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9월 13일 No. 852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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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의 사전에 「정년」이란 없다?

1997년 말 IMF시대를 맞으면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각 직업의 정년이 최소 2〜3년씩 단축됐고, 5년 이상이나 줄어든 경우도 있다. 법규나 사규에 정해진 정년만 믿고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졸지에 직장을 떠나야 했던 것은 엄청난 「사회적 비극」이었다.

구조조정이란 이름 아래 본의 아니게 일찍 정년퇴직한 중늙은이(?)들이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유형무형의 압박을 못 견뎌 짧아진 정년조차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야 했던 사람도 많다. 구조조정의 덫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정년은 직업마다, 직장마다 다르다. 공직자들이나 일반 기업의 정년은 보통 50대 중반에서 후반이고 60세를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학교수나 학교 교장 등 교육자 등 극히 일부 직업만이 60대 초·중반까지로 돼 있다.

그렇다면 자유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정년은 몇 살까지인가. 가수나 탤런트 등 연예인이나 소설가, 시인, 화가, 성악가, 연주가, 무용가, 성악가 등 문화예술인의 정년은 법이나 규정으로 정해진 바가 없으니 궁금해진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창녀의 정년이 몇 살이냐를 놓고 재판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장 최근에 관심을 끌었던 것은 2001년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인기 댄스그룹 「클론」의 멤버 강원래씨(35)에 관한 재판이었다. 강씨는 그해 6월말 자신의 활동나이를 60세까지로 보고 월 평균 3천6백만원으로 계산한 뒤 “위자료와 치료비 등을 합산해 총 83억원을 배상하라”고 서울지법에 소송을 냈었다.

이에 대해 보험사측은 “강씨가 세무당국에 신고한 월소득이 3600만원에 훨씬 못 미치고, 댄스가수가 활동기한을 60세까지 잡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맞서다가 지난 1월 재판부에 화해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지난 4월 “21억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고, 강씨는 결국 지난 8월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가 강씨의 정년을 정확히 몇 살이라고 밝히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위자료 액수로 봐서는 그저 40세 안팎으로 봤지 않았는가 하고 추정할 뿐이다. 재판부가 정년이 몇 살이라고 밝혔더라면 이 결정은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됐을 것이다.  

어제(9일)는 화가의 정년이 65세라는 판결이 나왔다. 화가 김모씨(58‧여)가 광대뼈 축소수술을 한 후 부작용이 생겨 성형외과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는데, 재판부는 여러가지 조사를 한 끝에 “대법원의 판례에 정신적 저작물을 창작하는 소설가의 정년도 65세이므로 원고의 정년을 65세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예술가나 연예인처럼 자유직업을 가진 사람의 정년은 딱히 몇 살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정년은 자신의 직업활동을 그만둘 때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20,30대에 그만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70,80대에 이르도록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는 좀 빗나간 듯한 얘기이지만 장장 반세기동안 소매치기를 해온 「할아버지 소매치기단」 3명이 어제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은 우리들을 놀라게 한다. 말이 할아버지이지 이들 중 김모씨가 83세, 유모씨는 81세이고 박모씨는 72세로 조금 젊은(?) 편이다. 김씨의 경우는 우리나이로 치면 85살이다. 이쯤 되면 할아버지가 아니라 속된 말로「늙은 귀신」이라고 할 만하다.

이들의 활약상(?)을 보면 지난 6월 14일 낮 서울 양천구 목2동을 지나던 시내버스 안에서 고모(53.여)씨의 손가방을 열어 현금, 수표 3백60만원을 훔치는 등 최근 6년 동안 수백여차례나 소매치기를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또 다른 노인 공범인 홍모(70)씨 등 2명은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신세이다.

이들이 만난 건 꼭 50년 전인 1953년 서울에서이다. 유씨를 보스로 조직을 결성한 뒤 검거와 출소를 반복했으며, 60~70년대에는 절정의 솜씨(?)를 자랑했다. 80년대 이후에도 서울 변두리를 오가며 하루 6~7차례씩 「노익장」을 과시했다고 한다. "비록 나이는 많아도 핸드백 뜯는 기술만큼은 유씨가 국내 1인자"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노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술을 먹고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지만 상습범인 이들의 말을 믿기가 어렵다. 「세 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떠 올리면 더욱 그렇다. 이들은 아마도 「소매치기의 사전에 정년이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년 전부터 시작된 조기퇴직바람이 아직도 거세게 불고 있는 상황에서 70,80대 노인소매치기단의 검거소식은 쓴 웃음을 자아내기 전에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다. 하찮은 생물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 있다. 노인소매치기단의 못된 버릇을 보고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 200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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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http://columnist.org/netporter/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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