어들여, 실제 화력으로는 침공 전보다 몇 10배인지 100배인지 모를 살상 무기로 이라크 땅을 도배질하는 꼴이다. 이런 식으로 세계 패권을 휘두르면 미국이란 나라는 정상은커녕 맛이 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존재라 치고, 일본제국의 성전(聖戰)을 찬양할 때부터 체질화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언론은 전쟁이라면 신이 난다. 3월의 이라크 침공 때의 경우만 보더라도, 전쟁 당사자인 미국의 CNN방송 등은 일찌감치 전쟁 특보를 끝마쳤음에도, 구경꾼 주제밖에 안 되는 한국의 방송은 신물이 날 정도로 전쟁 특보를 계속하였다. 신문들도 아군의 승전보나 전해주듯 작전지도까지 곁들여가며 연일 톱뉴스로 보도하였다.

    이번 이라크 파병에도 이런 언론의 호전성은 여전하다. 미국이 9월 중순까지 파병을 공식으로 요청한 것도 없다. 그리고 정부도 파병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고려하고 있다는 어정쩡한 소리만 흘리고 있다. 그럼에도 ‘공짜 점심은 끝났다’며 파병을 강력히 주장하는 언론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언론은, 국민의 여론에 따라, 유엔의 결의에 따라, 실익을 찾아 등 조건부 파병 주장이다. 어찌 보면 파병을 바람잡는 것이다. 호전성의 압권은, 지난 파병의 예를 들어가며 군인 1명에 드는 비용은 얼마고, 1년간 몇 백명을 주둔시키면 몇 백억원이 들 것이라는 따위의 경비 계산이다. 아예 파병을 기정 사실화하는 것이다.

    도대체 바다를 건너 가 남의 싸움판에 끼어 피를 보는 것에 무슨 명분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떤 명분도 전쟁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몇 천년 인류 역사의 결론이다. 여론이니 민심을 명분으로 삼아 파병하여야 한다고 언론이나 정부가 말한다면 그것은 국민 모독이다. 국민이 전쟁광으로 맛이 갔다는 의미다.

    그리고 남의 싸움판에 끼어 거기에 드는 전쟁 비용마저 국민 세금을 쓴다면서 무슨 국익이며 실익을 찾는가? 한국은 이번 파병과 꼭 같은 일을 이미 베트남 전쟁에서 경험하였다. 그 피해가 한 세대가 지난 현재까지 계속되어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프로판가스통에 불을 붙여 서울 복판에서 휘두른다. 그만큼 이익은 순간적인 계산일 뿐 손해는 예측조차 힘들 정도로 큰 것이 전쟁이다. 더구나 아랍연맹 헌장에 ‘특정 아랍국가에 대한 공격을 전체 아랍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익이니 실익이란 말조차 함부로 쓸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파병을 검토하기 위해 9월22-27일에 10여명의 공동 실무 조사단을 이라크에 파견키로 하였다. 이것은 누가 판단하든 파병을 위한 선발대다. 외교통상부 장관 말처럼 파병을 ‘조만간 결정‘하여야 한다. 시간이 없다. 10월17일쯤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다. 일본 방문 후 한국 내의 파병 분위기가 설익었으면 방문하여서, 아니면 10월20-21일 방콕의 APEC 정상회담에서 그는 한국 대통령에게 말할 것이다. ‘마이 프렌드! 몇 명 언제까지 이라크로 보네.’ 여기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대답은 ‘옛쏘’이며, 이것이 최종 파병 확정이란 것을 한국 건국과 함께 살아온 자의 체험적 결론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 땅의 단 한명의 젊은이라도 이국 땅 사막의 열풍 속에서 남의 강요에 의해 개죽음을 당하게 하면 이것은 우리 모두의 죄악이다.

    - 2003. 9. 18

홍순훈

아하출판사 대표
herb-k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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